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를 상대로 한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인 부산지법.
김보성
당시 10세 전후였던 이들이 말한 과거는 그야말로 불법의 현장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일상적 폭행 속에 성폭력까지 겪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피해자(60대)는 학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신문을 팔러 부산에 왔다가 시설로 끌려갔는데, 이 과정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오열했다. 지금도 이를 떠올리면 몸서리칠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그는 영화숙·재생원의 문제를 반드시 증언해야겠다고 생각해 이 말을 꺼냈다.
고문과도 같은 군대식 기합과 상습적 폭력 속에 죽어 나가는 이들도 속출했다. 신문에 참여한 피해자 모두가 시설에서 숨진 또래들 이야기를 꺼냈다. 60대 ㄴ씨는 "한 친구가 실내에서 오줌을 많이 쌌다고 맞아 죽었을 정도"라며 "이런 걸 보면서 어떤 명령을 내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을 시설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경찰이나 공무원 등이 개입한 정황도 확인했다. 영화숙·재생원은 부산 중앙동 연안부두 인근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수용자들을 모았다. 70대 ㄷ씨는 "단속원들이 신규로 붙잡거나 도망쳤다가 다시 잡아 온 아이들을 한 방에 10여 명씩 가둬 놓고 감시하다가 밤에 차로 실어 날랐다"라고 증언했다. 이때 현재 지구대인 파출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ㄷ씨는 "파출소에서 연락이 오면 원장 차를 타고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자신을 붙잡아 간 이가 경찰이란 직접적 설명도 나왔다. ㄴ씨는 부산진역에서 동냥하다가 잡혀온 경우였다. 그는 "순사라고도 했는데 순경들이 날 잡아갔고, 파출소에서 연락해 연락사무소로 옮겨졌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이후 이러한 일은 반복됐다. 겨우 틈을 찾아 도망을 갔지만, 그는 또 경찰에 의해 서울시립아동보호소와 대구희망원 등을 거쳐 다시 영화숙·재생원으로 수용됐다.
아직도 트라우마... 법정서 피해자들 오열하기도
형제복지원과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시기적으로 먼저 자행된 영화숙·재생원 사태는 지난 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을 하면서 그 전모가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부산 사하구(당시 서구) 시설에서 원생을 통제하며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이 때문에 형제복지원의 모태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진화위는 부산시 등이 재단법원 영화숙과 부랑자 선도를 위한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판단해 국가의 공식사과, 암매장 유해 발굴, 피해자 지원 등을 권고했다. 진화위는 "평생 침묵을 강요받으며 힘들게 살아온 피해자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이번 소송은 이러한 진실규명 노력의 연장선이다. 이날 두 시간 가까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은 재판부는 한 달 뒤인 12월 24일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앞서 부산시 등 피고 측 법률대리인은 첫 재판에서 관리감독 등의 책임 입증이 부족하다며 선을 그었지만, 두 번째 재판에선 이와 달리 별도의 반대 신문을 하지 않았다.
법원 밖으로 나온 영화숙·재생원 피해자협의회는 국가폭력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판결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손석주 협의회 대표는 "일제강점기에 대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말하면서 국내에서 벌어진 과거사 국가폭력은 왜 정리를 못 하느냐. 깨끗하게 털고 미래로 가야한다. 그게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 영화숙 재생원 피해자협의회 손석주 대표가 26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소송 두번째 변론기일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말하고 있다.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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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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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터지도록 맞고..."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의 참혹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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