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량에서 만난 추억 자그마한 고을 득량, 갖가지 추억을 전해주는 마을이었다. 현재가 있고 과거가 있으며 삶이 있는 따스함이었다. 바다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곳, 무한한 추억을 살려주는 고장이었다.
박희종
시원함 속에 찾아 나선 곳은 <태백산맥>의 고장 벌교다. 해마다 찾아오는 길이지만 언제나 신선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벌교의 축제, 꼬막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신선하면서도 짭조름한 꼬막, 일 년을 기다려온 남도의 맛이다. 벌교시내가 들썩인다. 세상의 이야기꾼들이 다 모였다. 귀가 솔깃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시장에서 만난 것은 대봉감이다. 어느 노부부가 앉아 감을 팔고 있다. 한 상자를 구입하자 흐뭇해하는 할머니, 다정함과 따스함에 얼른 돈을 건넸다. 오래 전의 추억을 찾고 싶어 구입한 감이다. 시장을 돌아 찾아 나선 곳은 벌교의 백미, 꼬막 정식이다. 서해안에 어리굴젓이 있다면 벌교에는 꼬막이 있다.
고실고실한 하얀 쌀밥에 어리굴젓이 얹혀있다. 가끔은 깨소금이 얹여 있는 짭조름한 맛, 서해안의 가을이었다. 벌교에서 만난 꼬막의 가을, 언뜻 포기하기 힘들다. 꼬막이 곁들여진 갖가지 음식이 나왔다. 어느 것부터 먹어야 할까? 흐뭇함에 고개를 끄떡이며 돌아보는 밥상, 역시 남도의 밥상이었다.
꼬막이 숨어 있는 된장국에 꼬막무침이 나왔고, 삶은 꼬막에 꼬막전이 나왔다. 갖가지 야채와 곁들여진 꼬막부침과 어우러진 하얀 쌀밥은 넉넉했다. 자그마한 늙은 위를 탓하며 숟가락을 놓은 점심상은 내내 포기할 수 없는 남도의 맛이었다. 벌교에 왔으니 '태백산맥 문학관'을 지나 칠 수 없다.
따스한 양지에 자리 잡은 문학관은 포근했다. 지리산의 넉넉함과 따스함을 전해주는 삶의 모습이었다. 수년째 찾아오지만 또 새로운 발걸음이다.어떻게 이런 글을 남겼을까?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작가의 자취에 숙연해진다. 한 해 겨울을 읽고 또 읽었던 조정래의 문학, <태백산맥>이 있었고 <한강>이 있었으며 <아리랑>이 있었다. 따스함과 진지함을 주었던 문학의 위대함을 알게 한 작가였다.
늦가을 지는 해를 맞이하며 돌아선 벌교 여행, 내년엔 봄에도 찾아볼 작정이다. 벌교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여행길에 만난 절집은 송광사였다.

▲송광사의 가을 송광사의 가을은 대단했다. 아름다운 단풍과 어우러진 절집, 사람과 함께하는 엄숙함이었다. 맑은 물과 어우러진 절집 풍경이 깊은 가을을 알려준다.
박희종
송광사를 지나 늦가을 속으로
가을이라고 뚜렷한 단풍놀이도 하지 못했다. 아내와 찾은 송광사는 대단했다. 따스하게 물든 단풍이 있고 절집이 주는 엄숙함이 있었다. 언젠가 손녀와 찾은 절집, 손녀는 서슴없이 절을 했다. 무엇을 빌었느냐는 말에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했다. 아내와 함께 들어선 대웅보전, 근엄함과 친근함이 있다.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는 절이다.
무상무념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인사, 이렇게 살아감이 감사하다는 인사다. 오늘도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음에 감사함이다. 고희의 청춘이 300km를 운전하며 오고 간다. 아무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는 여행길이다. 언제 이런 세월이 되었으며 언제까지 가능할까? 세월은 이 자리로 성큼 데려다 놓았다.
늦가을이 초겨울로 가는 계절, 내 삶의 계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가을이라고 우겨볼까도 생각하지만 어림없음은 잘 알고 있다. 얼른 절집을 벗어나자 말없이 물든 단풍이 가득이다. 조용한 골짜기를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진 한 장의 낙엽,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얼른 절집을 벗어나자 앙상한 벚나무가 보인다. 겨울로 가는 길목인가 보다. 따스한 남쪽이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계절을 피해 갈 재간이 있다던가? 1박 2일의 짧은 남도여행은 즐거웠다. 볼거리와 먹거리를 실컷 맛보았으며 이 해를 마무리하는 가슴은 따스했다. 율포의 해수탕과 득량만의 아름다움 그리고 벌교 꼬막의 가을 맛은 일품이었다. 조정래의 위대함과 따스함에 흠뻑 젖어 찾은 송광사는 또 대단했다. 삶의 기억해 보고 되뇌어 보는 남도 여행길, 여기엔 삶의 그림자가 가득한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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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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