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청산·사회대개혁’탄핵광장에서의 <주7일 배송이 필요없는 소비자모임> 깃발
정다울
야밤에 주문해도 새벽까지는 내 집 앞에 상품이 도착하는, 속도 전쟁의 시대. 필요 이상의 과잉 서비스가 필수요소인냥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명이 담보 잡히고 있다. 갑작스레 등장한 '로켓배송', '새벽배송', '주7일 휴무없는 배송' 서비스가 어느새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열린 '내란청산·사회대개혁'탄핵광장에서 나는 '주7일 배송이 필요 없는 소비자모임'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참여했다. 나는 당시 막 시행된 CJ대한통운의 주7일 배송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소비자 시민이 많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처럼 노동자 죽이는 택배 속도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고, 기왕이면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광장에서 접하고 공감이 일어날 수 있게 하고 싶어 깃발을 만들어 들고 나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탄핵 광장에서 사회대개혁을 함께 외쳤던 많은 시민들이 '나 역시 그렇다' 화답하며 공감해 주셨다.
'주7일 배송이 필요없는 소비자 모임' 깃발에 공감 시민들
탄핵광장에 나온 시민들, 소비자이기도 한 이들은 왜 빨리 받을 수 있는 로켓배송과 주7일 배송이 필요없다는 깃발에 공감했을까?
아마 우리는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비대면으로 전달되는 택배상자 뒤에 사실은 내게 이걸 전달해 주기 위해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내 택배를 가져다주는 노동자가 나와 같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살아 숨 쉬는 구성원인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른 새벽과 늦은 밤 나의 집 앞에 택배상자를 놓고 가는 택배노동자의 기척을 확인할 때면, "이렇게 이른(혹은 늦은) 시간까지 일하시는구나"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껴왔다.
주말, 공휴일 휴무는 사회적 약속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일 주5일 일하고, 주말과 연휴을 기다린다. 마침내 찾아온 주말·연휴에 가족 친지와 여가를 즐기고 데이트를 하고 충전을 한다. 일요일 저녁이면 몇 시간 후 돌아올 출근일에 자못 우울해 지기도 하는 일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말·공휴일은 다같이 쉰다'라는 사회적 약속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기업은 거리낌 없이 이 약속을 허물고 과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4시간·365일 쉼없이 물건을 사게 하고, 그 물건이 포장되고 배송되게 공장을 굴리고, 노동자를 사용한다. 사실 이런 서비스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현재 우리 사회가 너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벅찬 육아, 업무 후 장 볼 시간도 없이 돌아가는 생활, 그저 내일을 위한 휴식을 취하기도 바쁜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스크린 터치 몇 번으로 내일 아침 문 앞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는 세상은 얼마나 달콤한가.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피로도를 특정 직종의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게 아닐까? 괴이한 임금체계, 살인적 업무 스케줄 속에서 일하는 물류·유통 노동자들로 인해 이 달콤함이 유지되고 있다는 불편한 감각이 나를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이 정도의 과잉 서비스를 나는 먼저 원한 적이 없었다.
택배기사와 소비자 대립구도가 가리고 있는 진실

▲ 직접 제작해 탄핵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나눠줬던 스티커
서비스연맹
현재 뜨거운 감자인 '초심야시간 배송노동 제한'은 새벽배송 찬반을 둘러싼 택배기사와 소비자의 대립구도로만 비춰지고 있다. 심야노동으로 인한 택배노동자 건강권 대 소비자의 편익을 저울질 하게 하는 이 구도가 그야말로 폭력적이다. 로켓배송, 새벽배송 마케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택배사에 비해서도 유난한 쿠팡의 문제점, 즉 (더)낮은 배송 단가와 고강도 야간노동이라는 근본적 문제와 이를 해결할 키를 쥐고 있는 기업의 책임은 가려져있다. 노동자의 과로사 위험을 낮추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그리고 소비자의 편의를 가장 살리는 방향의 배송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는 건 기업이다.
새벽배송 이용자와 물량은 늘어가지만 이용 단가는 낮아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택배기사들은 기존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배송일을 하는 구조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새벽 배송이 필요하다 말하는 기사들의 배경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산재가 계속 발생하는 밤에 잠도 못자고 하는 고강도 노동임에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배송경쟁을 만들고,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만든 쿠팡은 책임 없는 침묵으로 노동자와 소비자의 싸움을 강너머 불구경 하듯 하고 있다.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것

▲ 탄핵광장에서 만난 택배노동자와 함께
정다울
나는 소비자로서, 그리고 노동자 시민으로 택배노동자의 인체에 해가되는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택배노동자가 시간 내에 막대한 물량을 배달하느라 쫒기며 일하지 않아도 생계가 충분히 유지 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노동환경이 만들어 지길 바란다. 그리고 광장에서 확인했듯, 내 편리를 위해 노동자가 죽어야 한다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나와 같은 시민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지난 겨울, 탄핵광장에서 깃발을 흔들며 말했다. 천천히 받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빠르지 않다는 건 불편이 아니라 나의 기분상의 불쾌함일 수 있다고. 죽지 않고 일하는 것, 죽을 만큼 일하지 않아도 잘 살아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어야 할까? 사람을 원료로 굴러가는 사회, 새벽배송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로켓만큼 빠르지 않아도 될 마음의 여유가 모두의 가슴에 씨앗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기다린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만난, '주 7일 배송이 필요 없는, 그리고 필요 없을 소비자'인 그 시민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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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현관문 앞 인기척... 이건 무언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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