▲ 봉의산 순의비에 새겨진 춘천 병사들과 백성들의 항전 모습.
최다혜
춘천 평야가 드넓을수록 봉의산은 더 작고 외로워 보인다. 뒤로는 소양강이, 앞에는 말을 탄 몽골군이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더 높고 험한 산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봉의산 계곡이 피로 물들었다는 이 슬픈 역사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봉의산성에서 내려와 봉의산 순의비 앞에 섰다. 비석에는 몽골군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과 백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쓰러진 사람들, 흩어진 살림살이, 그리고 끝까지 창과 활을 들고 나아가는 이들.
아이들은 사람들이 두렵고 슬퍼 보인다고 말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소와 말의 피 대신 맑은 물을 마음껏 마시고, 전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봉의산을 내려오며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거렸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숨이 찼다. 고려시대 강원도 백성들은 이 길을 하루가 아니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오르내렸다. 도망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단단한 허벅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왜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켜야 할 삶이 있었고, 떠날 수 없는 터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과 계곡을 넘던 고려의 백성들은 단순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몸으로 남았다.
이제 나는 달리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고려시대 강원도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 길을 넘었다. 같은 산길이지만, 남겨진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오늘 우리가 달리고 걷는 이 산길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길이었다는 사실을 아이와 함께 기억하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