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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콘텐츠에서 여성 크리에이터의 자리는 어디인가

[주짓떼라의 유튜브 생존기] 영상 콘텐츠 속 여성 서사

등록 2025.11.24 09:08수정 2025.11.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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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있는 영상 콘텐츠의 주인공들은 젊다. 분야별로 차이가 있지만 크리에이터의 성별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자료사진.
인기 있는 영상 콘텐츠의 주인공들은 젊다. 분야별로 차이가 있지만 크리에이터의 성별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자료사진. 연합=OGQ

어릴 때 보던 책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나이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이 듦이 갈등과 긴장을 해소시키는 걸 넘어 서사의 마무리처럼 느껴졌다. 분명 애착을 느꼈던 주인공인데도 나이 든 그의 삶은 궁금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부분이 다 끝났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인기 있는 영상 콘텐츠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젊다. 나의 관심 분야인 운동을 예로 들면 가장 대표적인 운동 관련 해시태그인 '운동하는 여자'의 연관 게시물은 '운동하는 남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운동 관련 영상을 제작하면 여성들이 그것을 소비한다. 헬스장, 운동복, 운동 기구, 건강 보조 식품 등을 마케팅할 때 내세우는 이미지도 젊은 여성이고 그들이 타깃으로 삼는 고객 또한 2030여성이다. 이런 형상은 운동이 여전히 남성적인 행위로 인식되는 것과는 정반대다. 외모와 성적 매력에 관한 여성 집단의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 든 여성은 젊은 여성들처럼 자유롭게 섹슈얼리티를 내세우기 어렵다. 당사자가 직접 '나는 아직 젊고 아름답다'라고 선언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거센 비판과 인신공격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50대지만 젊은 여성처럼 몸매와 춤을 보여주며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가수가 있다. 알고리즘의 선택, 흔히 통용되는 방식대로 만든 콘텐츠인데도 나이 하나에 대중의 반응이 크게 달라진다. 그는 분명 나이에 비해 젊고 매력적이지만 비난도 만만찮다. 50대이면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고 20대를 흉내 내지 말라는 것이다.

영포티를 조롱하는 밈이 대표적인데 저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조롱의 양상은 낯설지 않다. 젠지 세대가 비웃는 건 영포티의 감성이다. 지금의 40대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K-컬처라 불리는 문화 자본의 기초를 쌓았다. 중년이 됐지만 '이만하면 젊지 않은가?' 착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영포티 감성과 관련된 대표적인 검색어가 '욕하다', '늙다', '역겹다'라고 하니 죄지은 것도 없이 뜨끔했다. 콘텐츠를 만들면서 가장 열심히 검열하는 부분도 '혹시나 젊어 보이고 싶은 철없는 중년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나이 든 여성 크리에이터는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자기 계발로 포장하는, 비교적 안전한 전략을 택한다. 과도한 비난은 피하면서 관리에 힘쓰는, 성실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핵심은 관리의 결과보다 과정을 세분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물론 관리의 결과도 보여줘야 과정에 대한 신뢰가 올라간다). 그래서 제목부터 '4○세 ○○씨의 자기 관리 루틴'이다. 여기에 나이에 맞는 운동법, 영양제, 건강한 식습관, 가벼운 피부 시술 등을 다루고 갱년기 고민 해결 등을 콘텐츠로 삼는다.


삶도 계속되고 이야기도 계속돼야

 물론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신과 비혼이 늘어남에 따라 1인 가구의 삶을 다룬 콘텐츠도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룬다. 자료사진.
물론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신과 비혼이 늘어남에 따라 1인 가구의 삶을 다룬 콘텐츠도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룬다. 자료사진. 연합=OGQ

섹슈얼리티를 배제한 콘텐츠에는 요리, 인테리어, 육아를 포함한 살림 등이 있다.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여성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온라인 세상은 현실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같지만 활발하게 소비되는 콘텐츠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성의 콘텐츠는 여전히 집,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다.


물론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콘텐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신과 비혼이 늘어남에 따라 1인 가구의 삶을 다룬 콘텐츠도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룬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건 결혼하지 않는 삶을 내세우는 비혼 콘텐츠의 맹점도 결국에는 결혼이라는 점이다.

비혼 콘텐츠를 만들어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고 책을 출간한 한 유튜버는 비혼 생활의 즐거움, 장점을 강조했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이 일은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명절에 혼자 해외여행 즐기는 불쌍한 비혼 여성'과 같은 제목의 영상을 게시하며 자신을 비난하거나 동정하는 이들에게 맞섰다. 결혼하지 않는 여성을 향한 적개심과 애초에 논란거리가 아님에도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져 멈추지 못하는 온라인 공간의 특이점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또 성장 서사의 형식을 갖춘 콘텐츠에서도 결혼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여성이 겪는 실패 중에서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바로 이혼이다. 몇 년 전부터 브런치 등의 블로그 전문 사이트에서 이혼 경험담을 써서 수상한 작가들이 등장했다. 곧이어 이혼한 여성의 삶을 다룬 영상 콘텐츠가 주목 받았다. 예를 들면 '50대에 이혼했고 가진 게 하나도 없지만 열심히 살아보겠다'라는 내용의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여성 콘텐츠는 젊어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고 나이 들어서는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결혼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 놓인다.

돌아보면 여성의 서사는 조금씩 진보하면서도 고리타분한 퇴행을 반복했던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은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지만 너무 통속적이고 모든 사건이 결혼으로 귀결된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인공지능(AI)이 활약하는 시대에도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여성 서사와 고부 갈등, 친자 확인이 지상 과제인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공존한다. 대중은 새로운 걸 원하면서도 그에 못지 않게 익숙한 것에만 고집스럽게 반응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결혼과 동떨어진 노년 여성이 더 자유롭고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성공한 노년 여성 크리에이터도 실제 노인이 아닌 젊은 세대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노인의 모습을 연출하는 경우도 많다. 젊은이를 응원하는 지혜로운 할머니, 젊은 세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할머니, 의외로 힙한 유행을 즐기는 할머니, 나이보다 건강한 할머니의 모습은 노인을 타자화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여성 콘텐츠가 제작되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여성이 나이 들어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 자체만으로 가치는 충분하다. 여기서 한 발짝 나아가 보편성의 범주에 머물면서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또는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뻔하지 않게 콘텐츠를 만드는 건 뻔하지 않게 사는 것만큼 난도가 높다. 그렇지만 삶도 계속되고 이야기도 계속돼야 한다. 그렇게 보면 중년은 컷 편집이 아니라 롱테이크의 시작점이다.
#유튜버 #콘텐츠 #여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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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주짓떼라의 유튜브 생존기', 한겨레21 '액션 읽는 여자', 여성신문 '운동사이' 연재 중입니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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