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관련 책을 자주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어렸을 때 일제강점기를 배우던 시간이 떠오르곤 했다.
김보민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충돌이 극에 달했다. 어느 날부터 산책길마다 'Kidnapped(납치됨)'이라는 단어와 함께 얼굴 사진이 크게 인쇄된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어떤 집은 마당에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라는 팻말을, 또 다른 집은 '전쟁보다 평화를'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만 오천 명이 사는 조용한 타운이지만, 그 시기에는 차가운 긴장감이 부표처럼 떠다녔다.
그즈음, 흑인 학생들이 겪는 차별을 다룬 소설 < All You Have to Do >의 작가 오텀 앨런(Autumn Allen)이 타운 내 학교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무슬림이었다. 일부 유대인 학부모가 그녀의 방문에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강연은 취소되었다. 팔레스타인 가정과 무슬림 가정도 많은 지역이기에, 학교와 타운 측은 전쟁 관련 갈등이 지역사회로 번지지 않도록 여러 차례 안내문을 보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나며, 미국에서 만나는 유대인이 내가 책과 뉴스로만 이해하던 '납작한 유대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나라와 문화가 끝도 없이 많다
딸아이가 바트 미츠바에 다녀온 주말, 아들아이는 방글라데시 출신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 나에게 방글라데시는 유대교만큼이나 일상의 지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방글라데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국 뉴스에서 듣던 '최빈국', '원조 대상국' 이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외국인이 나에게 "남한, 북한 중 어디에서 왔냐"고 물을 때마다 느끼던 불편함이 스쳤다. 나도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규정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대화를 이어갔다.
다행히 우리의 대화 주제는 줄곧 음식이었다. 방글라데시 음식은 인도 남부 음식과 비슷한 향신료를 쓰는데, 특유의 매콤하고 화려한 향이 있다며 아이 친구 아빠는 신나게 설명해 주었다. 향신료 이야기에 빠져들어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 구글맵을 열어 방글라데시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한국인은 다 같은 한국인이 아니다

▲ 얼마 전, 김치를 잔뜩 담가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어쩌다 보니 추수감사절 선물이 된 셈이다. 미국인들에게 김치를 나눠주게 될 줄이야!
김보민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국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K-팝, K-드라마, 한국 화장품, 한국 음식… 모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늘 나의 불편함이 시작된다. 내가 잘난 사람도 아니고, 내가 무언가 성취한 것도 아닌데, 그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은 호의를 보인다. K-콘텐츠 속 이미지와 '한국인 일반'을 동일시하는 시선 속에서 나 역시 얇게 포개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K-팝도 잘 모르고, <오징어게임>도 못 봤고, 화장품에도 관심이 없다. 자극적이지 않은 절밥 같은 음식을 좋아하고, 춤이라고는 덩실거리거나 어깨 으쓱거리는 정도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책 읽는 것 말고는 특별한 취미도 없고, 시골 논밭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다. 이런 한국인은 K-드라마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문화권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애쓰게 된다. 내가 편하자고 누군가를 납작하게 이해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중국인이라고 모두 공산당이 아니고, 일본인이라고 모두 소심하지 않다. 미국인 중에는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영어밖에 못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더 입체적으로 된다

▲ 지난 2023년 7월 1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k-관광 로드쇼'가 미국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누가 "미국에서 살아서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내 안에 생겼어."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을 내가 아는 방식대로 단순화하려는 습관이 조금씩 사라지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미국에서 살아서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라면 아마 삼박사일이 모자라겠지만, 이 한 가지는 분명히 좋다.
세상 속에서 납작해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쩨쩨하고 궁핍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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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세상을 찾다가, 지구 어디에서든 잘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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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인이라 받는 호의, 은근히 불편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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