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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의 소비 목록 따져보니... '가난 명세서'가 돼 버렸다

    [인터뷰] <가난의 명세서> 김나연 작가가 가난 속에서 지켜내려 했던 자아의 존엄성

    등록 2025.12.06 11:15수정 2025.12.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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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최근 봤던, 모 공익광고 속 열 살 소년의 모습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깡통을 수집하며 할머니를 돕는 그 아이는 영재학교에 갈 만한 재능이 있지만, 눈앞의 막막한 가난 때문에 그 꿈을 미루고 생계를 선택한다. 불평 대신 혼자 서점에서 수학 문제집을 눈으로 풀어보고 집에와 외워온 문제를 응용해 자신만의 문제집을 만들어 공부하는 아이. 가족을 돌보는 책임감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이미 어른스러운 선택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김나연 작가가 쓴 <가난의 명세서> 역시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통해 가난이 한 사람의 자아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보여준다. 가난 때문에 현재를 버텨내기에 급급하다. 작가는 '가난이 심리와 정체성에 남기는 흔적'을 책을 통해 모두와 이야기하고자 했고, 이는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이기도 했다.

    김 작가는 지난 11월 19, 20일 양일간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가난이 한 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을 어떻게 위축시키고 잠식하는지, 그럼에도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어떻게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고백했다.

    '작업용 노트북 6만 1900원', '엄마 병원비 7만 3319원'

    가난, 즉 경제적 곤궁은 물질의 영역을 넘어 그의 정서까지 침범했다.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낙찰 후 받은 돈은 몽땅 월세 보증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돈은 모을 수 없었다. 친척이나 지인 등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자니 이들도 넉넉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 그럴수록 그는 허리를 바짝 조였고, 꼭 성공하리라는 각오로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다. 그렇게 주경야독으로 겨우 1년치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꼬박 3년이 걸렸다.

    그 무렵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3년여 모은 돈을 간병비와 수술비로 썼다. 간병비라도 일부 아낄 요량으로 직접 간병에 나섰지만, 반대로 생활비를 벌 수 없었다. 그는 "진짜 가난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죄가 아님에도 소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주변에서 '이런 상황 속에서 무슨 대학원을?'이라며 눈치를 주는 듯했다.

    할 수 없이 제1금융권에서 이율 5%의 신용대출로 400만 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가계부채를 늘리는 것이어서 죄스럽고 눈치 보였다"며 "하루하루가 가난과 부채와의 싸움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작업용 노트북 6만 1900원', '엄마 병원비 7만 3319원'... 이 책의 목차 중 일부다. 지난 10여 년간의 생생한 지출 기록을 나열하고, 모든 지출을 문서화해 소비 목록 하나하나를 다시 톺아보고자 의도한 것. 그러나 '소비 목록'은 작가의 바람과는 달리 '가난의 명세서'가 돼 버렸다.

     김나연 작가는 가난의 감각을 통해 가난의 구조적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 김나연 작가는 가난의 감각을 통해 가난의 구조적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김나연

    좀 더 써야 했던 곳


    주중에는 '테크니컬 라이터'로, 그 외 시간에는 '번역가와 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가난의 명세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문득 '돈이 없다는 건 왜 이렇게 괴로운 일일까, 이 궁핍이 가난인가, 내가 가난하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 속에서 펜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계산대 앞에 설 때마다 해당 금액을 수십 번씩 암산으로 계산하고 필요한 만큼 지출하는데도 남는 게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가난한 상태에서의 지출은 죄책감마저 들게 했다"면서 "경제력이 생긴 후에는 (지출이) 당당할 줄 알았는데, 늘 마음 속에 습관처럼 얹혀 있는 여러 소비 부담은 가시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 죄책감을 덜고, 필요한 지출만 하는 방법을 찾았을까.

    "솔직히 아직도 '길트 프리(Guilt-Free, 상품 구매 시 환경파괴나 비윤리적 생산 과정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소비'를 못 해요. 또, 가격을 떠나 물건 하나를 사도 며칠 더 고민하거나 실제 매장에 한 번 더 가서 확인하고, 반품 기한을 확인하는 일도 잦아요. 필요와 충동에 따른 소비 판단이 쉽지 않고요. 소비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런 것 같아요."

    모바일 쇼핑 구독 서비스도 늘면서, 무기한 반품 등 소비는 더 편리하고 빨라졌지만 그만큼 지출 항목이 늘기도 한다. 때문에 그는 사고 싶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며칠 묵혀두고, 사나흘 뒤에도 눈에 아른거릴 때만 구매하는 '구매 지연 훈련'을 한다. 대부분의 욕망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그는 이를 통해 '느린 소비'를 지향하려 애쓴다.

    또 "단순히 절약만 하기보다 '사용 빈도'를 먼저 확인하고, 이것으로 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판단한다"고 했다. 가까이 두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만족감과 사용감을 고려해 신중하게 구매한다. "오래 고민해 하나를 사는 것이 결국 절약이자 충동 구매를 자제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 시절의 경험이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책에 있는 지출 목록만으로는 정말 잘 썼다고 할 만한 항목은 없고, 낭비라고 단정 지을 것도 없어요. 오히려 '좀 더 써야 했나' 하는 것들은 있어요. 친구에게 더 좋은 것을 선물하거나, 더 좋은 성능의 노트북을 사고, 영어 공부에 더 투자했어야 했다는 거죠."

    정보 접근성과 가난

    김나연 작가는 인터뷰에서 수입과 계층에 따라 사회 안전망의 정보 접근성이 크게 달라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가난하면 생계 유지에 모든 에너지를 쏟느라 지원 정보를 찾아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나에게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심리적 위축까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보 접근성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복지 프로그램이든 지원 사업이든, 사람이 정보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보도 자원도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몰라서 놓치고 있던 지원 사업'이나 '숨은 복지 혜택'이라는 표현들이 사라질 정도로요. 나아가 '회색지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경계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삶도 충분히 위태롭다고 생각해요."

     그가 오래 사용하던 중고 노트북. 그는 이 노트북으로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 그가 오래 사용하던 중고 노트북. 그는 이 노트북으로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나연

    일각에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덫'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비슷한 어려움이 반복된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덫)의 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가난 관련 사건을 모두 개인 탓으로 해석하는 시선은 바뀌어야 한다. 서로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빈곤과 공동체 의식에 대해 발전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상상했던 미래의 크기에는 '더 큰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가난과 관련해, 개인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본인이 자초한 결과'로 몰아 세우는 일은 반드시 바뀌어야 해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는 모든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이 아니니까요. 예전에 책에서 읽은 건데, '차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떤 조건이 자신을 차별로부터 보호해왔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요. 서로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 인식에서야 비로소 빈곤과 공동체 의식에 대해 발전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어요."

    '주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묻자, 김 작가는 "이미 너무 많은 시도와 힘든 경험을 겪고 계실 거라 뭘 더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스스로를 민폐라 치부하며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가난과 마주할 용기

    김나연 작가는 스스로에 대해 "나는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떼돈을 벌겠다' 혹은 '몇 살까지 얼마를 모으겠다'라는 거창한 재정 목표에 애당초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취업 후 좋은 동료들과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독립까지 했지만,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경험을 1년쯤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어려웠던 시절의 흔적을 어떻게든 지워내고 싶더라"고 회상했다.

     김나연 작가가 장고 끝에 고른 3인용 소파
    ▲ 김나연 작가가 장고 끝에 고른 3인용 소파 김나연

    그는 혼자 사는 집에 고르고 골라 3인용 소파를 들였다. 외식할 때도 메인 메뉴에 사이드와 음료까지 마음껏 시켜보며, 마음에 드는 옷은 색깔별로 사보는 등 '경제력이 없어서 못 했던 일'을 마구잡이로 해봤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런 소비 패턴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내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말도 들리고요. 소비만 윤리적이면 되는 건가, 살기 싫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고민하는 걸까, 언제까지 이런 번뇌를 이어가야 하나... 하고 답답해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소중한 것 하나를 깨닫게 됐어요. 돈이 쌓이면 행복도 비례해 늘 것이라는 믿음은 결국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김나연 작가는 "돈은 불행을 막아줄 수는 있지만,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나에게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제야 자신이 지우고 싶었던 시간과 그 시절 느꼈던 가난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한 발 나아가기 위한 고해성사인 셈. 자아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달았다.

    결국, 김 작가가 찾고 싶었던 것은 바로 진정한 '나' 자신의 일관된 모습이었다. 다만, 얄팍한 지갑 때문에 앞뒤가 다르지 않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나' 말이다. 그는 모두가 '자아'에 가격을 매기지 않아도 되는, 교양 있고 친절하며 마음에 여유 있는 우리 사회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가난의 명세서> 책 표지
    ▲ <가난의 명세서> 책 표지 글항아리


    가난의 명세서 - 자아에 가격 매기기

    김나연 (지은이),
    글항아리, 2025


    #가난의명세서 #김나연작가 #글항아리 #자아에가격매기기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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