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엔 혼밥 좌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마이뉴스
퇴직자의 혼밥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구조가 만든 결과다. 사회는 아직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1인석, 셀프 주문 시스템이 늘어나며 혼밥을 배려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2인 이상 주문 가능', '혼자 오시는 손님은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여전하다. 회전율과 매출 중심의 식당 구조, 단체 손님을 기준으로 짜인 영업 논리가 겹치면서 가장 먼저 선택권이 줄어드는 손님이 누구냐를 떠올려 보면 답은 분명하다. 혼자 온 퇴직자, 또는 1인 가구 노인들이다.
관계의 문제도 크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은 일터 밖에서 관계를 새로 만드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회사 동료, 거래처, 후배가 곧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그 관계망이 사라지는 순간, 밥을 함께 먹을 사람 명단이 통째로 비워진다. "같이 점심 드실래요?"라는 한 마디가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 줄은 예전엔 몰랐다. 밥값보다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훨씬 더 아프다.
물론 혼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나에게 맞는 메뉴를 고르고, 내 속도로 먹는 건 퇴직 이후 얻은 자유다. 하지만 자유와 방치는 다르다. 혼밥이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도 나를 떠올리지 않는 시간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사회가 아무 장치도 마련하지 않으면, 혼밥은 서서히 고독의 예행연습이 되고 만다.
외로운 밥상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혼밥이 고립의 굴레가 되지 않게 하는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령 경로당이나 복지관이라면 자주 나오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이번 주에 같이 점심 드실래요?", "오늘 복지관 밥상에 초대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프로그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밥 한 끼를 함께하자는 짧은 메시지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초대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 식당도 문턱을 낮추는 결단이 필요하다. 메뉴판에 "전 메뉴 1인 주문 가능합니다", "혼자 오셔도 괜찮습니다"라는 문구를 넣는 것만으로도 사람 냄새 나는 우리 동네 식당이 될 수 있다.
퇴직 후에는 아무리 돈벌이가 중요해도 일만 챙겨선 안 된다. 누구와 어떤 밥자리를 만들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나 역시 강의를 마친 뒤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관계자들과 밥 한 끼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애쓴다. 그런 시간들이 퇴직 후의 나를 조용히 지탱해 주는 힘이 되니 말이다.
이제 퇴직자의 혼밥은 더 이상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시끄러운 회사 앞 식당이 아니라, 동네 어느 허름한 골목 식당에서, 나홀로 식탁 앞에 앉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밥상이 외로움의 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의 구조는 물론, 개인의 습관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고령화 시대, 혼자 먹는 밥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세상.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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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40년을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살아볼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듣고, 설명하고, 함께 고민해 온 이야기를 강의와 글로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비법보다, 같이 버틸 수 있는 ‘은퇴 살이 해법’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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