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년도 채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살았나'보다 '무엇을 남기고 가나' 하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거창한 유산은 못 되더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 짐이나 빚을 떠넘기는 세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부채감 같은 것이죠.
평소에도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 문제에 나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최근 발표된 '2035년 탄소 감축 목표'는 제게 남은 과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각자 자기 분야에서 '똑똑하다' 소리 꽤나 듣는 오랜 친구들과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그 얘기가 나왔죠.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큰일 났어. 탈탄소? 좋아. 근데 그 돈 다 누가 내냐? 결국 '전기요금 폭탄'으로 돌아오는 거야. 2035년까지 그 목표 맞추려면 어쩔 수 없어."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탈탄소는 곧 비싼 전기지." 그건 마치 반박할 수 없는 진리처럼 통용되더군요.
저는 듣고 있다가 물었습니다.
"여보게들, 그게 정말 그 '감축 목표' 때문일까? 우리가 원인을 잘못 짚고 있는 건 아닐까?"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한전 부채가 200조가 넘는다는데, 그거 GDP 10%야. 우리가 수십 년간 OECD에서 제일 싸게, 사실상 원가 이하로 전기를 써온 후유증이잖아. 그건 감축 목표가 없었어도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어."
"지금 필요한 건 '감축하니까 올린다'가 아니라, '그동안 비정상이던 걸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정직한 진단 아닐까? 왜 아픈 사람 병 고치자는데, 자꾸 '수술비 비싸다'며 처방 탓만 하는가."
분위기가 순간 싸해졌지만, 전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탈탄소=비싼 전기'라는 공식 자체도 이젠 낡은 얘기 아닌가? 지금 당장 제일 싼 전기가 기존 원전 돌리는 거고, 앞으로 비싼 석탄 줄이고 원전 더 돌리면서 재생에너지 값싸지는 거 잘 활용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요금 안정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 봐. 언제까지 비싼 석탄, LNG 국제 시세에 벌벌 떨면서 살 건가. 원전이랑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건, '연료비 폭탄'에서 탈출하는 '보험'을 드는 거라고 봐야지. 왜 이걸 자꾸 비용으로만 보나?"
제법 합리적인 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여보게, 그건 너무 이상적인 얘기지."
"세상일이 그렇게 숫자로만 딱딱 떨어지냐. 이론하고 현실은 달라."
그들은 제가 제시한 '한전 부채'라는 명백한 현재의 문제, '발전원가 비교'라는 과학적 근거를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환경 규제 = 비용 증가'라는 낡은 신념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논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저 친구들은 배울 만큼 배웠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이들입니다. 그런데 왜 새로운 사실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고치려 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그 '지적 겸손'이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진짜 위험은 2035년의 감축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도는 바뀌었는데, 낡은 지도를 붙들고 "이 길이 맞다"고 고집부리는 '똑똑한' 기성세대,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낡은 신념을 갱신하길 거부하는 이 오만함이야말로, 후대에게 물려줄 가장 위험한 유산이 아닐까. 참 씁쓸하고 무거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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