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연정에 올라 바라본 모습. 나그네의 마음을 잘 풀어줄 것 같은 풍광이었다. 이곳에서 벌어졌을 많은 일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병철
아마도 고산이 이곳에서 그린 이상향은 달리 보면 현실 도피일 수도 있다. 망국의 지경을 당한 수많은 지식인이 그렇듯, 현실 저 아래로 깊게 침잠해 들어갔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보길도는 상처 입은 그의 시대를 견디기 위한 훌륭한 방어막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향이란 것은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 덕분에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도 싶다. 다행히 그에게는 이곳을 알아본 눈과, 이상향을 경영할 능력과 재력이 있었다. 덕분에 오늘의 우리들은 좀 더 윤택할 수 있고, 우리에게도 이런 고급 문화가 있었음에 경탄할 수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봉림대군을 비롯한 일부 왕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고 그곳에서의 결사항전을 꾀했다. 고산 윤선도 역시 이를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강화도는 후금군에게 무너졌고, 이 소식을 들은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왔다. 고산은 강화도에 들 수 없었다.
이후 고산의 삶은 보길도에서 이어졌고, 낙서재에서 명을 다했다. 처음엔 너른 섬 하나를 통째로 원림으로 만든 그의 재능과 미의식과 무엇보다 그의 재력이 궁금했었다. 하지만 천 길 절벽 위 동천석실에서 느꼈을 그의 감정은 내 호기심과는 궤가 달랐음을 깨달았다.
원림을 빠져나와 다시 노화도를 거쳐 이번엔 완도로 건너가는 배에 오토바이를 실었다. 선실에 있지 못하고 갑판 위 선미로 나갔다. 멀어지는 섬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와 그들이 살아갔을 그 시대가 머릿속에서 또렷해졌다. 여전히 선실에는 들지 못한다. 이제 섬은 더욱 멀어졌다. 다음 다가갈 장소가 떠오른다. 온통 핏빛이었을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내었던 또 다른 존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나는 지금 1598년, 정유재란 당시 마지막 통제영이 있었던, 고금도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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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국내여행을 다니는 중년의 직장인입니다. 글로써 세상과 교감하는 방법을 배우며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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