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1.26 15:14수정 2025.11.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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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임혜영
얼마 전 내가 강사로 있는 수학 학원에 한 여고 학생이 실력 테스트를 받으러 왔다. 테스트가 끝나 시험지를 걷는데 멋쩍었는지 "한동안 공부를 안 했지만 앞으로는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방긋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이 너무나 환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 다니게 된 이 친구는 누구보다 해맑고 긍정적이라 어떤 미션을 주어도 순순히 잘 따른다. 하여 성적도 금방 올랐다. 무엇보다 표정이 밝고 구김살이 없어서 교실 안을 환하게 만든다. 가끔 부모님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는데 그 내용이 의외라 놀랍다.
"선생님, 우리 엄마, 아빠는요. 밥 잘 먹는 걸 제일 중요하게 여기세요. 빨리 먹어도 안 되고 천천히 꼭꼭 씹어서, 엄마가 해 주신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먹어야 해요. 밥이 얼마나 단지, 국이 얼마나 구수한지, 생선은 또 얼마나 담백하고 맛있는지를 느끼며 먹어야 한대요."
가끔 전해 듣는 이 학생의 부모님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웠다. 그분들의 말은 마치 나에게 하는 충고 같았다. '밥이야말로 누리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일하기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정도의 것으로만 여기니 끼니를 간식으로 때우거나 급하게 아무거나 먹는 것'이라는 말에는 뜨끔했다.
밥 먹는 시간에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밥을 맛있게 먹는 데만 집중하면 되니 모든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 시험을 못 봤어도, 집안에 우환이 있어도 밥 먹는 시간은 방해 받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일상, 숨 쉬고 밥 먹고 잠자는 것을 삶의 수단이 아니라 중요한 목적으로 대할 때 내가 우선시했던 다른 영역도 제자리를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일상적이고 손쉬운 일을 대하는 데 진심을 다 하다 보면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나가는 지혜도 터득하게 되지 않을까.
끼니를 건너뛰고 잠을 제대로 안 자는 등 몸을 해치는 나쁜 습관과 맞바꾼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돈일지도, 지식일지도 그 외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관한 지식이 모자라 좋은 삶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너머에 있는 지혜의 경지를, 건강한 정신을 가진 한 학생을 만나 체험하게 되었다.
해맑고 구김살 없이 웃을 수 있는 어린 친구의 건강함에 나도 전염이 되었는지 시간에, 강박에 쫓기듯 살아온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이렇게 숨 쉬고 먹고 소화 시킬 수 있는데 그보다 더 감사한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을 낮추니 감사할 수 있는 기운도 생긴다.
마음의 여유와 건강을 보여준 그 친구에게 어제는 어떤 밥을 무슨 반찬과 먹었는지 물어봐야겠다. 밥 먹고 살찔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요즈음, 밥의 소중함과 의미를 밝은 목소리로 즐겁게 말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람의 중요한 본능인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어 앞으로의 삶은 좀 더 충만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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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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