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이 남로당원이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강제가입된 강영애
박만순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의 강영애는 남편이 남로당원이었다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도 가입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전에 월북했던 최동식의 아내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최동식이 월북하자 경찰은 청주 중앙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아내를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이른바 '할당제'로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에서 지역별로 할당을 내려 보도연맹원 확대를 꾀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도연맹 가입서에 도장이 찍힌 경우도 있었다.
보련초(保聯草)
보도연맹이 결성된 후 청원군 일부 면에서는 보도연맹 사무실을 두었다. 남이면이 그런 경우였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에 보도연맹원들은 매달 1회 혹은 비정기적으로 소집되어 제식 훈련 및 반공 교육을 받았다.
오창 보도연맹원들은 매달 오창지서의 소집으로 오창 도로변 큰마당에 모여 제식 훈련과 반공 교육을 받았다. 마을 일을 보던 이가 징을 치면 그것이 보도연맹원 소집 신호였다.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구타를 당해야 했다.
청원군 강내면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당시 정부에서 국방 헌금을 걷었는데, 강내면에서는 보도연맹원들이 그 일을 떠맡았다. 방식은 보도연맹원들에게 산에서 아무 풀이나 뜯어 오게 한 뒤 한약재상들이 이를 주민들에게 강매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보련초(保聯草)'라고 불렸다.
또한 지서에서 나눠 준 삐라를 마을 주민들 집 대문에 부착하기도 했다. 내용은 김일성과 공산당을 욕하는 반공 삐라였다. 강내면 보도연맹원은 외지로 출타할 시 반드시 지서에 보고해야 했다. 그들은 간혹 청주의 보도연맹 사무실에 가서 반공 강연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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