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Carol) 씨의 자화상과 글 '하우 아 유'라는 간단한 질문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자화상과 글로 기록한 이주노동자 캐롤(Carol) 씨의 모습.
정민식
그 시간 동안 그는 땅을 마련해 집을 짓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언젠가 필리핀으로 돌아갈 때, 나는 성공한 모습일 것"이라는 그의 마지막 문장에는 열심히 달려온 자신을 향한 믿음과 가족을 위한 희생이 담겨 있었다.
가족을 위해 대만에 왔지만, 이곳을 '두 번째 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지아넬린(Jeanelyn) 씨는 싱글맘이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대만에 오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고된 노동 속에서 버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가족을 위한 꿈 하나로 버텨냈다고 적었다. 계속되는 우울과 불안 속에서 하나뿐인 남동생을 잃었던 시기엔 "더는 일어설 힘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의 어려움을 헤아린 고용주의 배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대만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생계의 공간을 넘어 마음을 추스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대만에서 번 돈으로 자녀가 상위권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사실을 큰 자랑으로 적으며 이렇게 답변을 마쳤다.
"대만을 사랑해요. 나의 두 번째 고향이자, 안전한 집. 이 나라는 가족을 위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줬어요(I love Taiwan, my second home, my safe home. This country helped me realize my dreams for my family)."
반면 에밀리(Emely) 씨는 끝없이 이어지는 고용 변경 속에서 '6년째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삶'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만에서 이미 17명의 고용주를 거쳐야 했고, 그 사이에 결혼 생활도 무너져 싱글맘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했다.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현실 속에서 그는 하루하루 버티며 자신을 지탱해 왔다. '강해져야 한다'는 그의 짧은 말 뒤에 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저는 싱글맘이 되었어요. 그래도 삶은 계속되죠. 저는 강해져야만 해요(I became a single mom. but still, life goes on. I need to be strong)."

▲에밀리(Emely) 씨의 자화상과 글 '하우 아 유'라는 간단한 질문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자화상과 글로 기록한 이주노동자 에밀리(Emely) 씨의 모습.
정민식
그러나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원 빌딩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스스로의 공간을 일궈낸 이도 있었다. 카르멜리타(Carmelita) 씨는 대만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매일의 노동 속에서 조금씩 쌓여가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새벽부터 준비해 손님을 맞이하고, 남은 시간에는 온라인 판매까지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삶.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대만에서 번 돈으로 미래의 안전망을 만들고, 언젠가 자신의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주노동자로 사는 건 힘들어요. 하지만 언젠가 저축한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투자하고 있어요(It's hard to be an OFW. but I invest my hard-earned money so that someday I can go home with savings)."

▲카르멜리타(Carmelita) 씨의 자화상과 글 '하우 아 유'라는 간단한 질문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자화상과 글로 기록한 이주노동자 카르멜리타(Carmelita) 씨의 모습.
정민식
대만에서 결혼해 작은 농사를 짓고,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답변도 있었다. 또 다른 이는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괜찮은 척하는 삶"을, 또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이제는 잘 적응했고, 즐기며 살고 있다"는 답변을 남겼다.
종이 위에 적힌 '하우 아 유'의 답은 모두 달랐지만 가족을 위해 떠나온 시간 그리고 대만에 와서 겪은 고됨과 행복, 살아내기 위해 서로 다르게 선택해 온 방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담겨 있었다. 어떤 이는 새로 뿌리를 내려 삶을 다시 만들었고, 어떤 이는 여전히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자화상을 찍는 그들의 표정에는 종이에 적힌 글보다 많은 흔적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한편, 1990년대 시작된 대만의 이주노동운동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살인적 브로커 비용, 장시간 노동 등 구조적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거리 투쟁으로 확장되었다. 그 흐름을 조직적으로 묶어낸 것이 MENT(Migrant Empowerment Network in Taiwan)이다.
제조업, 간병, 어선, 가사 노동 등 서로 다른 조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모여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MENT는 대만 이주노동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네트워크가 2년마다 주최하는 이주노동자대회는 올해 12월에 열릴 예정이다. 이 대회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대만 사회가 보지 못했거나 보려 하지 않았던 노동 현실을 집단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공간이자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을 조직하는 실질적 운동의 장이다.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에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서로를 지탱한다.

▲2023년 대만 이주노동자대회 이주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정부를 향해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민식

▲2023년 대만 이주노동자대회 이주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정부를 향해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민식
자화상의 표정들이 보여주듯, 그들의 삶은 고될지언정 단단했다. 서로 다른 말들 속에서 시오라(Xiora) 씨의 문장이 유난히 긴 여운을 남겼다.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외로워요 집만 한 곳은 없죠(SOMETIMES HAPPY, SOMETIMES LONELY. THERE'S NO PLACE LIKE HOME)."

▲시오라(Xiora) 씨의 자화상과 글 '하우 아 유'라는 간단한 질문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자화상과 글로 기록한 이주노동자 시오라(Xiora) 씨의 모습.
정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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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일요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진관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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