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1.17 09:43수정 2025.11.22 11:1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때 친구가 전화로 하소연을 한다. 평소 아들에게 서재에 있는 칸트 좀 읽어보라고 수없이 말했건만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번 수능 국어, 영어에 칸트가 많이 나왔더라며 아들이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친구에게 진인사대천명이니 편안히 결과를 기다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달래본다.
이날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나 방송을 볼 때 가끔 알아듣지를 못한다. 몇 번씩 되물으면 친구들이 꼭 하는 말은 "너 가는 귀 먹은 것 같다"고 한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들었는데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신경이 쓰여 나름 내 생활패턴을 되짚어보았다.
혹시 이어폰으로 방송이나 음악을 크게 들어서인가 싶어 나름의 강구책으로 당분간은 폰 없이 다녀보기로 했다. 중요한 일 외 가볍게 마트나 도서관을 가는 경우에는 폰을 놓고 다닌다. 한때는 급한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폰을 놓고 다니지 못했으나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외에 무엇이 중요할까 싶어 손 안의 전화기를 포기한다. 설사 생사가 걸린 문제라 해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폰 없이 다니다 보니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린다. 매일 보는 거리 풍경이 뭐가 새로울까 싶지만 매일매일이 변화무쌍하고 미묘하게 다르다. 어제는 초록과 연두의 그라데이션을 그리던 넓은 나뭇잎이 하루 사이에 샛노란색으로 바뀌어있다.

▲ 눈여겨보면 자연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무쌍하다
임혜영
부르릉 쌩쌩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들리는 것 같지만 그 틈새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언젠가 호로롱하는 새소리를 듣고 그 청아함에 놀라 옆 친구에게 새소리 너무 좋지 않냐고 했더니 시끄럽기만 하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손에 폰이 없으니 자연히 생각 속에 침잠하게 된다. 그러다 칸트 때문에 속상해하던 친구를 생각하며 예전에 들은 말을 떠올려본다.
인생의 멘토이신 한 선생님이 오래 전에 "왜 오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칸트를 숭앙하는지 아느냐"며 들려주었다. 칸트는 매일 산책을 하며 상념을 정리했는데 "네가 행하는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어도 무방할 때만 그 행동을 하라"고 설파하였다. 내가 하는 행동을 누구나 해도 되는 걸까라고 고민하다 보면 사뭇 삼가고 조심하게 된다. 스스로 올바른 인식 체계를 세우라는 옛 철학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이가 들면 호기심이 사라지고 그 어떤 것에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가 옳은 소리를 해도 식상하다고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하나 인생의 진리는 지루하고 뻔한 말 속에 다 들어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나이 듦의 미덕일 것이다.
인생의 선배이자 나의 가장 가까운 말 벗인 어머니에게도 칸트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다. 어머니는 이미 아실 수도 있으나, 다 아는 내용이라도 딸이 말하면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호응해 주실 것이다. 만약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셨다면 칸트에 대해 줄줄 읊으며 딸 앞에서 한껏 지식을 자랑하셨겠으나 아쉽게도 아버지와의 대화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오늘 저녁에는 단출하게 어머니와 단 둘이서 깊어가는 밤을 칸트 이야기로 채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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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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