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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1.27 12:36수정 2025.11.27 12:3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능시험 보는 날 시골 할머니도 시험을 치렀다. 가슴이 두근두근, 늦은 밤인데 컴퓨터 화면에 자꾸만 눈이 간다. 늦은 밤까지도 컴퓨터 앞이라니 평소라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실상은 주변의 권유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글쓰기를 오래전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 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는 내 모습이 마냥 어색하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도 흘러간다. 생나무 글(송고한 글이 채택되지 않았을 때 저장되는 곳)에 글이 없다.
여기저기 클릭하다 검토 중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아! 내 원고를 검토하고 있구나. 수능 등급을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가슴이 뛴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비비며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한참 남아 있는데 내 마음은 분주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카톡의 알림음이 울린다. 'OO 기자님 오마이뉴스입니다. 기자님의 기사가 방금 채택되었습니다'. 와! 드디어 내 기사가 실린다. 이렇게 좋을까? 퇴직하고 5년 만에 처음 느끼는 설렘이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TV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 역시 슬기로운 퇴직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텃밭에 문안 인사 하고 동네 체육관으로 간다. 남아 있는 근육을 지키려고 힘들어도 '꾹~' 참고 운동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오후에는 학원으로 향한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에 도전한 것이다. 나의 꿈은 소박하다. 아이들이 집 떠나고 주인 없는 피아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다. 조용한 산속 집에서 찬송가 한 곡, '젓가락 행진곡', 가을이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치고 싶다. 하지만 내 꿈은 저 멀리, 굵고 짧은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느리게 춤을 추고 있다.

▲ 건반 위의 꿈
이지현
한자 쓰기도 시작했다. 웬 한자? 영어도 아니고. 왕궁리 유적지 근처에 즐겨 찾는 식당이 있는데 대부분 음식에 '마'를 넣었다. 식당 벽면에 백제 무왕의 어린 시절 서동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있는데, 역사적 검증은 뒤로하고 즐거움을 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애쓰지만 읽을 수 없는 한자가 너무 많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한자 학습지를 신청하고, 학교 졸업 후 50년 만에 한자를 쓰기 시작했다. 모르는 한자를 인터넷 한자 사전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용수철(龍鬚鐵)과 탄핵(彈劾) 글자가 인상적이다. 용용, 수염수, 쇠철, 탄알 탄, 꾸짖을 핵 등 의미를 알고 혼자서 피식 웃는다.
이제 장례식장에 가면 비치된 봉투 대신 하얀 봉투에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춰 부의(賻儀)라고 곱게 적는다. 망각과 기억의 줄다리기 속에서 한자 공부는 즐거운 소일거리다.
오랜만에 동료 교사들과 만나 식사하던 중 직장 생활의 멘토였던 선생님이 글쓰기를 권했고 관련된 책도 추천해 주셨다. 전원생활의 소감을 글로 옮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내가 감히? 염려했지만 용기를 내어 퇴직 후 전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옮겨놓았다.
텃밭에서 노각 오이를 보며 느끼는 감사와 기다림을 표현한 '
100년 만의 폭우에도 결실은 있다'라는 기사가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올라왔다. 동료 교사 조언에 의한 도전의 첫 결과물이다. 가족들과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익산의 세계 문화유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지를 소개한 글도 올라왔다. '오전 6시에 서울 출발해서 여기까지…. 이유가 뭘까?' 얼마나 신명 나는 일인가? 책상 앞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가슴 벅찬 이 행복!
새로운 기사 거리로 마음이 설렌다. 가람 이병기 문학관이나 역사 문화 박물관, 전통시장 등 가족 여행지로 적합한 익산의 숨은 명소를 찾아 우리 지역의 문화와 삶의 현장을 전달하고 싶다. 지역 홍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시골 할머니가 되고 싶은 수줍은 욕심으로 충분히 설레고 행복하다.

▲ 슬기로운 퇴직 생활, 글 놀이
이지현
시민기자 도전 이후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책꽂이의 장식품이 되어버린 책을 정성스럽게 펼쳐 읽기 시작했다. 뒤돌아서면 공허한 카페의 수다 대신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며 한 줄씩 적어 본다. 참 오랜만이다.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나를 기록하는 일이.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질서 없이 새벽에 잠이 깨어도 걱정이 없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아있으니 더 늙기 전에 나의 삶을 추억할 수 있는 보물을 만들면 된다.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은 소중한 글 놀이가 다가온 것이다. 시민기자 활동은 노후에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며 마음의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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