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도브(Dove)의 유명했던 광고 "Evolution" 유니레버(Unilever)가 도브의 '진정한 아름다움' 캠페인의 일환으로 2006년 제작한 광고 "Evolution"은 포토샵 보정이 한 여성 모델의 외모를 변화시키는 전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세계적으로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세계 최초의 '신체 이미지 법'으로 여겨지는 이스라엘의 "포토샵 법" 역시 이 광고에서 촉발된 대중적 인식과 여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Unilever
'신체 이미지 법'이라는 이상한 집합 — "개밥 같은(dog's breakfast)" 규제의 역사
브롬버그는 자신의 책에서, 지금까지 세계에서 시도된 '신체 이미지 법'을 통틀어 "개밥(dog's breakfast)" 같다고 표현한다. 이는 "온갖 것이 뒤죽박죽 뒤섞여 엉망이 된 상태"를 뜻하는 영어 표현으로, 신체 이미지 법의 역사를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잔혹할 만큼 정확히 묘사한다.
실제로 2025년 현재까지 정식으로 신체 이미지 법이 통과된 국가는 이스라엘, 프랑스, 노르웨이 딱 세 곳뿐이다. 비록 법이 만들어지지는 못했지만, 영국은 ASA(광고표준위)와 CAP(코드위원회) 등 자율규제 기구를 통해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운용하고 있고, 호주는 2009년 "신체 이미지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on Body Image)"과 AANA(호주 광고주협회) 코드 등을 통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관련 규범을 준비해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나 미국 애리조나주 등에서도 법안이 발의된 적은 있지만, 실제로 통과되지는 못했다.
이 법과 규범들을 한 데 모아보면 정말이지 기묘하다. 어떤 법은 모델이나 광고 모델에게 건강증명서 혹은 의사의 진단서를 요구한다. 어떤 법은 이미지 보정 여부를 명시하지 않으면 광고주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어떤 가이드라인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광고에서 특정 표현을 금지한다. 프로아나(pro-ana) 콘텐츠를 형사처벌하려다 실패한 사례도 있다. 어떤 나라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뷰티 필터 사용 금지를 논한다. 또 어떤 나라는 플랫폼 알고리즘의 '위험 감사'를 의무화한다. 그리고 이 다채로운 규정과 조치들은 모두 '신체 이미지 법'으로 명명되고 논의된다.
그리고 이 법과 규제가 만들어진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이스라엘 모델 힐라 엘말리히, 프랑스의 이사벨 카로,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름 없이 숨을 거둔 수많은 여성과 청년들이, 그들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한 가지 진실을 증언했다. 이 죽음들은 '개인의 선택'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정치·문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스라엘 포토샵 법: 국가가 '몸'을 규제하다
2000년대 중반, 이스라엘에서도 국제 패션계와 마찬가지로 극도의 저체중 상태에서 활동하던 모델들의 사망 사건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2007년, 유명 모델 힐라 엘말리히(Hila Elmalich)가 극심한 거식증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촬영 현장에서 쓰러져 사망한 사건은 국가적 충격이었다.
언론은 연일 "패션 산업이 소녀들을 죽인다"고 보도했고,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신체 이미지와 정신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부모 단체와 의료계는 정부에 즉각적인 개입을 요구했고, 처음으로 "패션 산업을 공중보건 관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뜻밖에도 이 여론 형성 과정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은 패션 포토그래퍼 출신 아디 바르칸(Adi Barkan)이었다. 쓰러진 힐라 엘말리히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렸던 경험이, 파리와 런던, 뉴욕에서 포토그래퍼로 경력을 쌓은 뒤 세기말 텔아비브로 돌아와 모델 에이전시를 개업하고 2001년에는 여성 모델들의 비키니 화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비키니> 매거진까지 창간했던 그를, 활동가로 바꿔놓았다.
에이전시는 반드시 의사의 진단서로 건강을 입증한 모델만을 고용해야 하며, 광고나 패션쇼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모델의 BMI가 18.5 이상이어야 한다는, 일말의 의혹 없이 당당하고 완고한 규정을 법안으로 제안한 것은 그였다. 그리고 일명 "포토샵 법(Photoshop Law)", 정식 명칭으로 '모델 업계 내 체중 규제에 관한 법(Law for Restricting Weight in the Modeling Industry)'이 2012년 3월 마침내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이 흡연 규제법, 알코올 광고 제한, 미성년자의 유해 미디어 접근 차단 등, 이미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 아래 도덕적·건강적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보호주의' 입법의 역사를 지닌 덕분이기도 했다. 여기에 BMI 기준을 요구하는 조치가 "의학적 정당성"의 근거가 됐고, 2006년 도브(Dove)의 광고 캠페인이 '이상적(unreal)' 아름다움을 위한 포토샵 보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중화한 시기적 분위기에서, 그 두 가지 조합은 법안이 통과하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이기도 했다.
2013년 새해 벽두를 기점으로 '포토샵 법'이 발효된 이후, 바르칸은 모델들에게 건강한 체중과 식습관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당시 이스라엘 방위군(IDF) 여군들에게 급증한 거식증 문제를 다루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캠페인의 명칭 역시 'RealUnreal'이었다.
방독면을 쓴 아이들: 불안이 일상세계(lifeworld)를 잠식할 때
아디 바르칸은 어째서 이스라엘 여군들을 대상으로 신체 이미지와 섭식장애 강연을 하게 되었나? 이스라엘에서는 어째서 1990년대부터 여성 청소년들 사이에 섭식장애가 폭증하는 현상을 겪게 됐을까? "이스라엘 패션 업계의 급격한 서구화"가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결국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부터 글쓴이의 개인적 경험이 개입한다. 나는 1980년생으로, 열살 남짓한 무렵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시간에 TV 뉴스에서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한 CNN 촬영 영상을 목격했던 것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한 네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에 연사로 참여할 미국 로욜라대학교 역사학자 엘리스 웨인렙(Alice Weinreb)에게 다소 충동적으로 이메일을 썼다. 20세기 섭식장애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그에게, "만약 당신이 21세기 섭식장애사에 대해서도 쓰게 된다면, 그건 어쩌면 '신체 이미지 법'과 테크놀로지에 관한 책이 될 것"이라고 쓰고 브롬버그의 책을 언급한 데 뒤이어, 나는 "Israel's "Photoshop Law," 2012–2013"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이메일을 전송했다.
섭식장애로 연구 주제를 옮기기 전에, 애초 그의 연구 주제는 20세기 동서독의 식생활 문화였다. 동독이 국가적 규모로 시행했던 직장 내 구내식당 시스템이나 사회주의 체제가 가정에서의 여성의 요리 활동을 서독과는 얼마나 크게 다른 양상으로 바꿔놨는지 등을 다뤘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출발한 그의 20세기 섭식장애사 연구는 놀랍게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집단적 홀로코스트 기억'을 중심으로 전에 없던 놀라운 의미를 풀어낸다. 나는 지난 여름 한겨레신문사에서 있었던 '휘클리 심화반' 강의에서도 그의 연구를 중요하게 언급했는데,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다룰 순 없겠지만, 그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섭식장애는 결코 개인의 식습관이나 미용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폭력·기억·국가·가족 구조가 한 사회의 몸에 각인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힐데 브루흐(Hilde Bruch)와 '거식증의 시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박지니가 2025년 6월 2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휘클리 심화반' 강의에서 썼던 발표자료 중 일부. 20세기 섭식장애사를 연구하는 미국 역사학자 앨리스 웨인렙(Alice Weinreb)은 1970년대 후반 힐데 브루흐의 책 <황금새장 속에 갇힌 소녀>가 출간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의 거식증 논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여러 연구를 통해 설명해왔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프랑스 "마네킹 법(Mannequin Law)" — 이사벨 카로의 죽음과 '세계 패션 수도'의 책임
우리에게도 거대한 옥외 빌보드에 "No Anorexia"라는 강렬한 카피 문구와 함께 등장했던 '거식증 광고'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Isabelle Caro)는 "거식증의 진실"을 보여주겠다며 기획된 이탈리아 브랜드 놀리타(Nolita)의 바로 그 광고 캠페인이 있은 지 3년 만인 2010년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때까지의 대략적인 연표를 그려보면 이렇다. 199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패션계에 마약중독자처럼 초췌한 외모를 뜻하는 "헤로인 시크(Heroin chic)"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2000년 초 영국의사협회(BMA)에서 이 같은 왜곡된 신체 이미지가 여성 청소년에게 섭식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는 아직 규제화 동력을 얻기 전이었다.
사건은 2006년에 터졌다. 몬테비데오 패션위크 런웨이에 섰던 우르과이 모델 루이젤 라모스가 심정지로 현장에서 사망했고, 그의 부친은 딸이 오랜 기간 상추와 다이어트 콜라로 연명했으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 날도 많았다고 보고했다. 한 달 뒤 스페인 마드리드 패션위크는 정부 및 전문가, 여론의 압력에 BMI 18 미만인 모델은 캣워크에 서지 못하게 하겠다는 결정을 공식화한다. 같은 해 11월, 이번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브라질 모델 아나 카롤리나 레스톤이 거식증으로 인한 신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직후, 조르지오 아르마니에서 더 이상 BMI 수준이 극도로 낮은 모델과는 계약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공표한 것은,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도 더 이상은 여론의 분위기에 눈 감을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6년 12월, 이탈리아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은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퇴출하겠다고 발표한다.
루이젤 라모스가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2007년 2월, 역시 모델 활동을 했던 그의 동생 엘리아나 라모스 역시 극심한 영양실조로 인한 심정지로 목숨을 잃는다. 영국패션협회(British Fashion Council)은 즉시 모델 건강 조사위원회를 발족해 조사에 착수했고, 16세 미만 모델은 가급적 런웨이에 세워서는 안 되며 모델들의 건강 상태를 한층 포괄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BMI 기준을 제시하는 규제안은 아직 너무 과도한 조치였다.
2007년 11월, 이스라엘에서 힐라 엘말리히가 사망했다.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의 거대한 옥외광고가 유럽을 충격에 빠트리고 신체 이미지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인 와중이었다. 카로가 2010년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프랑스는 격심한 논란에 휘말렸다.
프랑스는 단지 한 국가임을 넘어 '파리 패션'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문화권력이었다. 그들에게 신체 이미지 문제는, 단지 국내 청소년의 건강 문제를 넘어, 자국이 생산·수출하는 이미지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하는 문제였다. 프랑스에 이 문제는 공중보건 문제인 동시에 "문화적 책임"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America's Next Top Model 시즌 1 출신 일리스 스웰과 ANTM 포스터 공교롭게도 미국 리얼리티쇼 'America's Next Top Model' 일명 'ANTM'이 시즌 1 방영을 시작한 것 역시 2003년의 일이었다. 시즌 1 출연자 중 가장 문제적이었던 모델 중 하나는 당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메디컬스쿨 진학을 목표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일리스 스웰(Elyse Sewell)이었다. 리얼리티쇼에 참가한 동료 모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섭식장애를 앓는다"는 루머에 시달렸던 스웰은, 시즌 1 종료 이후 흥미롭게도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모델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ANTM은 그 무렵 '포럼' 형태로 구축되었던 초기 '프로아나(Pro-Ana)' 커뮤니티에서도 뜨거운 화제였으며, 특히 일리스 시웰은 출연자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
Harper's BAZAAR HK, ANTM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 당시 보건장관을 맡고 있던 마리솔 투레느(Marisol Touraine)는 신체 이미지 문제를 "여성 건강"과 "청소년 건강" 문제로 전면화시켰다.
그 결과, 프랑스는 2015년 △ 모델 고용 시 의사의 건강 증명서 요구, △ 일정 BMI 미만 모델 고용 금지, △ 보정 이미지에 대한 라벨링 의무화, △ 프로아나(Pro-Ana) 사이트에 대한 강력한 규제 논의를 포함한 '마네킹 법(Mannequin Law)'을 통과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마네킹'은 쇼윈도의 인체 모형이 아니라 패션모델을 일컫는 프랑스어로, "패션모델 법"으로 번역하는 쪽이 더 정확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한때 프로아나 콘텐츠를 형사처벌하는 법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거식증을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콘텐츠를 게시할 경우 최대 2년의 징역"이라는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강경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는 많은 전문가와 당사자들의 우려 섞인 이견에 통과되지 못했다.
이 강경 정책안을 질타했던 사람들은 △ 프로아나는 도움 받지 못하고 고립된 이들이 겨우 찾아낸 왜곡된 생존 공간이기도 하며, △ 형사처벌은 이미 취약한 사람들을 더 깊은 은둔과 비가시성 속으로 몰아넣을 뿐이고, △ 국가가 질병의 표현을 범죄화하는 것은 그들이 치료받을 공간과 언어를 빼앗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이와 같은 논지는, 지난 5월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서울대 여성연구소-여성학협동과정과 함께 주최한 온라인 콜로퀴엄에서 발표한 캐나다 연구자 니콜 쇼트(Nicole Schott)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비판 사회복지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기초로 '프로아나/미아(Pro-Ana/Mia)' 현상을 연구하며 동료들과 함께 '비판적 섭식장애/섭식질서 연구모임(Critical Eating Dis/Order Studies)'을 운영하고도 있는 그는, 10년 전 이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주로 텀블러(Tumblr) 플랫폼에서 만난 프로아나 멤버들의 말을 발표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사람들이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폐쇄하는 게 텀블러가 말하는 검열 정책이다. 사람들 사진을 몰래 찍어 올리면서 뚱뚱하다고 조롱하는 블로그들은 정작 그대로 두면서 말이다. 누군가를 섭식장애로 밀어넣는 콘텐츠는 괜찮고, 막상 섭식장애로 미끄러진 사람들이 '브로(bro) 문화'에서 용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말하는 공간은 쓸어내버리겠다고?"
"핫라인, 비영리단체, 온갖 기관들은 문화적 특권을 내세워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우리의 정체성과 경험을 대신 정의한다. 우리가 사용해 온 해시태그는 이미 그들의 콘텐츠로 도배돼 있다. 그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무가치한 실패자'라는 메시지를 반복해 주입한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2년 전 프로아나 블로그에서 만난 아이다. 그 애는 폭식증을 앓고 있었고, 우리는 매일 같이 대화를 나눴다. 내가 아침 식사로 토스트를 먹을 때도, 병원에 체중을 재러 갈 때도 그 애가 나를 지지해주었다. 우리 우정은 텀블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첫 번째 자살시도에서 실패한 것도, 내가 그 애에게 '안녕'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네 개 주나 떨어진 곳에 살았으면서 그 애는 경찰에 신고해 내 생명을 구했다. 텀블러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장애 혐오, 성차별,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폭력이다. 누군가를 자해하게 만드는 건 '섭식장애가 멋지다'고 말하는 블로그가 아니라, 이런 구조적 폭력들이다."
"검열은 원인을 다루는 대신 증상을 공격한다. 이런 검열로 프로아나 블로그들이 사라지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한다면, 애초에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프로아나'와 테크놀로지의 역사: vBulletin, 아이폰, 해시태그, 소셜미디어
내 책 <삼키기 연습: 스무 해를 잠식한 거식증의 기록>(글항아리, 2021)에는 2000년대 초반 처음 등장했던 '포럼(forum)' 기반 프로아나 커뮤니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프로아나' 웹사이트에 대해 알게 된 건 입원병동 입·퇴원을 반복하다 2002년 3월 마지막 퇴원을 한 뒤 외래 진료를 받던 중이었다. 어느 날 원장 선생님이 프로아나 사이트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즉시 호기심을 갖게 됐다. 아마 학교 전산실에서 처음으로 검색해보았으리라. 몇 곳의 외국 '포럼'에 들르기 시작했고, 그 사이트들과의 인연은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외국에서 즐겨 쓰이던 '포럼' 포맷(제일 위에 'general discussion' 게시판이 있고, 그 밑에 주제별로 게시판이 늘어서 있으며 'album' 페이지도 따로 있는)으로 만들어진 '아나프렌즈(AnaFriends)'가 내가 주로 활동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닉네임을 썼는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활발히 활동하던 멤버들 가운데 동양권에서 온 사람은 내가 유일했을 것이다. 조심조심 분위기를 엿보다 천천히 활동을 시작했는데, 언젠가는 내가 적은 어떤 문장('나는 단지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내 몸과 주변의 작은 세상에서 통제력을 갖고 싶은 것뿐이다')을 다른 멤버가 자신이 포스팅한 글에 내 닉네임까지 밝히고 인용한 것을 보고,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그리고 그룹에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에 사뭇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vBulletin 계열 포럼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됐던 당시의 '프로아나' 커뮤니티들은 △ 이미지를 직접 첨부할 수 없어 Photobucket, Imageshack 같은 외부 어카운트에 사진을 올린 뒤 IGM 코드를 복사해 입력해야 했고, △ 계층적 스레드(thread) 구조를 갖고 있었고, △ 가입 승인, 멤버 등급이 존재했다. 즉, 아무리 '프로아나 커뮤니티'라지만 소셜미디어가 대세인 지금처럼 콘텐츠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공개되어 있는 게 아니라 회원가입을 하고 승인을 받은 사람에게만 공유되는 환경이었다. Photobucket에서 링크시킨 고화질 이미지가 화면에 다 뜨기까지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과거의 '포럼' 콘텐츠를 유지하고 있는 The Fashion Spot 'di47f'는 2000년대 초반 글쓴이가 자주 사용했던 아이디였고, 당시 vBulletin 포럼 형태를 하고 있었던 The Fashion Forum은 현재까지도 당시의 콘텐츠를 아카이빙해 두고 있다. 나는 '프로아나' 포럼을 거쳐 당시 가장 유행했던 블로그 플랫폼인 '라이브저널(LiveJournal)'을 거쳐 The Fashion Forum에서도 활동하곤 했다. 위에 검색된 내용들은 내 라이브저널 이웃들이 내가 올렸던 국내 패션지 화보 이미지를 The Fashion Forum 스레드에 공유한 자취들이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당시에도 Angelfire, GeoCities, Tripod 기반으로 운영되던 프로아나 웹사이트나 포럼형 커뮤니티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이를 만든 십대 운영자를 처벌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이따금 기사화되곤 했다. 나는 대학 전산실에서 그런 기사를 서너 편쯤 클릭해 읽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중 하나는 실제로 프로아나 사이트를 운영하던 한 10대 소녀를 직접 인터뷰한 기사였고, 그녀가 느꼈을 당혹감과 두려움, 분노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때의 포럼은 철저히 데스크톱 문화였다. Proboards, vBulletin 기반의 화면을 켜고 앉아, 긴 텍스트로 경험을 풀어놓고, 외부 이미지 링크를 복사해 붙이고, 서로의 '스레드'를 살려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 바로 아이폰의 등장(2007)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는 이사벨 카로의 "No Anorexia" 광고가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해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프로아나' 대화의 중심지는 포럼에서 텀블러(Tumblr) — 그리고 곧이어 페이스북(Facebook)과 2010년에 등장한 인스타그램(Instagram) — 으로 집단 이동했다. 포럼이 텍스트 기반의 '긴 글 문화'였다면, 새로운 SNS들은 철저히 이미지 중심적이었다. 이 변화는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기본 탑재되었다는 사실, 언제 어디서나 셀카(selfie)를 찍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과 맞물렸다. 포럼 시대부터 존재하던 'Thinspiration'은 인스타그램에서 #thinspo라는 해시태그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럼에서는 한 사용자가 올린 스레드가 토론을 촉발해 댓글 수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앞면에 '노출'되었지만, 인스타그램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제 '좋아요(Likes)'의 숫자가 사용자의 가치를 증명했고, 개개인의 영향력과 취약성, 그리고 비교가 더 즉각적이고 날것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포토샵 법(2012–2013)"이 통과되기 전후로, 프로아나 문화는 즉각적이고, 개인적이며, 알고리즘적이고, 상시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재구성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스레드'를 찾아가는 문화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큐레이션하는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사라지는 이미지들의 행렬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시기에 플랫폼들은 처음으로 대대적인 일괄 삭제와 계정 차단 방식의 검열을 시작했다. #proana, #thinspo, #bonespo와 같은 해시태그는 검색에서 차단되었고, 관련 계정은 가차 없이 삭제됐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보이는 것을 제거하는 방식"의 검열은 전혀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가령, 프로아나 커뮤니티는 더 폐쇄적이고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 예컨대 비공개 텀블러, 폐쇄형 디스코드, 사설 텔레그램 채널로 피신할 수 있었다. 즉, 검열이 그들이 탐지한 '위험 콘텐츠'를 더욱 추적 불가능한 구조 속으로 스며들게 만든 셈이다.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법을 앞두고 EDFA(호주 섭식장애 가족협회)가 만든 콘텐츠 당장 12월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접속이 제한되는 호주에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부모, 가족, 학교와 지역사회가 겪게 될 혼란과 시행착오를 완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호주 섭식장애 가족협회(Eating Disorders Families Australia)가 마련한 'The Social Media Reset' 교육 세션은 이 잔혹한 전환의 부담을 가족이 직접 감당해야 함을 보여준다.
EDFA
알고리즘 책무성(algorithmic accountability) — '신체 이미지 법'의 새로운 전기
2020년대에 들어서며, 문제는 단순한 '위험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각국 정부는 프로아나와 신체 이미지 왜곡의 핵심이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 도덕성에 있지 않으며, 플랫폼의 구조적 작동 — 특히 알고리즘 — 에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좋아요'를 누르는 개인이 아니라, 사용자가 선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콘텐츠를 배치하고 증폭시키는 기계적 판단 구조가 청소년의 신체와 정신건강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정책과 연구의 중심으로 올라온 것이다.
브롬버그가 태스크포스와 함께 호주 의회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그 콘텐츠가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빈도로 도달하는가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과거 클릭 데이터를 근거로 프로아나·극단적 다이어트·몸 평가 영상을 지속적으로 재추천하고, 플랫폼은 이를 "블랙박스"로 남겨둔 채 책임을 회피한다. 브롬버그는 이를 "책임 없는 설계(responsibility-free design)"라 비판한다.
따라서 그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플랫폼 투명성(platform transparency)'이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플랫폼은 추천 알고리즘의 위험성과 편향을 정기적으로 감사(audit)받고, 청소년에게 무엇이 어떤 경로로 노출되는지 설명할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논의의 중심 — 알고리즘 책무성(algorithmic accountability)이다.
지난 10월, 브롬버그가 참여한 태스크포스가 호주 연방 의회에 제출한 권고안은 모두 이러한 구조적 관점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 플랫폼이 프로아나·외모 기반 사이버불링 콘텐츠를 선제적·사후적으로 삭제할 것
■ 독립 기관의 알고리즘 위험 감사를 법적으로 의무화할 것
■ 사용자가 원할 때 추천 알고리즘을 즉시 리셋(reset)할 수 있게 할 것
■ 청소년 계정에는 외모 기반 광고·뷰티필터·추천 콘텐츠를 차단(opt-out)할 수 있게 할 것
■ 플랫폼의 주의의무(duty of care)에 '신체 이미지·섭식장애로 인한 위해'를 명시할 것
이 조치들은 단순한 이미지 규제나 모델 BMI 제한을 넘어선다. 이는 플랫폼 설계를 공중보건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신체 이미지 법'의 패러다임을 구조적 규제로 전환하는 시도다.
브롬버그의 접근은 "보정된 이미지"라는 표면적 문제를 넘어선다. 그녀가 던지는 질문은 훨씬 더 근본적이다. 어떤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어떤 몸이 위험하게 이상화되며, 누가 그 과정을 통제하는가?
전쟁과 불안, 경제적 취약성, 경쟁 구조, 젠더 규범, 그리고 온라인 문화가 겹겹이 얽힌 사회라면 어디에서든 청소년은 자신의 몸을 '통제 가능한 마지막 공간'으로 느끼는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 알고리즘 책무성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청소년이 무너지고 고립되기 전에 그들의 피드(feed)에 무엇이 흘러드는지, 그 흐름을 설계하고 증폭시키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구조에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브롬버그가 강조하듯, 문제는 모델 개인이 아니라 '이상적 몸'을 생산하고 증폭하는 시스템 전체다. 그렇기에 해결 역시 개인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어떻게 재설계하고 규율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마릴린 브롬버그와 그의 책 '신체 이미지 법' 정책·연구·대중 인식 전반에서 자신의 책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주길 바라냐는 질문에, 브롬버그는 이렇게 답했다. "훌륭한 질문입니다. 이 책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랍니다. 첫째, 경고문 의무화처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신체 이미지 법'의 추가 도입을 막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경고문은 실질적 효과가 없습니다. 둘째, 실제로 효과를 낼 수 있는 법이라면 정치인들이 이를 도입하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 법들에 대한 연구와 공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모든 관련 연구를 책의 부록에 정리해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M. Br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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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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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모델이 아니라 '이상적 몸'을 생산-증폭하는 시스템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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