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들이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고 있으니 AI로 쓴 과제가 문제처럼 보일 뿐입니다.
AI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언론사 기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다른 경험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전공을 바꿔 다른 길을 걷게 됐습니다. 지금은 소통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경력은 거대한 기술 변화와 궤를 같이했습니다. 저는 인터넷의 도입, 확산 그리고 광범위한 채택 과정을 현업에서 그리고 강단에서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직장 생활 10년, 교수 생활 10년 차가 된 지금, 저는 인공지능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20여 년 전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때의 혼란과 저항이 떠오릅니다.
"요즘 학생들, AI로 과제 다 해와서 큰일입니다."
요즘 동료 교수들 한탄입니다. 너도나도 이걸 어떻게 잡아내야 하냐, 학생들 창의력이 다 죽는다며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합니다. "그게 정말 학생들 문제일까요?"라고 말입니다.
이건 학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기술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관성대로 교육하려는 교수입니다. 이미 세상에 나온 강력한 도구를 쓰지 말라 금지하고, 기존 방식의 보고서만 요구하는 건 명백한 시대착오입니다.
신기술이 나왔다면 우리 교수들의 가르침과 평가 방식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데, 교수들이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고 있으니 AI로 쓴 과제가 문제처럼 보일 뿐입니다.
지식 전달 수업 폐지... 교실은 역량 검증의 공간
그래서 저는 제 수업의 원칙을 바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수업을 지식 전달의 시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건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배워야 할 내용은 문서와 동영상으로 제공합니다. 지식 습득은 학생의 몫입니다.
대신,
제 교실은 철저히 역량 검증의 공간입니다.
제 수업시간은 구술시험 시간입니다. 저는 실시간으로 문제를 던지고 그 해결 과정을 지켜봅니다. 프로젝트 리뷰를 하면서 그들의 사고 과정을 봅니다.
물론 제 수업에서 AI 사용은 금지되지 않습니다. 마음껏 쓰라고 합니다. 대신 공개·기록·설명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AI를 썼는지, 어떤 질문(프롬프트)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다듬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소명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다음과 같은 AI 시대의 평가 지침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첫째, 오픈북·오픈AI로 평가합니다. AI 사용을 전면 허용합니다. 대신, 어떤 AI를 썼는지,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수정·보완했는지 이력을 모두 제출해야 합니다.
둘째, 제출물 기반 구술 확인을 합니다. 제 수업시간은 그 자체가 구술시험 시간입니다.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초안이든 최종본이든)은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저와 토론하기 위한 시험지가 됩니다. 저는 수업 중 학생을 지목해 자신의 결과물 핵심을 설명하고 방어하게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이 그 결과물을 정말로 이해하고 통제했는지, 아니면 그냥 복사-붙여넣기 했는지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과정을 봅니다. 저는 최종본만 보지 않습니다. 기획서부터 초안, 수정본 그리고 최종본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평가를 어떻게 반영하며 과제를 완성해 갔는지 그 과정 전체를 평가합니다.
넷째, 실시간으로 시켜봅니다. 수업 중에 데이터를 주거나 주제를 던집니다. 실시간 분석, 즉석 토론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과정 자체를 제 눈으로 직접 봅니다.
다섯째, 표절 대신 설명 책임을 묻습니다. 단순히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돌리는 대신, 학생에게 설명할 책임을 묻습니다. 왜 이 결과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는지, 왜 이 해석이 타당한지, 여러 대안 중 왜 이것을 선택했는지 자신의 논리로 방어하게 합니다.
금지는 게으른 방식... 설계하는 교수가 필요하다
제 이야기의 요점은 명확합니다. 금지보다 설계입니다.
금지하는 것은 가장 쉽고 게으른 방식입니다. 교수가 조금 더 고민하고 시간을 들여 평가 방식을 잘 설계하면 됩니다.
잘 설계된 평가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학생의 훌륭한 조교로 만들고,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학습 품질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길러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AI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부리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그 책임, 우리 교수들에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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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교수(PhD 매체심리학)
인간의 행동, 생각, 느낌을 매체이용과 건강 및 행복 증진 맥락에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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