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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몽골의 신'이 된 한국인... 그가 그리는 큰 그림

[1막보다 화려한 2막] 이재복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부총장의 도전과 꿈

등록 2025.12.06 11:16수정 2025.12.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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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복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부총장
이재복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부총장 이민선

"우리의 옛 시골 정취를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이재복(64, 문학박사)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아래 후레대) 부총장이 몽골에 빠져든 이유다. 이 말을 들으며 내심 깜짝 놀랐다. 나와 같아서다. 나 역시 몽골을 두 차례 여행하며 지금은 고향에 가도 느낄 수 없는 어린 시절 농촌 분위기를 느꼈고, 그러면서 몽골에 대한 호감이 깊어졌다.


그는 단국대학교 조교로 재직하다 배재대학교에서 한국어교육원 교수와 홍보과장, 비서실장, 총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을 2년 남겨 둔 지난 2021년 명예 퇴직한 뒤 몽골 후레대 교수로 부임했다. 인생 2막을 한국이 아닌 몽골에서 연 것이다.

이 부총장의 몽골 사랑은 최근 펴낸 책 제목 <헤르테슈 몽골>(사랑해요 몽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책 에필로그에 "몽골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헤르테슈 몽골'을 책 제목으로 정했다"고 고백하듯 남겼다.

그는 또한 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몽골에 왔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행복했으며, 대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때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썼다. 이것이 인생 2막을 몽골에서 연 이유였다. 하지만 몇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몽골에서 인생 2막을 연 이유가 단순히 '사명감'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는 몽골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와 애정, 또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수강신청도 부모가...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았어요"

지난 11월 25일 오후 볕이 잘 드는 대전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미소 띤 얼굴과 친절함이 느껴지는 말투, 어떤 질문을 하든 척척 답해 줄 것 같은 수더분함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대학에서 34년을 근무하면서 한국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특히 자립심이 문제인데, 요즘 한국 대학 신입생 중에는 자기 스스로 수강 신청을 안 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부모가 해 주는 거죠. 취업 상담도 부모가 하는 경우가 많고요. 학점이 떨어져도 '어떤 기준에 따라 이런 학점이 나왔느냐'고 부모가 항의하고요.

이러면 학생은 바보가 되는 거예요. 이런 모습 보면 화도 나고,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정년 2년 남기고 명예 퇴직을 한 것이고,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2막을 펼쳐보자, 이런 맘을 먹게 된 거죠."


그는 스무 살을 넘긴 뒤 매년 여섯 차례 정도 외국을 여행했다. 수중에 돈이 없을 때는 대출을 받아서 가기도 했다. 몽골에서 자리 잡기 전 이미 바깥 바람을 많이 쐰 것인데, 유목민 기질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스무 살부터 시작한 외국 여행이 몽골살이의 바탕이 되었다.

"여행하기 위해 많은 돈을 썼어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수많은 이질적인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세계관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어딜 가든 인간사 희로애락은 비슷하거든요. 그러면서 보람 있는 삶은 어디에든 있다는 인생관을 얻었고요. 또 세계 곳곳에 지인을 만들 수 있었고 그들과 유대 관계도 계속하고 있으니 정말 남는 장사를 한 셈이죠."

이렇듯 타고난 유목민 기질 등이 그가 몽골살이를 선택한 배경이라면, 궁극의 목적 중 한 가지는 '글'이다. 자유롭게 살면서 글을 쓰고 싶었고, 새로운 일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어 몽골을 선택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미 책 <헤르테슈 몽골>(2025년 5월)을 출판했으니 한 가지 꿈은 이룬 셈이다.

7년 준비 끝에 실행한 몽골살이

 2025년 6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헤르테슈 몽골' 출판기념회
2025년 6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헤르테슈 몽골' 출판기념회 이재복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사는 유목민 기질을 타고난 그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녀올게'하고 몽골로 훌쩍 떠난 것은 아니다. 7년이란 준비 기간이 있었다.

그가 처음 계획한 인생 2막 목적지는 몽골이 아니었다. 중국, 일본 등 많은 곳을 물색했다. 어디를 가든 꼭 필요한 게 언어라는 생각에 7년 동안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했다. 저축도 했다. 중국과 일본, 몽골에 있는 대학 중 몸담고 일할 곳이 있나 물색하기도 했다. 기본적인 교과 과정과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중 몽골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정순훈 전 배재대학교 총장(현 후레대 총장)이 손을 내밀어 몽골 후레대를 선택하게 됐다. 정 총장은 그가 비서실장 시절에 함께한 인연이다.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가족들의 동의. 특히 아내의 동의가 중요했지만 그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모두 외국에서 공부한 덕에 집안 분위기 자체가 외국에 나가 일하는 것에 대한 낯섦이 없었다. 그의 아내는 "당신도 한번 외국 나가서 강의해 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몽골에 자리를 잡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날씨였다 엄청난 추위를 견디면서 그가 몽골살이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다운 몽골 호수, 참으로 기특한 몽골 학생, 정 많은 몽골 사람... 몽골 자랑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돌아오지 않고 아예 눌러 살 기세였다. 몽골의 무엇이 그를 홀린 것일까.

"제 별명이 '몽골의 신(몽골어로 보르항)'입니다. 현재 학교 일 외에 장학 사업과 환경사업, 의료 사업 같은 복지에도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덕에 몽골 도지사, 군수 등에게 훈장을 3개나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얻게 된 별명이 보르항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으면 SNS를 통해 '신께서 어디 계시냐'고, '빨리 오시라'고 몽골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와요. 이럴 때 참 기쁘죠. 내가 몽골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는 의미잖아요."

듣고 보니, 그가 몽골살이를 계속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그곳에서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며 할 일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는 부총장으로 학교 일을 하면서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을 독지가와 연결해주는 장학 사업을 하고 있다. 또 몽골 북쪽 홉스골 주민들에게 재봉틀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이는 일종의 환경 사업이다. 재봉틀로 에코백을 만들어 비닐 사용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몽골 오지에 사는 주민과 울란바토르 같은 도시에 있는 의사를 맺어 주는 일도 하고 있다. 그가 '보르항'이라 불리는 이유다.

현재 그는 '양 천 마리'라는 새로운 장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양 천 마리를 확보·사육해 그 수익금으로 매년 장학금을 주는 사업이다. 현재 400마리 정도를 모았다고 한다.

그의 큰 그림 "몽골에 대학 설립하고 싶어요"

 2023년 8월 29일 입학식 후 공연 기념 사진
2023년 8월 29일 입학식 후 공연 기념 사진 이재복

이 부총장은 새로운 교육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꽤 큰 그림이다.

"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몽골에 대학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질 좋은 무료 수업을 해 주는 학교를 꿈꾸고 있어요. 현재 몽골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게 한국어와 영어, 컴퓨터입니다. 이것만 습득한다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몽골 아이들은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자립심이 무척 강하거든요. 영특하고요. 그래서 요즘 대학을 세울 만한 자리(건물 등)를 보러 다닙니다."

교육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몽골 교육과 학생들의 특징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몽골 학생들의 자립심을 꼽았다.

"한국은 대학 4년 동안 부모님한테 등록금은 물론이고 용돈까지 타 쓰는 경우가 많은데, 몽골 학생들은 대부분 안 그래요.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학비를 포함해 일체를 자기들이 마련해야 해요. 결혼도 알아서 해야 하고요. 그게 몽골 문화예요. 좀 의식이 있는 학생은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단점이 수업 중 조는 학생이 많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이런 사정을 모르고 야단을 막 쳤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조기 교육도 잘 돼 있어서 초등학교 2~3학년만 되면 그 애들은 직접 밥을 해 먹어요. 그게 우리 아이들과 다른 점이죠."

이 부총장은 선생님 권위가 높은 사회적인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를 1학년 담임이 5년 간 바뀌지 않고 아이를 지도하는 제도 덕분이라 설명했다.

"권위가 존중되는 사회이다 보니 우선 교육 효과가 높다는 장점이 있고요. 선생님 한 분과 오랜 연을 맺다 보니 사극에 나오는 '스승과 제자' 같은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몽골 학제는 우리와 달리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구분하지 않는다. 입학해서 만난 1학년 담임이 5년 간 계속 담임을 맡는다.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6학년 담임이 이후 4년 간 담임을 하고, 그다음 3년도 담임 선생이 바뀌지 않는다.

또 다른 특징은 1인 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낮은 4615달러(2024년 기준)인데도, 대학을 가기 전까지 모두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대학에 가면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경우 국가가 대신 부담한다. 이 부총장은 "우리에 비해 무상 교육에 대한 신념이 무척 강한 편"이라면서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역사적 배경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몽골은 1924년부터 1992년까지 사회주의 국가(몽골인민공화국)였다.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립된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지금은 다당제인 민주 공화국이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이게 행복 아닌가요"

 2025년 5월 몽골 테를지국립공원에서
2025년 5월 몽골 테를지국립공원에서 이재복

이 부총장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상당한 강도의 비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애정 어린 충고였다.

"수강 신청을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것은 단적인 예이고요. 또 요즘 학생들 예의가 없다 그러는데, 전 학생들 탓하고 싶지 않아요. 한국 학생들 정말 똑똑하고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다만 학생 인권에 대한 적응이 좀 덜 된 것 같아요. 체벌금지 이런 거 선진국에서는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이잖아요. 우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요. 스스로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격려도 해 줘야 합니다. 수강 신청 같은 것도 스스로 잘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하고요(웃음). 그러면 충분히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부총장은 한국에서의 인생 1막과 몽골에서의 2막을 이렇게 비교 평가했다.

"인생 1막에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는 구속된 삶이었다고 봐야죠. 가정을 이루고 가꿔야 했고 자식들 교육도 책임져야 했으며, 또 삶에 대한 경험도 적었으니까요. 지금은 제 농축된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전에 비해 자유로운 몸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있으니, 행복하죠. 이런 게 행복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몽골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그와의 짧은 만남을 마쳤다.
#이재복 #몽골후레대 #인생2막 #몽골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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