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무는 벚나무 길 늦가을이 지는 거리는 썰렁하다. 푸름으로 가득하던 벚나무도 단풍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하다. 늦가을을 맞이하는 골짜기는 겨울준비로 바쁘다. 김장을 하고 장작을 패며, 기름 보일러를 점검하는 이웃들이다.
박희종
봄부터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던 벚나무다. 단풍이 드는가 했는데 어느새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세월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고 말았던가? 앙상한 가지만이 떨고 있는 아침은 썰렁하다.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파크 골프장도 비어있다.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인데, 늦가을 바람이 사람의 발길도 끊어 놓았다. 서둘러 들어선 체육관도 늦가을 분위기다.
언제나 많은 이웃이 어울려 운동하던 곳인데, 몇 명의 남자만 보인다. 골짜기 김장철을 알려주는 풍경이다. 서둘러 한 회원이 문을 나선다. 왜 그리 서두르냐는 질문에 김장하러 가야 한단다. 엊저녁에 절여 놓은 배추를 씻으러 가는 길이란다.
지난달 김장 축제가 열렸다. 수많은 배추가 실려오고, 소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배추를 절이기 위함인데, 저 많은 것이 필요하다니 대단하다. 축제일엔 밥도 얻어먹을 수 있고, 간단한 떡과 막걸리도 제공되는 알찬 축제였다. 골짜기의 넉넉함을 건네주는 바쁜 철이 돌아온 것이다.
시골에서 한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김장철, 곳곳에서 절임배추를 팔고 있다. 전국으로 배송 되는 절임 배추 생산이 동네마다 이루어진다. 비닐하우스가 절임 배추 공장으로 둔갑했고, 배추를 나르는 트럭이 오고 간다. 동네 단위로 공동 작업을 하고, 가족 단위로도 절임 배추를 생산한다.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오자 파란 조끼 입은 어르신들이 모여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이다. 건강을 챙기면서 적은 돈이라도 벌고 싶어 오신 분들이다. 얼른 인사를 하자 반가워하신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길러야 하는데..." 어느 어르신의 한탄 아닌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다. 죄송스러움에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도 햇살이 찾기에는 이른 골짜기다. 돌아오는 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언제나 문을 여는 무인노점상은 문을 닫았다. 계절에 따라 품목이 변하는 곳, 배추와 무 그리고 호박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비닐로 덮어 놓은 모습이 썰렁하다. 호떡과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도 문을 닫았고, 과일 상점도 포장으로 덮여있다. 늦가을의 추위가 모두를 움츠리게 한다.
도로에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도심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심으로 일거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해 일터로 나서는 일꾼들의 바쁜 발걸음이다. 먼산에도 늦가을이 찾아왔다.
초겨울의 문턱에서
낙엽송 잎이 누렇게 변했고, 언제나 푸르르던 소나무도 변했다. 가지 아래쪽으론 누런 잎이 차지했고, 위쪽으로 푸르름이다. 산 아래쪽으로는 누런 낙엽송이 자리했고, 위로는 푸름을 먹은 잣나무가 자리했다. 골짜기의 소나무와 산 모양이 저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주황빛과 초록이 만나는 자연의 모습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구김 없이 어우러지는 자연을 닮을 수 없을까 하고 허튼 생각을 해본다.
아침을 기다리던 햇살이 산을 넘어왔다. 어느새 하얀 서리발이 녹아들었고, 마음마저 따스하다. 서서히 골짜기가 깨어 날 시간, 아이들이 등굣길을 서두른다. 동네에 있는 두 명의 초등학교 학생, 동네의 보물이다. 등하굣길에 대형버스가 대령하고 있다. 오래전, 먼 자갈길을 오가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자 손을 흔든다. 얼른 동네를 지나 들어선 뜰에도 햇살이 가득이다. 귀하게 찾아온 맑은 햇살, 골짜기에 자리 잡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삶을 위한 처절한 몸짓은 맑은 햇살에도 무심했다. 햇살은 햇살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왔다. 아무 감각도, 느낌도 없이 살아왔던 지난날이다.
세월은 흘렀고 몸과 삶의 모습이 변했다. 자연이 아름답고, 햇살이 반가운 이유다.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한 세월이다. 이웃과 어우러지는 자연이 신비스럽다. 늙을 줄 몰랐던 어리숙한 삶이 알려준 사연이다. 언제나 젊음일 줄 알았던 그 세월은 어느덧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 문턱이다.
초겨울을 맞이하는 골짜기의 삶, 맑은 햇살과 놀고 있는 뿌연 안개가 산 허리를 감았다. 산 중턱을 오고 가는 안개는 쉼이 없다. 여기에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까? 인간의 노력으론 어림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단풍이 되어 초겨울 풍경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까? 늦가을이 초겨울과 다투는 골짜기 풍경에 생각이 멈추어버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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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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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인 김장 소금, 골짜기는 지금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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