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피운 38년 우리말꽃

[대담] 제47회 외솔상 수상 '전국국어교사모임'... 박상규 이사장을 만나 의미를 짚다

등록 2025.11.25 16:53수정 2025.11.2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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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4일, 47회 외솔상을 받은 '전국국어교사모임'은 우리나라 참 국어교육을 이끌어 온 대표 단체다. 필자는 국어교육학자로서, 36회 외솔상 수상자로서 지난 22일 세종마을에 있는 모암 사무실에서 전국국어교사모임의 박상규 이사장(목동고 국어교사)을 만나 그 의미를 짚어봤다. 아래는 박 이사장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전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낸 계간지 “함께여는 국어교육”을 보며 기뻐하는 박상규 이사장
▲전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낸 계간지 “함께여는 국어교육”을 보며 기뻐하는 박상규 이사장 김슬옹

- 제47회 외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실천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는데,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이 상은 전국국어교사모임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입니다. 1988년 '국어교육을 위한 교사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38년을 걸어오는 동안, 교실 현장에서 묵묵히 우리말 우리글 교육에 헌신해 온 4000여 명 선생님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 외솔 선생께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라의 말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하셨는데, 전국국어교사모임이야말로 그 정신을 교육 현장에서 가장 충실하게 실천해 온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입시 위주 교육의 한복판에서 출발하셨는데, 그때 어떤 문제 의식이 있었나요?

"'밑줄 쫙'이라는 말 기억하시죠? 당시 국어 수업은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전형이었습니다. 교과서 줄 긋고 외우는 게 국어 공부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국어교육일까, 우리 아이들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힘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서서, 국어 교실을, 배달말을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자리로 만들어야겠다는 절실함이 모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그 절실함이 2001년 대안교과서 <우리말 우리글>로 열매를 맺었죠. 외솔 선생께서 <우리말본>에서 우리말 문법을 체계화하고 쉽게 풀이하려 애쓰셨던 것처럼, 전국국어교사모임도 학생들의 삶과 연결된 교과서를 만드셨습니다. 당시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우리말 우리글>은 단순히 교과서를 하나 더 만드는 게 아니라, 국어 교육의 철학을 바꾸는 시도였습니다. 지식 전달이 아니라 언어 능력을 키우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국의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 이 책이 나온 후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전문성을 갖춘 모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후 우리말 교육연구소, 우리말교육현장학회까지 이어지는 학문적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특히 말본(문법) 교육을 암기가 아닌 탐구와 실천의 과정으로 바꾼 게 인상적입니다. 대중가요, 영화, 드라마 대본을 분석하며 문법과 매체를 통합한 수업은 획기적이었어요. 외솔 선생께서 추구하신 '살아있는 말'의 교육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문법이 학생들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거든요. 그런데 실제 언어 생활과 연결하니까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개념 중심이 아니라 실천적 사용 중심으로 가르치니, 문법이 재미있어지는 거예요. 이게 바로 외솔 선생께서 말씀하신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국어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 <물음표로 찾아가는 한국단편소설>시리즈는 전국 100여 명 선생님이 참여해 만드셨는데, 이게 문학교육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죠.

"교과서 바탕글에만 머물지 않고, 학생들의 정서와 삶을 담은 작품을 가려 뽑아 수업에 활용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시 읽기>, <국어 시간에 소설 읽기>, <문학 시간에 시 읽기> 같은 책을 펴내면서 수업 문화 자체가 바뀌었어요. 단순히 작품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는 통로로 문학을 만난 거죠."

-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들어간 것도 전국국어교사모임의 큰 성과입니다. '물꼬방'이라는 연구 모임에서 시작된 거죠?

"네, 분절된 읽기 활동이 아니라 책 한 권을 온전히 읽는 경험을 주자는 취지였습니다. 광주 지역 소모임 '나라말 향기'에서는 기존 권장 도서 목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학생들 삶과 연결된 도서 목록을 새로 만들기도 했고요. 이런 현장의 목소리가 모여 교육 과정까지 바꾼 겁니다. 정책이 현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 현장이 정책을 만든 사례죠."

- 입말 교육 복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25년간 이어온 '전국 중고등학생 이야기대회'는 글말 중심으로 기울어진 국어교육의 균형을 바로잡았습니다. 외솔상 연구 부문 수상자이신 고 김수업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거죠?

"맞습니다. 김수업 선생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하시면서, 입말이 사라지는 국어교육 현실을 타개하자고 제안하셨어요. 학생들이 옛날이야기를 발굴하고, 사투리를 살려 이야기하면서 지역 언어문화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역성을 특색으로 한 전설, 사투리로 지역성을 살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죠. 이게 바로 '겨레의 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 외솔 선생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거죠. 그런데 아쉽게도 2024년에 대회가 마무리되었다고요?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을 믿는 선생님들이 다시 모여서 '이야기 교육 살리기 위원회'라는 새로운 연구 모임을 꾸렸습니다. 형식은 바뀔 수 있어도 입말 교육의 불씨는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 <함께 여는 국어교육>은 1996년 정기간행물로 등록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이 회지가 국어교육계에 미친 영향이 큽니다.

"회지는 모임의 정체성이자 고민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창간사(1996년 봄호) '현장 교육의 발전을 위해 교사와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라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업 실천 사례 뿐 아니라 국어 문화 개선, 지역 방언 교육, 언어 감수성 향상, 혐오 표현 극복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어요. 외래어와 한자어 남용을 경계하고 쉬운 우리말 사용을 권장한 것도 외솔 선생님의 국어순화 정신을 이어받은 거죠."

- 최근 회지를 보니 '지역 말과 생활 글쓰기의 특별한 만남', '사투리로 정체성을 빚다' 같은 글이 실렸더군요.

"서울 중심, 표준어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지역 언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교육에 활용하는 거죠. '지역에 기초한 언어교육'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 우리말교육연구소와 우리말교육현장학회를 통해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신 것도 중요합니다. 외솔 선생께서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학문과 현장을 잇고자 하셨던 것과 같은 맥락이죠.

"2004년 김수업 선생님과 뜻있는 선생님들이 우리말교육연구소를 만들고, 우리말교육대학원과 우리말교육현장학회를 열었습니다. '이론 없는 실천은 공허하다'라는 공감대가 있었거든요. 우리말교육현장학회는 지금 등재 학회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현장과 학문의 가교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 38년을 돌아보시면서,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철학이 있다면요?

"'더 나은 국어교육'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활동을 넘어 배움으로', '앎을 넘어 삶으로', '경쟁을 넘어 협력으로', '평가를 넘어 성장으로'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말의 주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민주적 언어교육이죠. 외솔 선생께서 "한글이 목숨"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도 그 마음으로 교실을 지켜왔습니다."

-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국어교육도 큰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요?

"오히려 기회로 삼았습니다. 대면 모임이 어려워지자, 비대면과 대면을 조화롭게 구성한 연수를 운영했는데, 더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하게 되었어요. 지역 제약이 사라지니까 전국의 선생님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된 거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되, 국어 교육의 본질은 지킨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매체가 바뀌어도 우리말의 가치, 사람과 사람이 말과 글로 소통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 전국국어교사모임이 4000여 명 회원을 가진 큰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외솔상 수상을 계기로 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첫째, 교실 수업을 더욱 내실 있게 만들겠습니다. 주제별 모임들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데, '소소모(소설 읽기 모임)', '매체연구회, '교육과정위원회' 같은 모임들의 성과를 현장에 확산시키겠습니다. 둘째, 한글학회를 비롯한 국어 관련 단체들과 협력을 강화하겠습니다. 외솔 선생께서 한글학회를 통해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 쓰셨듯이, 우리도 연대와 협력으로 더 큰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청소년 언어문화를 살피고 가꾸는 일에 더 힘쓰겠습니다. 혐오 표현, 언어 폭력 같은 문제들에 국어 교사로서 적극 대응하겠습니다."

- 한글학회와의 협력 말씀을 해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이 가능할까요?

"우선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솔 선생께서 평생 추구하신 국어순화, 우리말 다듬기를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거죠. 또 지역 언어 보존과 활용도 협력할 수 있습니다. 한글학회가 가진 학문적 자산과 전국국어교사모임의 현장 경험이 만나면 큰 시너지가 날 것 같습니다. 한글날 기념행사, 우리말 사랑 캠페인도 함께 하면 좋겠고요."

- 앞으로 외솔상 수상 단체로서 더 큰 역할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솔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외솔 선생께서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른다'라고 하셨는데, 우리 아이들이 우리말로 생각하고, 우리말로 꿈꾸고, 우리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8년을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묵묵히 교실을 지키며 우리말 우리글 교육에 헌신하겠습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펴낸 주요 책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펴낸 주요 책들 김슬옹
#외솔상 #최현배 #전국국어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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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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