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희 선생의 KBS해외동포상 평생을 미주지역에서 광복회 및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 봉사, 헌신한 업적을 인정받아 KBS해외동포상을 받을 때의 모습(2020.8)
이윤옥
문제는 고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수술비 및 치료비에 대한 걱정이었다. 거기에 도움을 요청할 연고도 없는 상황이라 기자가 임시 보호자가 되어 입원 등의 절차와 수술 및 회복 재활 등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치료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지인들을 통해 후원금 모금을 시작했다(오마이뉴스 이윤옥 기사, 2025. 11. 14.,
독립유공자 선양에 평생 바친 배국희 선생, 치료비 도움 필요). 그러나 2천만 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충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라,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이대영 병원장에게 큰 용기를 내어 기자는 편지를 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났다.
어제(20일), 병원 기획실 차장으로부터 "독립운동가 후손인 배국희 선생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기획실 차장은 "이대영 원장"의 뜻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을 배국희 선생에게 전화로 알리면서 두 사람은 서로 전화통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대영 원장의 선대(先代)께서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를 말해준 것은 원장이 아니라 기획실 차장이었다.
이대영 원장의 5대조인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은 일제가 저지른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뒤 안동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1905년 을사조약 늑결 시에는 을사오적 처형과 조약 파기를 임금에게 상소하며 국권 회복을 촉구했다. 이어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24일 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하며 일제에 준엄한 항거로 순국의 길을 간 분이다(향산 선생은 절대 순국이란 말과 선생이란 말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
배국희 선생과 퇴원 전 인사차 들른 이대영 원장실에서 기자는 향산 이만도 선생의 5세손인 이대영 원장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여 글을 쓰고 있는 기자로서 향산 이만도 선생의 일가(一家)의 우국충정을 익히 알아 온 입장에서 '배국희 선생의 치료비 전액 지원 결정'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義)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쳤던 향산 이만도 할아버지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5세손 원장의 선행은 그래서 더욱 큰 울림을 주었다.

▲청참오적소 이대영 원장의 5대조 향산 이만도 선생이 을사오적을 척결하라고 임금께 올린 상소문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이대영
이대영 원장은 "70~80대에도 척추 수술을 받는 환자가 많은데,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치료는 아무래도 회복이 힘들다. 고령의 환자들에게 적합한 최소 침습 수술, 작은 뼈도 제거하지 않는 골 절제 없는 감압술을 지난해 1590건 진행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한 연구 논문을 SCI급 저널에 게재하는 등 연구와 치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의학용어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영 원장께서 고통받는 환자들의 삶을 일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선두주자로 뛰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무엇보다 그 큰 수술의 혜택을 받은 분이 독립운동가 후손 배국희 선생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기자로서의 보람은 바로 이러한 두 분이 만남이 가능하게 된 '사연을 풀어낸' 점이라고 본다.
먼 이국땅 미주지역에서 반평생을 광복회 및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유족들을 위해 헌신해 온 독립운동가 후손 배국희 선생께서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귀국 길에 놓이게 되어 임시 보호자인 기자도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대영, 배국희, 이윤옥 이대영 원장, 배국희 선생, 취재 기자 이윤옥(왼쪽부터)
이윤옥
"내가 나라에 두터운 은혜를 받았는데도 을미년 변란에 죽지 못하고, 다시 을사년 5조약 체결에도 죽지 못하고 산에 들어가 구차하게 연명한 것에는 그래도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미 아무것도 기대할 만한 것이 없어졌는데, 죽지 않고 무엇을 바라겠느냐? 변란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지체하고 목숨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은 자진할 방도를 찾지 못한 때문이다. 지금 뜻이 정해졌으니, 명동에 가서 생을 다할 참이다. 다시는 여기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 이대영 원장의 5대조 향산 이만도 선생이 1910년 9월 17일(음 8.14) 곡기를 끊기 시작하면서 남긴 말
배국희 선생 기사를 마무리하며 특별히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은 이들이 있다. 척추수술 뒤 LA행 장시간(13시간) 비행을 여러 후원자의 도움으로 비즈니스편으로 편히 모실 수 있게 되어 도움 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말씀을 전하며 한 분 한 분 이름을 올리지 못함을 용서를 구한다.
특히, 한국광복군유족회(회장 장병화)와 회원들, 한국외대 민주동문회 (김종찬 회장, 정외과80)와 회원들, 발안만세운동 선구자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 이호헌ㆍ양인선 유족들, 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이태룡 소장)와 연구원들, 인터넷 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및 운영위 배재흠 교수, KBS사내동아리 사회봉사단 이정호 명예단장 외에 여러분들의 십시일반 도움으로 배국희 선생께서 무사히 귀국길에 오를 수 있게 해주신 점, 배국희 선생을 대신하여 고개 숙여 깊이 감사 말씀 올리며 아름다운 동포애 넘치는 이 이야기를 기사로 남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공유하기
독립운동가 후손 배국희 선생, 동포애로 수술 마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