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의면 금원산 정상에서 바라본 금원산 능선과 주변 산군의 모습
주간함양
지난 16일 아침, 가을은 이미 깊어졌다고들 하지만, 체감으로 다가온 기온은 예상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햇빛 아래서도 한기가 묻어나오는 이른 오전,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안의면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금원산은 단풍 명소로 이름이 높은 산이지만, 올해 가을은 어쩐지 흔히 상상하던 그 전형적인 모습과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기온 변화가 잦고, 빨리 찾아온 추위 때문에 나무마다 물드는 속도가 달라, 붉고 노란 색이 한꺼번에 터지는 대신 여기저기 서로 다른 시기를 가진 채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움직이다 보니 계절의 변화가 사람의 예측보다 훨씬 불규칙해졌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번 산행은 어느덧 13번째 기록이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산을 생각하니 첫 산행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초보 산행러의 일기 속 마지막 가을 장면을 어떻게 남길지 오히려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금원산은 높이 1353m로 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위천면의 경계를 이루는데,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지는 월봉산 능선의 오른쪽 수망령 쪽 능선 최고봉이기도 하다. 산 이름은 오래전 금빛 원숭이를 원암이라는 바위에 가두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산의 이름과 그 유래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셈이다.
금원산은 기백산과 함께 연계산행을 하기도 하고, 더 체력이 받쳐주는 사람들은 거망산과 황석산까지 내달리는 장거리 종주 코스를 즐기기도 한다. 보통 금원산 산행은 용추사 일주문에서 시작해 사평마을을 지나 시흥골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등정이 시작된다. 시흥골 삼거리, 유안청계곡, 정자삼거리를 향해 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정상에서는 덕유산을 비롯해 거망산, 황석산, 가야산, 지리산, 노고단까지 주변 산군이 한눈에 펼쳐진다.
우리는 이전 기백산 산행 때 사평마을 방향으로 하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보다는 수망령을 들머리로 삼았다. 수망령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약 2.3km 구간은 길지 않지만 산행 맛을 느끼기엔 충분한 코스다. 일주문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7km 코스와 비교하면 시간도 훨씬 짧게 걸리고, 당일 일정이 길지 않을 때 선택하기 좋다. 짧지만 적당히 숨이 차고, 너무 어렵지 않은 난이도 덕분에 부담 없이 겨울을 앞둔 산의 표정을 느끼기에도 알맞다.
수망령으로 가는 길은 가을빛이 가장 선명해야 할 시기였음에도 어딘가 덜 완성된 듯한 풍경을 보여줬다. 붉게 물든 잎과 푸른 잎이 섞여 불규칙하게 남아 있었고, 깊은 가을의 절정을 예상하던 기대감은 다소 빗나갔지만 그런 변화마저도 자연의 리듬임을 인정하게 됐다. 태풍이 거의 없었던 해이기에 잎들이 일제히 떨어져나갈 기회도 부족했을 것이고, 기온 변화가 잦았던 탓에 각각 다른 속도로 색을 바꾸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산행 전부터 계절과 기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졌다.
수망령에서 시작된 고요한 오르막

▲ 가을 햇살을 받으며 오르는 금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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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망령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10분쯤이었다. 공기도 그렇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메말라 있어 지난달 와불산에서 경험했던 짙은 안개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날의 금원산은 한없이 마른 공기와 부서지는 낙엽 소리로 가득했다.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울리는 소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산을 찾는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 길은 '오르GO 함양' 코스에 포함된 정규 노선이 아니다 보니 계단 정비는 지연이 많이 되었으나 길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단시간에 금원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어 발길이 꾸준히 닿았던 덕에 오솔길은 자연스럽게 다져져 있었다. 전체적인 난이도는 감투산 정도의 난이도라고 느껴졌다. 다만 가을철 비가 오고 난 뒤라면 두텁게 쌓인 낙엽이 미끄러워 하산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다.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산 전체가 조용했다. 간간히 새가 날아가는 소리와 낙엽이 바람에 실려 떨어지는 소리가 섞여 들릴 뿐, 그 외에 다른 기척은 없었다. 단풍 명소라는 이름답게 불타는 듯한 단풍을 기대하고 왔지만, 올해는 절정의 순간을 지나버린 듯했다. 산 아래에서는 아직 가을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해발을 조금씩 올릴수록 배경은 겨울로 바뀌고 있었다. 산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른다는 걸 다시 느꼈다. 아래에서는 가을이라 부르지만 위에서는 이미 겨울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 금원산 표지석 (135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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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가까워질 즈음 어렵지 않게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오르는 길에서의 아쉬움을 단번에 씻어줄 만큼 넓고 화려했다. 붉게 물들지 못한 단풍이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탁 트여 펼쳐진 금원산 능선과 주변 산군의 모습은 날씨가 주는 묘한 쓸쓸함까지 함께 담고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오전 내내 차갑던 공기가 조금 누그러졌고, 정상을 잠시 더 머물며 남은 가을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주엔 본격적인 초겨겨울 추위가 시작될 기세였다. 남은 두 개의 산행을 떠올리니 차가운 바람 속에서 걷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상에서 내려설 짧은 시간을 마치고 다시 하산을 준비했다.
조금 더 긴 코스를 원하고, 산 전체를 충분히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오르GO 함양의 일주문 주차장에서 출발해 사평마을과 동봉을 거쳐 오르는 7km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난이도도 제법 있어 산 전체를 천천히 느끼기 좋다. 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가볍게 워밍업하듯 금원산 정상 풍경을 맛보고 싶다면 수망령 코스는 좋은 선택이다. 산의 묵직한 기운을 빠르게 느끼고 내려와도 만족감이 충분하다.
다음 산행은 11월 말, 거망산으로 예정되어 있다. 같은 안의면에서 출발하지만 기온도, 풍경도, 길의 분위기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그때 단풍이 남아 있을지, 아니면 완전히 겨울 산의 기운이 내려앉을지 알 수 없지만, 계절은 늘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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