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졸업식에 함께 한 모자 1981년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김성만씨
김성만
독재정권 치하에서 어머니가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지할 곳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하나님이었고, 또 하나는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고 서울구치소로 와서 나를 면회한 다음 민가협으로 향하셨다. 어머니는 나의 구명을 호소하는 유인물 한 뭉치를 옆에 끼고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민가협 문을 나설 때면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결의로 가득 찼다고 하셨다.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 촉구 집회 때 어머니에게 연단에 올라가서 말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하지만 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가 무슨 말을 잘하실 수 있었을까? 청중들에게 성만이가 살아나게 도와달라고, 사형수로 집행당할 처지에 있는데 결코 간첩이 아니라고 호소하다가 설명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우시기만 했다. 그렇게 울며 연단에서 내려가실 때 함께 있던 청중들도 모두 함께 울어 집회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면회 오셔서 불쌍한 아들을 바라보고는 늘 눈물을 보이시며 괴로워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가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내가 죽는 거야 내가 자초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사형선고 이상의 고통이었다. 내가 소내 생활을 하며 이런 연유로 힘들어하는 것을 아는 한 교화위원이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 말은 어느 잡지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박종철 아버지가 김세진 어머니를 그렇게 부러워한단다. 세진이 어머니는 세진이가 보고 싶으면 아들 무덤에 가서 실컷 울 수 있지만, 박종철 아버지는 종철이가 보고 싶어도 치안본부가 종철이 시신을 없애버려서 어디 가서 울 데가 없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너의 어머니는 살아있는 너를 만나러 오니 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만남이냐?"
그 말을 듣고 나는 더는 슬퍼하지 않았다. 면회 시간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임을 깨달았다. 나는 면회 시간에 어머니와 만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며 살았다.
고우영 만화에 등장한 "김성만을 죽이지 말라"
민가협 어머니들은 곳곳의 집회 현장을 다니면서 사형수를 살려야 한다고 외치셨다. 집회마다 사형수를 살리자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각종 신문과 잡지 인터뷰를 어머니께 주선하며 나의 억울한 사정을 널리 홍보하게 해주셨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내 절박한 사정이 점점 더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나갔다. 그러던 한날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당시 신문을 잘 읽지 않는 재소자들도 스포츠 신문만은 챙겨서 보았다. 그중에서도 고우영 작가의 만화가 실리던 <일간스포츠>를 많이 구독했다. 대다수가 고우영 만화를 보기 위해 <일간스포츠>를 본다고 했다. 그만큼 고우영 만화가 사회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의 만화 내용이 폭정을 일삼는 관리에게 한 의인이 항의하다가 옥에 갇혀 죽게 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한 컷에 의인이 아니라 "김성만을 죽이지 말라는 소리가 시중에 드높은데"라는 지문이 슬쩍 등장했다. 그러고는 만화는 바로 본래 내용으로 돌아갔다. 고우영 작가가 자신의 만화에 그런 대목을 집어넣을 만큼 민가협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민가협 덕분에 꺼져 가는 목숨을 구하다
이러한 사회적 울림은 나의 감형에 대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굳은 의지를 만들어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1로3김(1盧3金)'이 1988년 11월에 5공화국의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 '5공청산' 문제를 협의하는 중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배를 떠난 그 시기였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5공청산 최종 협의안에 동의했으나 김대중 총재는 합의를 거부했다.
그러자 노태우 대통령이 그날 밤 김대중 총재에게 밀사를 보내 '어떻게 하면 합의를 하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대중 총재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나의 감형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두 가지 조건 중 나의 감형만을 수용했고, 김대중 총재가 동의함으로써 '1로3김'의 5공청산 합의가 최종 타결됐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감형됐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군사독재 치하에서 견결한 투쟁으로 양심수 석방과 인권신장을 이루어내셨다. 그렇게 투쟁하시면서 사형 집행을 앞둔 양심수를 살려내는 기적도 만들어내셨다.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던 나는 어머니들의 구명운동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늘보다 높은 민가협 어머니들의 은혜에 더없는 감사함을 느끼며, 나는 오늘까지도 어머니들께 깊은 존경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구미유학생사건의 김성만 구미유학생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던 김성만씨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구명 운동으로 무기로 감형됐고, 35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성만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주요 내용 및 일정]
● 사진전 '엄마들의 보랏빛 꿈' : 11월 13~21일(인사동 아지트미술관)
● 심포지엄 '민주와 인권을 향한 40년, 어머니의 위대한 여정' : 11월 27일(금) 오후 2시 국회의원 회관 8간담회실
● 특별헌정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 12월 13일(토) 오후 4시 한양대 올림픽체육관
● 사진집 '엄마의 보랏빛 꿈' : 11월 5일 발간(인터넷서점 판매 중)
● 기념도서 '민가협 40년, 그 보랏빛 여정' : 12월 초 발간 예정
● 미니다큐 '민가협을 기억하다'(총 20편) : 민가협 40주년 유튜브 채널 민가협40년 - YouTube에 공개
● 민가협 관련 자료는 온라인기록관 민가협 40년 기록관에서 볼 수 있으며,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내용은 홈페이지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민가협 40주년 헌정공연 제작 후원 https://www.socialfunch.org/mkh40
● 문의 : 안영민 상임운영위원장(010-8010-7013), 이병인 사무국장(010-3786-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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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 창립된 민주화실천기족협의회(민가협)의 40주년을 맞아 민가협의 활동과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직입니다. 12월 13일 민가협 40주년 특별 헌정 공연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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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앞둔 양심수, 기적적으로 살려낸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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