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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시작한 '서울 걷기' 대장정, 드디어 마칩니다

짧게는 5시간, 길게는 8시간씩... 걷고 또 걸으며 만난 서울의 표정들

등록 2025.11.25 10:13수정 2025.11.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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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 전경 뿌연 하늘 아래 성 안과 성 밖의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와대와 도심의 건물들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 전경 뿌연 하늘 아래 성 안과 성 밖의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와대와 도심의 건물들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김미희

폭염이 시작되던 7월 초 '서울을 걸어보자'는 기획으로 서울둘레길 156.5km, 21개 코스를 모두 걸었다. 서울 외곽을 따라 이어지는 길마다 지역의 분위기와 풍경이 조금씩 달랐다.

서울 외곽을 트레킹 하는 동안에도 서울의 중심은 별도로 보고 싶었다. 추석 연휴에는 5대 궁궐과 종묘,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운현궁까지 돌아보았다. 그럼에도 서울 25개 자치구를 모두 밟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양도성 순성길 4개 코스를 추가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외곽으로, 중심으로, 그리고 조선시대 성곽의 '경계선'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트레킹이었다. 이것은 함께 걷던 일행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흐름이었다.

성곽길 따라 한 바퀴

지난 23일은 그 마지막 걸음이었다. 출발 시간은 오전 7시, 만남 장소는 경복궁역. 어둠이 걷혀가는 서울의 중심부는 한적했다. 창의문에서 시작해 흥인지문에서 끝나는 코스였다. 자하문 고개에는 1.21 사태로 순직한 경찰들의 기념비가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흉상과 동상의 크기 차이가 매번 눈에 들어왔다.

1.21 사태 때 순직 경찰관들의 추모 공간 창의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1.21 사태로 순직한 경찰관들의 흉상과 동상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죽음에도 계급이 존재했던 시대의 흔적을 보여준다.
▲1.21 사태 때 순직 경찰관들의 추모 공간 창의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1.21 사태로 순직한 경찰관들의 흉상과 동상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죽음에도 계급이 존재했던 시대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미희

창의문에서 인왕산 능선을 타는 구간은 한양도성 순성 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시작 방향을 바꾸니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왕산 성곽 길을 따라 오르며 내려다보는 서울은
성 안과 성 밖의 풍경이 대비되었다.

뿌연 하늘 아래 성곽 길을 중심으로 성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한 빌딩숲이 있는가하면 지붕만 보이는 나지막한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청와대와 궁궐들이 자리한 금싸라기 땅은 구름이 갈라져 태양이 비칠 때마다 잠깐씩 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가 곧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성곽길을 달리는 청춘 러너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 달리는 러너의 뒷모습. 잿빛 하늘 아래에서도 청춘의 에너지가 또렷하게 느껴진다.
▲성곽길을 달리는 청춘 러너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 달리는 러너의 뒷모습. 잿빛 하늘 아래에서도 청춘의 에너지가 또렷하게 느껴진다. 김미희

성곽 길을 따라 걷는 동안 트레일 러닝을 하는 청춘 러너들과 드문드문 마주쳤다. 그들의 빠른 호흡과 경쾌한 걸음은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서 또 다른 열기처럼 느껴졌다. 아침 8시가 넘어가자 광화문광장에서 올라오는 커다란 함성이 인왕산 능선까지 울려 퍼졌다. 산 정상까지 닿은 그 함성은
도시의 열기와 산의 고요함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인왕산 정상에서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먼저 내려오고, 그 뒤로 젊은 남녀가 뒤따라 내려왔다. 대화를 들어보니 지방 소도시에서 올라온 부모와 함께 온 서울에서 맞벌이하는 부부로 보였다.


보통은 젊은 세대가 앞장서고 노년 세대가 뒤따르는 장면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두 세대가 함께 산에 오르고 함께 내려오는 모습은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인왕산의 신선한 아침 공기 속에서 가장 빛나던 풍경이었다.

올해 걸은 수많은 길을 떠올려보면 멀리 떠나야만 쉼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 안에도 보고 즐길 것, 숨을 고를 공간이 곳곳에 있었다. 그동안 등잔 밑이 어두워 알지 못했던 장소들이었다. 걷기를 통해 이런 공간들을 조금씩 발견해 나갈 수 있었다.

'동대문'이라고 부르는 흥인지문과 동대문역이 있지만 그 일대는 행정구역상 종로구였다. 올여름부터 걸어온 길을 모두 합해도 동대문구와 성동구에는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성곽 길을 걷는 동안 지역구의 수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발걸음 속에서 만난 장면들이 서울을 이해하고 자신에게도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서울 걷기를 마치며

흥인지문에서 마무리한 한양도성 순성길 어제 여정의 종착점인 흥인지문. 5개월 여 이어온 ‘서울 걷기’의 마지막 발걸음이 이곳에서 멈췄다.
▲흥인지문에서 마무리한 한양도성 순성길 어제 여정의 종착점인 흥인지문. 5개월 여 이어온 ‘서울 걷기’의 마지막 발걸음이 이곳에서 멈췄다. 김미희

지난 7월 초부터 짧게는 5시간 반에서 길게는 8시간 반씩 걸으며 서울의 표정을 보았다. 각 지역이 품고 있는 분위기와 흐름은 걸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이 대장정이 가능했던 것은 함께 걸어준 일행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5개월여 동안 이어온 '서울을 걸어보자'는 계획은 처음에는 언감생심 같은 목표였지만 결국 현실이 되었다. 내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또 다른 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그 길이 어디가 되었든
올해 걸어온 흔적들이 다음 걸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대장정은 길을 걷는 프로젝트이기는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서울걷기 #한양도성순성길 #서울둘레길 #관악형주민건강실천단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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