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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본 학생들에게 건네고픈 '명불허전' 문장

헤르만헤세 <데미안> 속 '나를 신뢰하는 말'... 50대를 준비하며 읽는 고전

등록 2025.11.20 10:59수정 2025.11.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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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때는 <데미안>을 읽고 "알을 나오려고 투쟁하는 나",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유명한 문구에 매료됐다. 당시 필자의 세계인 학교를 깨뜨리고 탈출하기 위해 공부했다. 그렇게 하면 헤르만 헤세의 지성에 닿을 수 있을 듯했다. 이는 공부 해야 하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부모님이 바라는 그런 착실한 방법으로 필자는 그 세계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깨뜨려야 하는 세계는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 골고다 언덕의 죄수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들이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 성경을 다르게 해석했다. 궤변 같은 그 해석이 40대 후반의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성경처럼 내가 절대적으로 믿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첫 번째가 캠핑이었다. 캠핑은 힘이 필요하므로 남편과 꼭 함께 가야만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캠핑을 가고 싶어도 남편이 귀찮아하거나, 스케줄이 맞지 않을 때면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방법만 숙지하면 나 혼자 텐트를 칠 수도 있고, 캠핑장에서 혼자 자는 것도 무섭지 않다. 방음이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하다. 옆 장소 사람들이 내 비명을 듣고 헐레벌떡 나올 테니까. 편견을 버린 덕분에 '솔캠(나홀로 캠핑)'이 가능했고, 나만의 시간과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 남편은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내가 '솔캠'에 임하는 자세).

보듬어 안고, 기다리는 지혜

 40대에 읽은 데미안
40대에 읽은 데미안 박이연

고등학생 시절에는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데미안이 나서서 해결해 준 것이 믿음직스럽고 멋있었다. 크로머를 두려워하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말했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준 데서 비롯해"(p.54)
"그런 두려움이 우리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거야"(p.56)
"넌 그 녀석을 떨쳐야 할 것 같아! 달리 안된다면 그 애를 때려죽여"(p.57)

30년이 지난 지금, 크로머는 학교 폭력 가해자, 싱클레어는 피해자이다. 싱클레어는 운 좋게 데미안을 만나 상황을 해결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데미안의 역할은 누구의 몫일까? 학교 선생님, 부모, 유능한 상담사, 정신과 의사? 내가 두려워하는 그 무엇에게 나를 지배할 힘을 내어주지 않는 것. 그게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핵심이다.

그 대상은 학폭 가해자, 직장 상사, 수능 점수 일 수도 있다. 데미안은 그 해결 방법을 과격하게 "때려죽여"로 표현했지만, 그것은 투쟁과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책은 개성 있고 용기 있게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두려움을 인식하고, 그 힘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인 것이다.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한 말.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있으며 계속 피 흘린다."(p.28)

어떤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르면서 치유되고 잊혀 가는 듯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계속 피를 흘리고 있다는 그 표현은 아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딱지가 생기고 새살이 돋고 괜찮아 보이지만, 당사자는 여전히 비밀스러운 방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 이제 그만 괜찮아지라고 강요하는 것 또한 다른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보듬어 안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p.149)

필자도 10년 다닌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그 상사를 무척 미워했고, 억울했다. 그런데 이 문구를 읽고, 직장 상사의 싫은 모습이 내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어떤 것과 닮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타인을 미워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가 그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 사람을 덜 미워할 수 있었을까?


인생의 꼭지를 지날 때마다 읽어봄직한 책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아.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p.115)

이 문장은 지난주 수능을 본 수험생들과 필자의 자녀에게 공유하고 싶다. 힘들 때 이 문장이 그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나이고, 나에게는 그런 힘이 충분히 있다는 것, 나 자신을 신뢰하는 것, 자기 효능감의 시작이다. 30년이 지나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명문장은 바로 서문이다.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p.9)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나이와 역할, 상황 속에서 스스로 타협하고 살기 때문에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10대 때처럼, 나 자신을 성찰하며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깊은 사색을 위해서는 휴대폰을 끄고, 자연 속 고립도 좋은 방법이다. 필자는 이번 주 '솔캠'을 통해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을 탐색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데, 내가 망설이는 이유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세밀하게 고민해 볼 예정이다.

50대를 준비하는 40대 후반, 필자의 삶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깊은 자아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데미안은 성장 소설로 분류된 청소년 권장 도서이지만, 이 책은 인생의 한 꼭지를 지날 때마다 한 번씩 읽으면 그만큼 위로가 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고전은 명불허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 스토리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h20514)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


#데미안 #독서 #학교폭력 #수능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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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언어재활사입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학교폭력, 장애인 인식 개선 관련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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