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거노인, 취업을 위해 상경한 청년, 학업을 위한 자취생, 결혼하지 않은 중년. 모두 혼자다. 물리적으로만 혼자가 아니라, 마음으로도 외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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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는 마흔 셋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5년 전부터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부산에 계시고, 서울에는 내가 유일한 가족이다. 회사 다니고, 주말엔 집에서 텔레비젼을 본다. 친구들과도 뜸해졌다.
"다들 바쁘잖아요. 가족들도 챙겨야 하고."
그렇게 관계는 점점 줄어들었다고 했다.
"요즘은 며칠씩 말을 안 할 때도 있어요. 회사에서 업무 얘기 빼고는요. 주말에 편의점 가서 '봉투 주세요' 하는 게 제가 하는 유일한 대화예요."
조카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34.5%에 달한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집이다. 독거노인, 취업을 위해 상경한 청년, 학업을 위한 자취생, 결혼하지 않은 중년. 모두 혼자다. 물리적으로만 혼자가 아니라, 마음으로도 외톨이다.
퇴원 후 조카는 동네 복지관 요리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가보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거기서 친구들을 만났어요. 다들 혼자 살고, 저녁 혼자 먹는 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요리도 배우지만, 사람 만나는 게 더 좋아요."
문제는 이런 공간이 부족하다는 거다. 요리 모임도 한 달에 두 번뿐이고, 신청자가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한다. 조카는 다니는 요리 선생님 말씀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처음엔 요리를 가르치려고 했대요. 그런데 저희들한테 필요한 건 요리 실력이 아니라 말벗이더래요."
정시 퇴근을 지키고 일어난 변화
그렇다. 조카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온기다. 부담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각 동네마다 작은 사랑방 같은 곳, 차 마시고,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곳.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공공 보건 문제로 보고 '외로움 장관'까지 두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독거 어르신과 청년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빈방 있는 어르신 댁에 청년이 싼 월세로 들어가고, 대신 말벗이 되어드린다. 세대를 잇는 온기다. 우리도 외로움을 제대로 다뤄야 할 때다.
고립을 막으려면 먼저 위기를 알려주어야 한다. 조카는 그나마 119에 전화할 수 있었지만, 그 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카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국 필요한 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카도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9시가 넘어야 들어온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저도 알아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거. 그런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어요.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서 그냥 쓰러져 자요."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어야 관계를 맺을 여유가 생긴다. 조카가 요리 모임에 나갈 수 있게 된 것도, 회사에서 저녁 6시 퇴근을 원칙으로 정한 뒤였다. 조카는 지금 많이 좋아졌다. 요리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 번씩 저녁을 먹는다. 서로 돌아가며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처음엔 남의 집에 가는 게 불편했어요. 그런데 가 보니까... 좋더라고요. 또 집에 사람이 오니까 청소도 하게 되고,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
조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복지관 요리 모임을 알게 되서.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1204호, 1205호.....다 혼자 살아요. 다들 조용히 외로운 거예요."
5년 만에 집에 초대한 조카

▲ 같이 밥 먹자며 집에 초대한 조카. 서로 돌아보고, 손 내밀고, 함께 밥 먹는 것. 그게 사람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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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외로움. 그게 지금 우리 시대의 병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늘리고, 시간을 보장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면 된다. 거창한 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이 밥 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살 수 있다.
박노해 시인의 자전적 수필 <눈물꽃 소년>(2024년 2월 출간)을 읽으며 조카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책 속 마을은 가난했지만 따뜻했다. 이웃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진지 잡수셨어예?" 하며 밥 그릇을 들고 달려갔다. 경사가 있으면 온 동네가 함께 웃었고, 어려움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섰다. 옛날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다움을 찾자는 거다. 서로 돌아보고, 손 내밀고, 함께 밥 먹는 것. 그게 사람 사는 거라는 것.
지금 우리는 그 반대로 산다. 풍요로워졌지만 외롭다. 굴뚝 연기는커녕 옆집 불이 켜져 있는지조차 모르고 산다. 조카 같은 중년 미혼들이 가장 취약하다. 친구들은 가정을 이루고, 자신만 홀로 남았다. 우울해지고, 고립된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조카도 그랬다. 조카가 나에게 연락한 그날 밤 일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신호다. 조용히 외로워하는 수백만 명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제 좀 돌아봐 달라고.
지난주 조카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모! 이번 주 토요일에 저희 집에서 저녁 먹어요. 제가 배운 해물탕 끓일게요' 조카가 나를 집으로 초대한 건 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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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편의점 가서 '봉투 주세요'가 유일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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