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하얀 봄' 공연 연습
미디어랩시소
<하얀 봄>이라는 제목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다. 옥자연의 해석도 연습을 거듭하며 조금씩 변해왔다. 대본을 읽기 전, 그는 이 말을 단순히 "깨끗하고 밝은 젊음" 정도로 짐작했단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난 뒤 떠오른 이미지는 전혀 달랐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거리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꽃잎 사이로 보이는 전경의 방패와 곤봉, 그 틈을 헤매는 청춘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연습이 깊어질수록 이 제목은 흑백사진에 가까운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선명한 색은 사라지고, 정확한 윤곽도 흐려져 언제든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과거의 기억. 배우는 '하얀 봄'을 그런 기억의 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분명 뜨겁게 살았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빛바랜 사진처럼만 남아 있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 봄이 완전히 과거형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하얀 봄>은 연수와 윤정의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다. 90년대 초 질풍노도 같은 시기를 함께 보냈던 이들이 무엇을 꿈꾸었고, 그 꿈이 시간이 흘러 어떤 현실로 남았는지, 또 그다음 세대의 청춘에게 어떤 흔적으로 전해졌는지를 묻는 구조다. 옥자연은 이 지점을 중요하게 짚으며, '하얀 봄'이 결국 "다시 어떤 색으로든 피어날 수 있는 새로운 봄의 가능성"을 품은 제목이라고 말한다.
바랜 흑백사진 같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색을 기다리는 빈 캔버스 같은 시간.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질문, 미래의 희망이 하나의 계절 안에서 서로를 비추는 구조가 바로 <하얀 봄>이 지닌 독특한 결이다.
20대와 50대 연수, "완전히 같지도, 완전히 다르지도 않은 사람"
연극의 구조상, 20대 연수와 50대 연수가 한 작품 안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젊은 시절의 선택과 방황이 중년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그 연결을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배우 자신의 인생이 작품과 겹쳐진다.
옥자연은 종종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과거를 되짚어본다고 회상했다. 인생은 몇 차례의 굴곡을 지나며 계속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은 분명 변하지만 또 어떤 지점에서는 한결같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10대의 나, 20대의 나, 지금의 내가 과연 같은 인간인가"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털어놓는다.
연수를 연기할 때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20대의 연수와 50대의 연수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기를 바란다. 젊은 날의 결핍과 상처가 형태를 달리해 중년의 얼굴에 남아 있으면서도, 그 사이에 쌓인 시간과 경험이 분명히 느껴지는 인물. 과거의 연수가 끝내 말하지 못했던 감정과 미뤄 두었던 선택이, 50대 연수의 몸짓과 눈빛 안에서 어떻게 비틀려 나오는지 세심하게 짚어내려 한다.
관객은 두 시기의 연수를 통해 각자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나와 버린 20대의 얼굴일 수도 있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50대의 표정일 수도 있다. <하얀 봄>은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관객의 거울이 되는 작품이다.
'모든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라이브'로서의 연극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옥자연에게, 무대는 여전히 특별한 자리다. 그는 연극 연기를 음악에 비유한다.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가 악기 하나하나를 따로 정교하게 녹음해 나중에 합치는 작업이라면, 연극 무대는 모든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라이브 공연과 같다.
허공에 울리는 한 마디 대사, 상대 배우의 눈빛, 무대 뒤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객석에서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웃음과 정적까지. 이 모든 요소가 매 순간 동시에 작동하며 한 편의 공연을 만든다. 배우와 관객, 스태프까지 모두가 그날의 공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 이번 작품에서 옥자연은 이 감각을 더욱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특히 <하얀 봄>에는 상대 배우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장면이 많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도, 현재의 만남에서도 상대를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장면이 된다. "나는 누구고,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매일 다른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고 한다. 어떤 날은 미안함이 앞서고, 어떤 날은 원망이 먼저 치고 올라오며, 또 다른 날에는 설명하기 힘든 연대감이 스며든다.
무대 위에서 떠오른 감정들은 곧바로 전염되고, 다른 배우들의 몸과 목소리를 타고 다시 변주되어 퍼져 나간다. 그 과정 전체가 라이브다. 관객은 그 라이브의 마지막 지점에서 이를 마주한다. 화면과 편집을 통해 다듬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감정의 진동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리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넓은 객석은 이 진동을 고스란히 품어내는 그릇이 된다.
"연극에는 엑스트라가 없다"는 말의 울림

▲ 하얀 봄 연극 포스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자연이 연극을 생각할 때 자주 되뇌는 문장이 하나 있다. 극작가 친구가 들려준 "연극에는 엑스트라가 없다"는 말이다. 영화에는 화면 뒤편을 스쳐 지나가는 익명의 군중이 있을 수 있지만, 무대 위에 발을 올리는 순간부터 누구도 배경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이 생각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관객이 객석에서 잠깐 스쳐 보는 인물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은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옥자연에게 연극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 관객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예술"이다.
그래서 그는 매 공연을 관객과 대화를 청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준비해 온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내놓고, 그 반응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이야기의 결을 조정해 가는 과정. 관객이 그날의 공연을 어떤 표정으로 받아들이는지, 어떤 장면에서 숨을 고르고 어떤 대사에서 미세하게 소리를 내는지에 따라 공연의 리듬도 달라진다. 이런 변화무쌍함이야말로 연극이 가진 고유의 힘이다.
정답 없는 연극, 작은 동요 하나라도 일어난다면?
<하얀 봄>은 특정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작품이 아니다. 옥자연 역시 이 연극을 "정답이 없는 연극"에 가깝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1990년대의 거리 풍경과 최루탄 냄새를 생생하게 떠올릴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젊은 날 자신이 감당하지 못했던 불안과 두려움을 떠올릴 것이다. 또 다른 관객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봄이, 막연한 기대와 함께 떠오를지도 모른다.
배우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다. 그저 관객 마음 안에서 아주 작은 동요라도 일어나는 일이다.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가는 길에, 혹은 며칠이 지나 문득 떠오르는 장면 한 조각, 문장 하나, 표정 하나가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극단 놀땅의 <하얀 봄>은 2025년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1990년대 초 빛나고도 아팠던 청춘들의 봄, 그리고 30년이 지난 뒤 여전히 제 자리를 찾아 헤매는 오늘의 우리를 함께 비추는 무대. 연수로 서는 옥자연은 관객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누구에게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색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흑백사진처럼 빛바랜 봄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새로운 색을 덧칠할 수 있을 뿐이다. <하얀 봄>의 무대 위에서 옥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그 덧칠의 순간을 관객과 함께 바라보자는 초대다. 정답 대신 작은 동요 하나. 그 진동이 겨울 대학로의 차가운 공기를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는다면, 각자의 '하얀 봄'은 다시 한 번 자기만의 색으로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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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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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광화문의 공포, 전경의 행렬... 옥자연이 길어올린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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