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원 UNDP 프로그램 분석가 모잠비크 정부관계자 재난 및 분쟁 관리 역량강화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UNDP 황주원
국제기구 현장에서 가장 큰 슬픔은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순간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재난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된다. 황주원 UNDP 모잠비크 프로그램 분석가는 매일 그런 현장을 마주한다. 그는 사이클론과 홍수, 내전이 이어지는 나라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기후 스마트 농업 사업을 관리하며 지역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25일 국제개발협력의 날을 맞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20일 전화와 SNS로 진행했다. 황주원 씨가 국제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우간다에서 경험한 봉사 활동이었다. 그는 빠르게 성장한 한국 사회에서 사라진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우간다 농촌에서 다시 봤다. 그러나 치료만 했다면 살 수 있었던 이들이 보건시설 부족으로 목숨을 잃고, 지진과 홍수 같은 재난 앞에서 최소한의 대비조차 없어 삶이 무너지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경험은 그가 개발도상국에서 재난을 줄이고, 예방 가능한 죽음을 막는 일을 평생의 과제로 삼게 만든 순간이었다.
졸업 후 그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아동·청소년 국제구호단체에서 경험을 쌓았고, UNDP로 옮겨 본격적으로 현장 전문성을 확립했다.
- 국제기구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2015년 네팔 지진 긴급구호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네팔의 건물은 대부분 내진 설계가 없어 작은 흔들림에도 붕괴했습니다. 대비가 조금만 돼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겁니다."
2015년 네팔 지진은 카트만두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대형 지진이었다. 사망자 8천9백 명, 주택 60만 채 붕괴 등 국가 전체가 마비될 정도였고, 의료·구조 인프라 부족으로 골든타임 내 대응조차 어려웠다. 국제사회는 이 지진을 '예방 가능했지만 대비가 없었던 재난'으로 평가한다.
황주원 씨는 이후 재난위험경감 분야에서 전문성을 다졌다. 학교와 마을에서 재난을 줄이는 교육과 제도·법 개정 과정을 현장에서 익혔다. 대학원에서는 재난위험경감과 기후변화, 개발정책을 결합한 연구로 학문적 기반을 쌓았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재난 대부분이 자연현상보다 제도와 인프라 부재에서 비롯된 인재라고 강조한다.
방글라데시는 단적인 사례다. 급속한 도시화로 고층 아파트가 늘었지만 고가 사다리차가 없거나 장비가 맞지 않아 화재가 나면 주민 구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반복됐다.
그가 있는 모잠비크는 사이클론과 홍수 피해가 잦고, 북부 지역 내전으로 이재민이 약 100만 명에 이른다. 그는 이 나라에서 재난 정보를 문자와 방송, 사이렌으로 신속히 알리는 경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마을 주민이 스스로 위험을 감지해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도 맡고 있다.
일부 지역은 무장세력 활동이 이어져 출장 전마다 보안부서의 위험 평가와 동선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는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국제기구의 안전 시스템과 팀의 협력이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된다'고 말했다.
- 현장에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제가 하는 일은 행정안전부와 국회, 연구기관이 맡아야 할 역할을 한데 묶어 수행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재난 문자 시스템 구축이나 건축 기준 개정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예산이 얽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맡은 프로젝트가 국가 정책을 바꾸고, 실제로 사망자와 피해를 줄이는 순간을 확인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키르기스스탄 눈사태 위험 경감 사업현장 조사 현장 방문 모습 황주원? 프로그램 분석가(왼쪽에서 두번째)
UNDP 황주원
그가 예로 든 프로젝트는 키르기스스탄의 빙하 위험 감시 사업이다. 기후변화로 녹아내린 빙하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재난이었다. 그는 인공위성을 활용해 빙하호의 변화를 관측하고, 위험 징후가 포착되면 조기 경보를 내보내는 체계를 구축했다. 위험 지역을 표시해 지방정부와 마을에 전달하고 대피 계획과 대응 훈련을 돕는 방식이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대형 재난을 사전에 막은 사례도 있었고, 정부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그는 데이터와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기구 업무가 겉보기와 달리 화려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양한 국적의 동료와 협업하고, 정부와 민간, 시민사회를 동시에 설득해야 한다. 밤샘 보고서 작성과 복잡한 행정 절차도 일상이다. 국제기구에서 오래 버티는 힘은 이미지가 아니라 전문성과 신념이라고 그는 말했다.
- 국제기구를 꿈꾸는 학생과 청년에게 선배로서 조언한다면요?
"국제기구 이름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입니다. 국제기구가 다루는 영역은 교육, 보건, 재난관리, 기후변화, 식량, 아동보호 등 매우 넓습니다. 재난위험경감처럼 세부 분야를 정해 전문성을 쌓으면 기회를 찾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는 한국의 공공기관이나 NGO에서 경험을 쌓은 뒤 국제기구로 옮기는 경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언어 능력도 필수인데, 시험 점수보다 회의와 보고서, 협상에서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는 실전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재난 분야 역시 위성 데이터와 머신러닝, 통계 분석 등 기술 활용이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도구에 대한 감각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이카와 외교부, 국제기구 인턴십 등 현장 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실제 국제개발협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책으로만 배우던 개념이 현장에서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확인하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더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주원 씨는 국제협력의 가치를 인간의 존엄성과 죽지 않을 권리에서 찾는다. 예방 가능한 재난과 가난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책과 제도, 기술을 동원하는 구조가 국제협력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국제기구의 일은 다른 나라를 돕는 동시에 한국이 잊어버린 공동체성과 연대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개발도상국에서 배운 공동체와 연대의 감각을 한국 사회와 다시 연결하는 것이 자신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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