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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일하는 청년들의 '안전 기지'? 류호정의 자기 부정

[주장] 류 전 의원 <조선> 칼럼이 놓친 현실... 쿠팡은 탈출구 아닌 '최후의 보루'일 뿐

등록 2025.11.14 13:41수정 2025.11.15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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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11일,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왜 그러고 사냐고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
지난 11월 11일,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왜 그러고 사냐고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 <조선일보>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은 <"왜 그러고 사냐?" 물의신다면>이라는 제목의 지난 11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청년들은 중소기업에서 배울 게 없다고 느끼면, 쉽게 말해 쿠팡 알바보다 나을 게 없으면 어렵지 않게 'EXIT'(탈출구)를 결정한다. 쿠팡은 일하는 청년들의 '안전 기지'가 됐다. 듣기 거북해도 현실이다."

류 전 의원은 쿠팡이 청년들의 안전 기지이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썼다. 물론 쿠팡 물류센터의 경우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고 상시 고용이 이루어지며 적어도 임금은 제때 나오는 건 현실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쿠팡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사망 또한 명백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한때 공개적으로 문제화해온 사람이 바로 류 전 의원이다. 그는 2020년 국회에 입성한 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를 꾸준히 질의했고, 의정활동을 통해 쿠팡의 노동현실을 지다. 2020년 6월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향해 '국감 증인 0순위'라며 "쿠팡은 불안정노동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했다. 쿠팡 물류센터 전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류 전 의원은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하며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로 산재 사고, 장시간·고강도 야간노동으로 인한 뇌 심혈관 질환과 각종 업무상 사고에 고통받고 있다"며 "쿠팡이 물류산업의 노동기준이 되는 것은 일하는 시민 모두에게 큰 불행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가 10명"이라고도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쿠팡은 청년들에게 안전 기지'라고 표현했다. 어떤 문맥에서도 이 표현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왜냐하면 쿠팡은 결코 안전한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뒤에 놓인 수많은 재해·사망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2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쿠팡 4개사에서 발생한 산재 승인 건수만 7640건(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달하며,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사망자는 23명(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으로 추정된다.

류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 지적한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에도 새벽배송 기사·물류센터 분류노동자·상하차 노동자의 사고·사망이 이어졌다. 당장 류 전 의원의 칼럼이 게재된 전날인 10일 새벽에도 쿠팡 새벽배송 기사가 졸음운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숨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오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7시에 퇴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 청년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잠깐 기댈 수 있는 일자리로서 안전기지에 해당한다는 류 전 의원의 서술은 잘못됐다. 이런 말은 쿠팡이라는 거대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와 책임을 희석시키고, 오랜 시간 위험을 감수해온 노동자들의 현실을 가린다.

류호정의 칼럼이 아쉬운 이유


 지난 2022년 류 전 의원은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하며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로 산재 사고, 장시간·고강도 야간노동으로 인한 뇌 심혈관 질환과 각종 업무상 사고에 고통받고 있다"며 "쿠팡이 물류산업의 노동기준이 되는 것은 일하는 시민 모두에게 큰 불행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가 10명"이라고도 했다.
지난 2022년 류 전 의원은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하며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로 산재 사고, 장시간·고강도 야간노동으로 인한 뇌 심혈관 질환과 각종 업무상 사고에 고통받고 있다"며 "쿠팡이 물류산업의 노동기준이 되는 것은 일하는 시민 모두에게 큰 불행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가 10명"이라고도 했다. 류 전 의원 X 갈무리

류 전 의원의 칼럼이 문제적인 이유는 또 있다. 그는 글에서 '엑시트'(EXIT, 출구)를 재차 강조하며 "더 많은 엑시트를 만들자"면서 그것이 "정치가 해야 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 정도는 아니더라도 수입이 보장되는 중소기업을 지방에 육성하고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쉽게 하면 청년들도 좋고 기업들도 노동 유연화로 일석이조 아니냐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런 설명은 쿠팡의 일자리가 왜 청년들의 탈출구처럼 자리 잡게 됐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을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문제나 지방 일자리의 황폐화를 지적한다고 해서 쿠팡이 안전한 일자리가 되는 것도, 쿠팡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 시절 그 책임을 부르짖었던 류 전 의원은 이젠 쿠팡을 향해선 말 한 마디 없다.

게다가 쿠팡은 노동 유연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개인사업자·특수고용직·단기계약직을 무한히 확장해왔고, 그 구조는 청년들을 '근로기준법' 바깥의 노동환경으로 몰았다. 류 전 의원이 "청년들의 엑시트 선택지가 많아지면 기업이 염원하는 '노동 유연화'도 자연스레 이뤄진다"며 쿠팡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청년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만 볼 수 없다.

류 전 의원은 칼럼의 말미에 "내 선택을 즐겁게 설명할 수 있는 삶은 행복하다"고 적었다. 류 전 의원은 노동자들에게 과로를 강요하는 쿠팡의 알고리즘 아래에서 몸이 망가진 사람들, 새벽배송을 뛰다가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가족, 쿠팡 물류센터에서 쓰러진 동료를 지켜본 노동자들이 쿠팡에서 일하겠다는 선택을 즐겁게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쿠팡에 일하는 많은 이들에게 쿠팡은 탈출구가 아닌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류 전 의원의 말대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있다. 그래서 쿠팡과 같이 일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사망하면 정치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은 해당 기업을 감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노동권을 법과 제도로 지켜내고, 안전을 비용으로 환산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류 전 의원은 과거 국회에서 그 역할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수행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이번 칼럼은 낯설고, 당혹스럽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쿠팡은 안전 기지가 아니다. 그곳은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에게 위험한 일터다. 비록 류 전 의원은 쿠팡의 책임을 묻는 일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치는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연합뉴스
#산업재해시민 #조선일보 #류호정 #쿠팡산재 #쿠팡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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