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러닝 코스 일주일에 두 세번 저녁 먹기 전 집 근처 한강을 달리고 있다. 날이 추워지니, 확연히 달리는 사람이 줄었다.
김지은
그렇게 그만둔 운동이 수영, 테니스, 스쿠버다이빙, 필라테스 등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다 달리기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달리기도 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었다. 달리는 게 재미있어 달리기를 중심으로 생활이 재편되었다. 그러다 달리기의 기록에 연연하게 됐는데 무리해서일까, 자꾸 무릎이 아팠다.
좀 쉬면 나아져서 그렇게 쉬다 뛰다를 반복했다. 전문가 교정도 받아보고, 러닝 자세 분석을 받고 추천하는 운동화로 바꿔보고, 병원도 가봤다. 그러나 다 그때뿐이었다. 달리지 못하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는데 뛰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니 또 안 뛰어도 살 만했다. 게다가 최근 달리기 열풍으로 너도나도 다 뛴다고 하니 오히려 달리고 싶은 마음이 식었다.
'난 달리기와 맞는 몸이 아니었어'라고 생각했다. 연인과 헤어진 후 '그래, 처음부터 난 그 사
람과 맞지 않았어' 하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그러나 달리기는 다른 운동과는 다르게 자꾸 미련이 남았다. 그걸 지난여름, 단편소설<토요일 아침의 로건>(서유미 소설집<밤이 영원할 것처럼> 중)을 읽으며 깨달았다.
열심히 일하던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뇌에 병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일만을 위해 열심히 살던 일상을 되돌아본다. 주변 누구에게도 자신의 병을 말하지 못한다. 어느 날 그는 후드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나선다. 난 생각했다.
'주인공이 달릴 모양이네.'
그러나 그는 달리지 않았다. 또 다른 날.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한강으로 간다. 이번에야말로 주인공이 달릴 타이밍이다. 그러나 그는 주변을 관찰할 뿐 달리지 않았다. 달릴 것 같은 장면이 몇 번 더 나왔으나 주인공은 달리지 않았다.
아니, 왜 달리지 않는 거야. 달리라고. 나는 주인공이 달리는 장면을 보고 싶다. 일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달리면 달리 보이는 게 있을 거라고, 현실의 고민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고, 뇌가 조금은 제대로 작동할지도 모른다고, 주인공에게 말했다. 주인공은 한 번도 달리지 않았는데 소설이 끝나버렸다. 난 책을 덮고 생각했다.
'와. 나 달리기 좋아하네.'
그러니까 달리는 건 나에게 운동 뿐만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도구였고, 숨 쉴 틈이었으며 복잡한 삶에 질서를 잡아주는 명상이고 기도였다. 뒤돌아보니 헤어진 전 연인 만한 사람이 없고 순수한 사랑은 그 사람 뿐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처럼, 달리기만한 운동이 없고, 이 운동은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수 있나, 아쉬운 내가 맞춰야지

▲YTN서울투어마라톤 마라톤 시작 전, 사람들이 출발지점인 광화문으로 모이고 있다.
김지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기록이나 보여주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므로 천천히 뛴다. 무릎 강화 운동을 하고 무릎 약한 사람에게 좋은 운동화를 구매했다. 무릎이 아프면 무리하지 않고 달리기를 멈추고 천천히 걷는다. 러닝 전과 후에 스트레칭을 잊지 않는다. 날이 추워지는 요즘, 스트레칭은 더더욱 중요하다.
지난 23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YTN서울투어마라톤에 참여하며 다짐했다.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달리자, 달리는 걸 즐기자고. 달리기 좋은 선선한 날씨였고, 광화문에서 동대문을 돌아오는 코스도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기록은커녕 중간에 무릎 통증이 도져서 걷고 싶었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를 이끌고 갔다.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꾸고 속도를 조절하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조금 나아졌다. 더 아프면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걷지 않고 결승점에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남편은 달리면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추억이 있던 장소들이 반가웠고 뛰는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었고, 날씨도 너무 좋았고, 등등. 나는 내 몸을 달래느라 주변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체력을 좀 더 길러 다음 대회 때는 좋은 날씨와 풍경도 잘 누리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누군가에게 달리기는 아주 잘 맞는 운동일 텐데 나에게 달리기는 왜 이렇게 까다로울까. '밀당(밀고 당기기)'의 고수 같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내가 맞춰야 한다. 집에 오자마자 폼롤러로 몸을 풀고 무릎 근력 강화 운동을 했다.
달리기 좋은 짧은 계절이 지나고 달리기 힘든 계절이 오고 있다. 매력적이지만 까다로운 이와 연애하는 마음으로 돌진하지도 멀리하지도 않으며 올겨울을 지내야겠다. 추위를 핑계 대지 않고 각각의 이유로 달릴 모든 러너를 응원한다. 모두 달리기와의 관계에서 '밀당'의 고수가 되시기를.

▲YTN서울투어마라톤 종로 1가 차로를 뛰고 있는 사람들. 남편은 마라톤 도중 이런 사진까지 찍었다. 마라톤 도중 사진이라니, 무릎에만 집중하던 나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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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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