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어느 병원 진료실 모습
장영우
힘겹게 꺼내어 보는 질문들
의학이 발전하고 수명이 연장될수록 역설적으로 '살려야 한다'는 절대명제가 '살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연명치료 거부신청)를 작성한 사람들이 2025년 7월 말 기준으로 약 3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8년 제도 시행 이후 연명치료 거부신청자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서만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종 과정에 들어가면 환자 본인의 의식이 흐려져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는 경황이 없거니와 '치료거부'는 불효라는 부담을 느낍니다. 의료진이나 보호자들이 먼저 연명의료 중단을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수액이나 산소, 승압제를 투여하며 그 임종시간을 좀 더 늦추게 됩니다. 결국 환자나 보호자에게 고통스런 시간만 연장될 뿐입니다.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향후 사전연명치료 거부의 범위에 대해 좀 더 활발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에서는 연명치료거부는 임종기 이전인 말기까지도 확장하여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고 합니다. 물론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진 않을 수 있습니다.
서양권 일부 국가에서는 말기 중증 질환에 대해 의사의 도움으로 자살할 수 있게 하는 조력자살까지 허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조력자살 도입은 거부감이 클 것입니다. 어쩌면 죽음이란 삶의 완성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공의 시절 고령의 부모님을 둔 아들이 있었는데 중증 질환에 걸려 추가 검사와 치료를 권유하였습니다. 그런데 보호자 아들이 되물었습니다. '과연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정말 효도입니까?'라고 되묻더군요. 그때는 바로 답을 못했습니다. 지금은 평소 본인의 가치관, 가족들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치료에 최선을 다해 보자는 말보다는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고통을 줄이며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보호자들은 불효했다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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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료가 도움이 될까요?" 고령 환자 앞에서 의사도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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