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체 대화방은 어른에게 요즘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학습 공간'이다. by @efekurn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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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단체 대화방은 어른에게 요즘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학습 공간'이다. 그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여러 차례로 나눠 보낼지언정 한 줄을 넘기지 않는다. 서너 단어 이상의 문자 메시지를 보기가 힘들다. '극한의 간결체'가 단체 대화방의 철칙이다.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나는 담임교사들은 학급 대화방에 초대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폭포수 떨어지는 듯한 대화 속도에다 '직독 직해'가 어려워서다. 이튿날 반장 등을 따로 불러 해당 대화의 요점과 결론을 묻는다는 교사도 있다.
"앙, 기모띠."
최근엔, 조금 과장하자면, 하루에 백 번도 넘게 듣는 표현이다. '기분이 좋다'는 뜻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나 두루 쓰인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도, 수업 시간 퀴즈를 맞혔을 때도, 음식이 맛있을 때도, 자신의 SNS에 하트가 달렸을 때도 부지불식간 외치는 감탄사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째진다'거나 '쩐다', '개좋다'는 등의 된소리가 섞인 표현이 많았는데, 이젠 거의 들을 수 없게 됐다. 대신 그 자리를 꿰찬 게, 일본어에서 유래된 감탄사다. '기모띠'는 기분이라는 뜻의 명사 '키모치'에서 변형된 표현이라는 게 통설이다. 곧, '한국화한 일본어'인 셈이다.
이 표현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이를 초등학생들이 가장 즐겨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럼없이 사용하다 보니, 요즘 아이들에겐 일상의 표준어가 됐다. 아직은 입말체에 머물러있지만, 서술형 답안지에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기실 이는 입 밖으로 꺼내기가 민망한 단어다. 일본어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 이유는 아니다. 외래어가 우리말에 습합되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할뿐더러 그걸 나쁘게만 볼 이유도 하등 없다.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흔히 '야동'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성인물을 통해 아이들에게 확산된 표현이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과 유치원생에게까지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면서, 성인물을 접하지 않은 아이들이 드문 현실이다. 적어도 남자 고등학생의 경우, 빈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한두 번쯤은 경험한다. 일본의 성인물이 아이들 사이에 대화의 소재가 될 때도 있다.
개중에는 일본의 특정 남자 성인 배우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는가 하면, 드물게는 성인물에 출연한 여자 배우들의 이름을 줄줄 꿰는 마니아도 있다. 그들에게 '앙, 기모띠'에 대한 거부감이나 민망함 따윈 없다. 일본에서 건너온 당당한 '외래어'라는 거다.
부모와 교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바룰 일차적인 책임은 가정과 학교에 있다. 그들 앞에서 올바른 언어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것은 기본일 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우리말과 외국어처럼 두 개의 언어로 '분화'될 우려도 있다.
사전적 의미가 통하지 않고 상황과 어감으로 그 뜻을 이해해야 한다면, 동일한 언어라고 할 수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특정 단어가 명멸하는 건 세상의 이치일 테지만, 그것이 세대를 갈라치는 현실은 바루어져야 한다. 언어가 '세대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면 과연 억측일까.
사고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비속어의 남용이 고운 우리말을 밀어내는 것도 안타깝지만, 사용하는 단어의 수조차 줄인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천편일률적일 만큼 표현이 단조롭고 자기 생각을 명확히 설명하지도 못한다. 어휘력이 사고력과 정비례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입말체와 글체의 거리가 멀어지는 분위기도 경계해야 한다. 글쓰기에 서툴다 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비속어가 난무하는 입말체를 그대로 문서에 옮겨 적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긴 입말체와 글체 따질 것 없이, 진술서와 서술형 답안지에 등장하는 언어는 이미 '국어'가 아니다.
'앙, 기모띠'처럼 비속어와 함께 저급하고 자극적인 성인물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는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과 확산 문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젠 AI까지 가세해 이후 전개될 양상과 부작용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부모는 무기력한 학교 교육을 탓하고, 학교는 자녀 교육에 무관심한 가정에 책임을 떠넘긴다. 그런가 하면, 저질 콘텐츠의 양산과 범람을 방치한 정부의 무능함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돈벌이에 공공선은커녕 기본적인 윤리의식마저 내팽개친 개인과 기업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은 한가하게 남 탓할 상황이 아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당장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부모는 스마트 기기가 자녀의 정신을 순식간에 황폐화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부는 가짜 뉴스와 유해 콘텐츠의 온상이 된 SNS에 대한 정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아이들이 가정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의 책임과 역할은 더욱 크다. 교실에서 낯 뜨거운 비속어가 횡행하는데도 교사들이 방임과 회피로 일관해 온 관성부터 타파해야 한다. '꼰대질'로 욕먹을지언정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 바루지 않으면 비뚤어지는 게, 아이들이다.
나중에 철이 들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비속어를 쓰지 않게 된다는 주장도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언어는 사고의 집'이라는 금언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어릴 적 비속어로 지어진 사고의 틀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10대와 청년 세대의 극우화는 비속어의 남용과 무관치 않을뿐더러 이를 방치했다간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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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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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스스럼없이 "앙, 기모띠"... 현실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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