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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 맞선 7년...내 고통을 변화의 자원으로 쓰고 싶다"

[인터뷰]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에 대한항공 사내 성폭력 고발 당사자..."피해자 회복 시스템 절실"

등록 2025.11.19 18:00수정 2025.11.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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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수상자 장유정(가명)씨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수상자 장유정(가명)씨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진민

한 여성노동자가 법적 투쟁이란 활주로에 섰다. 사내 성폭력을 외면하려던 대한항공의 퇴로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7년의 넘는 기간을 버텼다. 대법원은 대한항공에 성폭력 사건에 대한 책임은 물론, 가해자 무징계 사직 처리 역시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대한항공을 비롯해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한국 기업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언론 앞에 섰고, 시민단체와 연대했고, 다시 회사에 복직했다. 그런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의 딸과 다음 세대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항로를 보여주겠다는 것. 성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일터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은 대한항공 여성노동자 장유정(가명)씨에게 돌아갔다. 2017년 7월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장씨는 2020년 7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장씨는 사건 발생 7년 4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고 사직 처리한 회사에 책임을 물었다.

이번 수상을 두고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장씨는 가해자를 방치한 회사와 싸우며 사내 성폭력 사안에서 회사의 책임과 역할을 일깨워준 인물"이라며 "노동 현장에서 쉽지 않은 '개인 투쟁'을 이어오며 다른 여성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라고 설명했다.

장씨는 시상식 전날인 1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성폭력 피해자로서 오랜 시간 고립됐던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싸우겠다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전했다. 특히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이하 고평실)이 연대의 손을 내밀었고 이번 수상 상금 역시 그곳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당사자로서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성범죄 피해자의 '회복할 권리'를 시스템으로서 보장하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일터로 복귀했을 때 그를 향한 2차 가해를 차단할 수 있도록 조기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간 나의 이야기를 고통의 서사가 아닌 변화를 만드는 자원으로 쓰고 싶다"라며 "안전한 사회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생존자로서 겪은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내 성폭력 피해자가 무사히 일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및 조력 단체 지원에 힘쓰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나 대신 분노해준 활동가들 덕분"

 새 로고가 적용된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2025. 03. 12.
새 로고가 적용된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2025. 03. 12. 소중한

-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을 받게 된 소감은.


"사내 성폭력 피해자로서 고립된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내 용기 때문만이 아니다. 함께 싸우겠다고 손을 내민 사람들, 나 대신 분노한 활동가들 덕분이다. 특히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을 비롯해 고평실에서 함께 버텨줬다. 재판 과정에서 법률 자문, 연대 재판 방청 등 도움을 줬고 회사 복귀 과정에서 노무사를 지원해줬다. 그 덕분에 다시 일터로 복귀하게 됐다.

고평실로부터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다. 수상 상금 전액을 서울여성노동자회 고평실에 기부할 예정이다. 또 고평실의 중요성을 알려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여성노동자들이 더는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일터에서 살아가게 만들고 싶다."

- 여성노동운동가로서 그간 7년의 투쟁을 돌아본다면.

"내게는 버티는 시간이자 동시에 배우는 시간이었다. 피해자인 나를 향한 폭력과 배제의 순간도 있었지만, 한국 노동 정책이 가진 제도적 결함과 변화 가능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시간이기도 했다. 단순히 기업과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 또 기업과 조직을 어떻게 바꾸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깊이 배웠다.

그 경험은 회사를 복직한 이후 현장에서 여성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과 절차를 설계하고 안전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주변 동료들 중에 직장 내부 문제로 힘들어해도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직원 복지 규정이나 회사에 직무 재배치를 요구하는 과정 등을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돕고 있다."

-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내가 여기서 멈추면 누군가 더 어려운 길을 걷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내 딸을 포함해 다음 세대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내가 겪었던 문제, 제도적 한계 등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바꿔 새 길을 열어야 한다면,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텼다."

"가해자 처벌 강화가 정답 아냐… 피해자 회복 시스템 절실"

- 사내 성폭력 피해 당사자로서 한국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단순히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거나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가장 절실한 것은 피해자를 위한 회복·복귀 시스템이다. 법적으로 피해자가 이긴다고 해도 다시 일터와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까지 순탄한 것은 아니다. 많은 회사가 '알아서 적응하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가해자와 가까운 동료들이 피해자에 대한 괴롭힘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내부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복귀 절차, 2차 가해를 차단하는 인사 관리, 전문가가 개입해 피해자의 근무 환경을 점검하는 조기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기업과 사회의 성장을 저해하는 제도가 아니다. 결국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노동자 피해를 사전 예방해 위험을 관리할 수 있게 한다."

- 회사 복귀 과정에서도 '피해자 회복 시스템 마련'을 강조했다고 들었다.

"회사에 직장 내 성희롱 전담 부서를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회사의 미흡한 대응으로 7년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그 경험을 통해 다른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연대자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같은 부서를 만들고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회사의 발전과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장씨가) 이런 업무를 맡게 되면 피해자로서 트라우마가 재발할 수 있다'고 부서 개설 및 직무 배치 요청을 반려했다. 큰 아쉬움을 느낀다."

- 여성노동운동가로서 활동 계획이 있다면.

"내 이야기를 고통의 서사가 아닌 변화를 만드는 자원으로 쓰고 싶다. 사회와 조직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내 경험을 보탤 수 있다면, 7년의 시간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존자로서 겪은 경험을 사회적 제도 및 시스템과 연결하는 일이 내 역할이라고 믿는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대응의 허점과 조직 문화의 구조적 한계도 함께 짚어내겠다."

- '김경숙상' 수상자로서 한국 여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내가 겪었던 피해와 고통을 여러분이 겪지 않았으면 한다. 또 겪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를 위해 고평실처럼 피해자 회복을 지탱하는 공간이 건재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활동가들과 함께 연대하겠다. 함께 싸워준 신상아 회장에게 고맙고 이제부터 내가 옆에서 함께하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인 내 딸에게 강인한 엄마로 기억될 수 있도록 끝까지 버텨내겠다."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수상자 장유정(가명)씨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수상자 장유정(가명)씨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진민
덧붙이는 글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수상자 장유정씨는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에 상금 전액을 기부할 예정입니다. 장유정씨와 함께 후원을 원하신다면 '우리은행 115-318425-13-203 (사)서울여성노동자회'
#대한항공 #사내성폭력 #김경숙상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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