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고문 피해자 김병진 선생 "국가는 사과하라"

40여 년 만의 국가배상소송, 12월 19일 판결 예정

등록 2025.11.29 16:29수정 2025.11.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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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9일 오후 2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일교포 김병진은 자택 앞에서 갑자기 나타난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에게 강제로 연행됐다. 장남이 태어난 지 불과 4개월 만의 일이었다(관련 기사 : 매질·고문... 조국서 '간첩' 몰린 한 재일동포의 사연).

서빙고분실에서 몇 개월간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그는 보안사가 조작한 대로 '간첩'이 됐다. "고문을 당하는 내내 갓 태어난 아들과 아내의 얼굴이 머릿속을 번갈아 맴돌던 기억은 생생하다"고 그는 말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김병진은 국가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지난 11월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 그는 오는 12월 19일 판결을 앞두고 있다. 다음은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그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두 차례 진실규명, 이행은 없었다

 김병진 선생
김병진 선생 김병진

김병진은 2009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불법 연행, 가혹행위, 강제 근무뿐 아니라 일본 도피 후 보안사의 언론 탄압, 지명수배, 여권 발급 금지 등이 공식 확인됐다.

하지만 정부는 단 한 번도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1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을 때 정부가 당연히 피해자 구제에 나설 것이라 생각했다. 나와 가족의 과거사 청산은 이것으로 끝났다고 여겼는데, 현실 앞에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실감했다."

2004년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는 증거 부족과 공소시효 완료를 이유로 패소했다. 일본에서 숨어 지내는 처지였던 그는 고문 증거를 확보할 수도, 제때 고소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인권 유린을 호소해도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일 뿐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결국 피해자들은 어디에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앞이 캄캄했다."


1기와 2기 진화위 사이 10여 년의 공백기는 그에게 "더 없는 암흑기"였다. 과거사 청산이 정치 구도에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족에게까지 뻗친 보안사의 마수


국가폭력은 김병진 개인에게 그치지 않았다. 보안사는 민단 지부 사무실에 그의 가족사진을 돌려 아버지를 협박했다. "그들의 손이 아버지 댁까지 미칠까 두려워, 나와 내 가족은 아버지 집을 떠나 여기저기 헤매야 했다."

일본에서도 보안사의 감시와 협박이 계속됐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김병진은 보안사 간첩'이라는 터무니없는 허위가 유포됐고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한편에서는 보안사로부터의 감시와 협박, 다른 한편에서는 보안사의 간첩이라는 협박. 말 그대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1995년부터 5년 넘게 지속된 여권 발급 금지 조치도 그의 삶을 옥죄었다. 군기법 위반으로 지명수배된 상태에서 여권까지 제한된 것은 "재판도 받지 말고 일본에 가만히 묶여 있으라는 뜻"이었다.

"지명수배 된 처지에서는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고 어딜 가나 남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에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부모의 트라우마는 자식들에게도 대물림됐다. "제일 괴로웠던 것은 보안사의 마수가 자식들에게까지 미칠까 봐 유괴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는 점이다."

일본 시민들이 준 희망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1995년 지역 생협과 인연을 맺어 부부가 한글 강좌 강사를 맡게 된 것이 전환점이었다.

"한국을 이해하려는 일본 시민들과 한글 강좌를 통해 교류하면서 닫혀 있던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5년 후 한글 강좌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이 서명을 모아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했고, 이것이 여권 발급 금지 해제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한국과 일본 생협 간의 교류도 시작됐다.

"나는 나의 반일 감정과는 별개로, 시민들 간 또는 한일 시민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내년 1월에는 한글 강좌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보안사 사령관이 직접 사과하라"

김병진은 이번 판결 이후 국가가 권고사항을 완전히 이행한다면 무엇보다 사과를 원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사과는 물론이고, 가해 당사자, 즉 내 경우 보안사(현 방첩사) 사령관이 직접, 우리 가족에게 대면으로 직접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같은 피해자들을 향해서는 "피해자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가지라는 식의 상투적인 언어로 독려하기보다는, 가해 책임자가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이는 결자해지해야 하는 문제다."

젊은 세대를 향해서는 이렇게 당부했다.

"지금은 물론 군사독재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1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짓밟히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짓밟혔다는 것은 곧 인간의 존엄이 짓밟혔다는 것이다. 과거사는 결코 과거사가 아닌 현대사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 결과를 무기로 또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40년 세월을 견뎌온 원동력은 자신의 저서 <보안사>가 많은 피해자들에게 법정 증거로 활용됐다는 자부심이었다.

"국가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나에게 남은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뿐이었다. 비굴하지 말자. 나는 홀로 보안사와 싸워왔고, 내 저서가 많은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증거라는 무기로 삼아 싸우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만으로 40년 세월을 견뎌왔다."

 보안사 책표지
보안사 책표지 이매진

보안사 - 어느 조작 간첩의 보안사 근무기

김병진 (지은이),
이매진, 2013


#보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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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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