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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의 한이 두견새가 된 산하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남한강을 따라서 영월

등록 2025.11.30 16:27수정 2025.11.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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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은 단종의 비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을이다. 인간적인 비극은 어머니 현덕왕후가 출산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난 데서 비롯했고, 왕으로서의 비극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은 데서 시작되었다. 1452년 5월, 겨우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은 이듬해 10월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빼앗긴다. 1455년 6월 상왕으로 물러날 때만 해도 영월은 단종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이었으나, 그의 운명과 함께 영월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1456년 사육신의 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처음에는 단종을 감싸던 세조도 그를 끝내 '노산군'으로 강등해 영월로 유배시켰다. 이듬해 순흥(영주)에서 금성대군의 복위 운동이 다시 실패하자, 단종은 1457년 10월 28일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시신은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거두어 지금의 장릉이 자리한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세조는 왜 영월을 유배지로 선택했을까. 정선에서 영월로 넘어오면 산세가 고르며 평지가 넓다. 당시에는 군(郡)이었지만, 단종 사후 약 150년 뒤인 1699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영월군은 당시에도 일정 규모와 감시 능력을 갖춘 고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 외지면서도 통제가 가능한 장소였던 셈이다.

단종은 살아서 열세 달, 죽어서는 '두견새'의 영혼이 되어 6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영월에 머물렀다. 두견새, 곧 '자귀(子規)'는 귀촉도(歸蜀道)라고도 불리며 한과 비애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문학에 등장했다. 고려 말 이조년은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만은"이라 노래했지만, 단종이 읊었을 자규의 마음은 봄밤 배꽃 향기와는 다른, 피 맺힌 슬픔이었을 것이다.

관풍헌의 자규루(子規樓)는 단종을 두견새에 비유해 붙인 이름이다. 영월에서의 넉 달 생활 동안 그는 매죽루에 올라 시를 짓고 마음을 달랬다고 전하며, 후대는 이를 기려 누각을 자규루라 불렀다.

장릉 오른편 언덕의 '배견정(拜鵑亭)' 역시 단종의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는 전설과 닿아 있다. 이는 중국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죽어 두견새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닮아 있으며, '배견'은 곧 '두견새에게 절한다'라는 뜻이다. 현지 관리인은 "두견새가 장릉을 향해 절했다"라는 전승을 들려주었다.

영월 한반도 지형과 선돌 단종(노산군)이 귀양 가던 길에 있는 한반도 지형과 선돌
▲영월 한반도 지형과 선돌 단종(노산군)이 귀양 가던 길에 있는 한반도 지형과 선돌 이병록

뱃마을에서 한반도 지형까지 이어지는 2.5킬로미터 길가에는 '단종이 귀양 오던 길'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당시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군졸 50명을 거느리고 단종을 호송했으며, 원주와 주천을 거쳐 청령포에 이르렀다고 한다. 원주에서 청령포까지 약 20킬로미터 거리이니 하루 꼬박 걸었을 것이다. 청령포와 5킬로미터 거리에는 단종이 돌을 보고, 모습이 신선 같다고 하여 '선돌'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그렇다면 선돌은 선돌(입석立石)이 아니라 선돌(선암仙巖)이다.


청령포는 지금은 강폭이 좁아졌지만, 당시에는 삼면이 깊은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절벽이 막아선, 사실상 섬이었다. 단종의 한을 들었다는 관음송, 한양을 그리며 돌을 쌓았다는 망향탑이 서 있다. 담장을 넘으려는 소나무 한 그루는 그 세월을 말없이 증언한다. 주민 말에 따르면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청령포 건물은 초가였으나, 복원 과정에서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유배된 노산군에게 기와집을 지어 주었을 마음도 시간도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초가였던 건물이 복원 과정에서 기와집으로 바뀐 것은, 유배지의 실상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긴다. 청령포 소나무 숲이 잘 보존된 것은, 그의 죽음 269년 뒤 영월부사 윤항래가 금표비를 세워 벌목을 금한 덕분이다.

단종의 시신은 처음 동강에 버려졌으나, 엄흥도가 이를 거두어 암장했다. 그는 지게에 시신을 지고 눈 덮인 산길을 올라가던 중, 눈이 녹은 노루의 자리를 만나 쉬었다가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지게가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에 단종을 묻었다고 한다. 장릉 입구의 노루 공원은 이 전설을 기린 것이다.


그 외에도 군위 현감 정사종은 단종의 장례를 돕고 청령포 물에 몸을 던졌으며, 이조참의 이종이 염습을 맡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금강정에서는 시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전승도 이어진다.

정령송 1999년 남양주 정순왕후 사릉에 있는 소나무와 장릉 소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바꿔서 심었다.
▲정령송 1999년 남양주 정순왕후 사릉에 있는 소나무와 장릉 소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바꿔서 심었다. 이병록

능 앞 소나무 '정령송(精靈松)'은 1999년 남양주 사릉의 소나무와 바꿔 심은 것이다. 단종 부인 정순왕후가 생전에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상상일 수 있으나, 두 나무의 교환에는 '죽어서라도 한마음이 되길 바라는' 후손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창절사(서원)는 숙종 11년(1685) 육신사를 세운 데서 비롯되었다. 왕릉 옆에 신하의 위패를 모실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이 일어, 숙종 31년(1705)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늘의 규모를 갖추었다. 생육신 김시습·남효온·박심문 등 모두 열 명의 위패가 배향되며, 매년 한글날 대제가 열린다.

1973년 세워진 박충원의 낙촌비각은 장릉 오른편 계단 아래에 있다. 중종 36년(1541) 영월군수로 부임한 그는 단종의 묘를 정비하고 제문을 올렸는데, 『선조수정실록』에는 "그가 제사를 지낸 뒤 영월 관리들에게 일어나던 괴이한 죽음이 사라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월의 산과 나무, 고개에도 단종의 흔적이 배어 있다. 산솔면 솔고개의 360년 된 소나무는 단종의 혼이 태백산으로 향할 때 산신이 된 단종을 배웅하듯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군등치는 "무슨 고개인데 이다지도 험한가?"라고 물으니, 수행하던 사람이 "노산군께서 오르시니 군등치라 아옵지요"라고 대답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단종이 해 지는 서산을 보고 절했다는 '배일치'도 있다.

영월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김삿갓면·한반도면·무릉도원면·산솔면 등 개성 있는 면 이름을 갖고 있다. 강 이름은 윗물에서 내려오는 다른 지역 이름을, 영월을 중심으로 한 동강과 서강으로 슬쩍 바꿔서 부르고 있다. 하송리의 1,100년 된 은행나무는 둘레가 15미터나 되어, 내가 보았던 어떤 은행나무보다 훨씬 웅장했다.

하송리 은행나무와 삿갓식당 영월 읍내에 있는 1,100년 된 하송리 은행나무는 둘레가 15미터나 된다. 시골 삿갓 식당의 올챙이 국수
▲하송리 은행나무와 삿갓식당 영월 읍내에 있는 1,100년 된 하송리 은행나무는 둘레가 15미터나 된다. 시골 삿갓 식당의 올챙이 국수 이병록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서울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월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던 단종의 마음 한 조각을 조금은 이해하면서 강릉, 평창, 정선을 거친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덧붙이는 글 여행의 끝은 삿갓 식당이었다. 올챙이국수를 주문했다가 취소하고, 메밀전병과 부침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지만 외국인 종업원은 국수를 제일 먼저 내왔다. 물리지 않고 다 먹었고, 포장해 온 메밀전병은 집에 가져와 아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영월 #단종 #청령포 #자규루 #엄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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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전)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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