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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값 973원이 만들어낸 수상 소식

2025 국민이 함께 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대상... 상처와 실패가 만든 나만의 포트폴리오

등록 2025.11.28 16:45수정 2025.11.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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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1일은 내 인생의 중요한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날이었다. 바로 <2025 국민이 함께 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시상식에 참가하게 된 것. 이 공모전은 한국 저작권 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브런치스토리가 공동 주최했다. 올해 6월에 응모한 작품이 8월 본선 진출 소식을 알렸고, 전 국민 인기투표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9월 12일, 총 4701편 중 단 18편만 뽑힌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그 리고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다.

대상, 정현주 <내 이름값 973원>


햇살이 뜨겁던 계절에 쓴 글이,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을 넘어 내게 도착한 것이다.

저작권 글 공모전 시상식 가던 날

시상식 날 아침 누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않는데, 머리를 감는 순간부터 샤워를 마칠 때까지 정성을 들였다. 오백 년 만에 화장대 앞에 앉았다. 회사를 다닐 때도 화장에 공을 들이는 부류가 아니었으니, 화장대 의자는 늘 구석에 밀려 있던 가구였다. 스킨 챱챱, 로션 톡톡. 성질 급한 아저씨처럼 쩍벌 자세로 서서 얼굴을 몇 번 치면 끝, 이게 단장의 전부였다.

그런 내가 화장대를 마주하고 의자에 앉았다. 마음 상태에 따라 건너뛰던 화장의 순서도 오늘만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래 잊고 살던 나를 다시 불러오듯, 화장품을 하나씩 꺼내 천천히 올렸다.

또 오백 년 만에 드레스룸에서 서성였다. 원피스, 투피스, 코트. 옷걸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흔들렸다가 침대 위로 던져지고, 다시 걸렸다가 또 던져졌다. 부츠까지 신고 나니, 스스로를 단단히 여미는 기분이 들었다. 공모전에 응모했던 글 '내 이름값 973원'의 내용인 방송작가로 살아온 시간도 겹쳐 보였다.


"방송작가는 뭐 하는 거예요?"

1991년 처음 방송국 문을 열던 날부터 들었던 질문이다. 당시엔 KBS, MBC, EBS 세 방송국뿐이었고,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방송으로 확인하세요"라고 말하며 의도치 않은 홍보 멘트를 날렸다.


첫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날, 우리 가족은 벌칙을 수행하듯 저녁도 굶은 채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무뚝뚝하고 애정표현 하나 없던 아빠는 어색한 포즈로 비디오 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넣고, 빨간 레코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오후 7시 정각, 타이틀 음악이 흐르자 아빠의 손끝이 움직였다. 가족들은 공복임에도 힘차게 박수를 쳤다. 우리가 기다린 것은 유명 연예인의 얼굴도, 화려한 카메라 워킹도 아니었다. 밤을 새우며 쓴 내 문장이었다. 그게 방송작가의 일이었다.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가고, 화면 맨 아래에서 시작한 내 이름이 천천히 위로 오르던 순간, 가족들은 손을 맞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밤,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재생해 내 이름이 등장하는 그 장면만 조용히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어둑한 거실에서 텔레비전 불빛이 생애 처음으로 나를 비추던 순간이었다.

첫 방송 기념 이벤트로 알았던 아빠의 비디오 녹화는 단발성이 아니었다. 아빠는 매주 공테이프를 채우며 '아빠만의 연속극'을 만들었고, 비디오테이프 옆구리에 내 이름 석자를 붙여두는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연속극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지나가는 감기에 발목을 잡힌 줄 알았지만, 폐렴이라는 불청객은 너무 성급하게 아빠를 데려갔다. 아빠는 60대 초반의 숫자를 남기고 하늘로 올랐다. 네모난 화면 속, 내 이름이 위로 올라가던 모습처럼.

"방송국은 왜 그만뒀어요?"

방송국을 그만 두었을 때, 열이면 열명에게 이 질문을 받았다. 아니 그 좋은 직업을 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송작가가 좋은 점'은 딱 하나였다. 연예인을 실컷 보는 것.

나는 방송작가와 궁합이 잘 맞았다. 취재도 체질에 맞았고, 새로운 걸 좋아하는 성향도 맞았다. 무엇보다 지는 걸 싫어하는 성질은 시청률 전쟁에서 오히려 에너지가 되었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운 좋게도 한곳에 있었다.

주 6일 근무도 행복했고 생방송 전담이라 반복되는 밤샘도 야행성이라 익숙했다. 주 1회 정규 프로그램, 특집, 신설프로그램 기획까지, 일을 늘릴 수 있는 만큼 늘렸고, 대신 나의 잠과 사생활을 줄였다. 하지만 내 안의 '아이디어 창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독서도 휴식도 뒤로 밀어두며 일만 채우던 시간들.

아이템을 받으면 뇌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데드라인은 더 빨리 다가오고, 불안은 더 깊게 내려앉았다. 글을 쓰는 일이 '징글하다'는 말이 숨을 쉴 때마다 튀어 나왔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흉내 내며 나를 속이고 있었다.

그렇게 방송이 되고 내 이름이 화면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내 이름이 부끄럽다는 감정을 맛보게 되었다. 지켜야할 것은 글이 아니라, 그 글 아래 붙은 '내 이름 석자'였다. 그렇게 2013년 마지막 녹화를 마치며 20여년 동안 드나들던 KBS 지하 1층 스튜디오 철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2024년 겨울, 조용한 내 통장에 작은 알림이 떴다.

<저작물 사용료 지급내역>
KBS미디어 2024년 상반기복제배포전송료
세부내역: 시청자주문판매
실 지급액 : 973원

10년 넘게 방송국을 떠나 있었는데 누군가, 어디선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금액은 작았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다가왔다. '당신의 글은 아직 살아 있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973원이 나를 다시 책상 앞에 앉혔다. 아빠가 정성스레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에 붙어 있던 '내 이름 석자'를 다시 꺼내보라는 신호 같았다.

지나온 시간은 단 한 장도 헛되지 않다

시상식은 오후 3시. 일찍 도착한 행사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대 규모와 조명은 달랐지만, 아나운서의 진행과 시상 때마다 울리던 웅장한 음악까지. 나에겐 청룡영화상보다 떨리는 무대였다. 지정된 테이블 위에 내 이름 석자가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20여 년 전, 말없이 비디오테이프 옆에 아빠가 붙여주었던 그 이름. 아이디어가 바닥나 도망치고 싶었던 그 이름. 어느 날 저작권료 973원을 이끌고 내게 돌아온 그 이름. 그 이름을 다시 꺼내고, 다시 글을 쓰게 된 나의 시간을 산문으로 담았다. 그 이야기가 이렇게 '대상'이라는 자리까지 나를 데려왔다.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믿는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내가 한 번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잘 나갔다면, 어느날 도착한 저작권료가 973원이 아니라 973만 원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대상이라는 인생의 이벤트를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하고 싶었던 상처와 아픔, 도망가고 싶었던 좌절과 실패의 순간들. 그때는 버리고 싶었지만, 돌아보면 모두 나의 '포트폴리오'였다. 아픔과 실패의 포트폴리오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건너뛰고 싶었던 모든 페이지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인생은 때때로 돌아보고 나서야 의미가 생긴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은 단 한 장도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앞으로 마주하게 될 힘겨운 순간들도, 결국엔 나를 성장시키는 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 다짐은 시상식장 조명 아래서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빛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공모전 #시상식 #수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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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중파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광고홍보 프로덕션 운영. (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 2025 국민이 함께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대상 수상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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