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언어와 설득의 언어, 그리고 이퀄리브리엄

등록 2025.12.01 17:49수정 2025.12.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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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언어와 설득의 언어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조지은 교수팀이 영국과 한국의 탈북민 100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남북한의 언어 차이를 분석하여 옥스포드 대학교 홈페이지에 '남북한 언어비교사전'을 등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북한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진의 설문조사와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북한 사회에서는 '사랑한다', '좋아한다', '기쁘다', '행복하다' 등의 말과 같이 개인의 내밀한 감정을 공감하고 표현하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현저히 낮거나 그 의미가 변질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단순한 남북한의 어휘력의 차이가 아니다. 북한의 이러한 언어구조는 북한이라는 체제가 유지되는 구조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김부자'가 통치하는 북한은 체제 생존을 위해 상시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혁명을 해야만 하는 영구 혁명의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 혁명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의 적(미제국주의)을 상정하여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내부적으로는 투쟁과 혁명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구조는 언어의 화법을 결정짓는다. 북한의 언어는 '혁명의 언어'다. 전시 상황이나 혁명 과업 수행 중에는 모호함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단정적이며 투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남북한 언어 차이를 다르게 보는 관점도 있다. 실제로 북한도 지역마다 억양이 다르다. 문화어(표준어)인 평양말은 서울말 만큼이나 부드럽다. 그럼에도 국가나 사회의 언어는 그 사회의 구조적인 특징이 언어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의 언어는 '설득의 언어'다. 신용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공감의 언어와 부드럽게 에두르는 간접 화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언어가 사회주의 언어보다 더 부드럽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남북한 비교를 통해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북향민들이 남한 사회에 처음 정착하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소통의 단절'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남한에 외래어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만이 아니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며 겪는 소통의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상에서 외국어만큼 많이 쓰는 외래어가 북향민들의 언어 소통에 직접적인 어려움을 준다. 그래서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전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는 외래어 책자로 단어부터 외운다.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화법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다. 직설화법에 익숙한 북향민에게 남한 사람들의 부드럽고 우회적인 말투는 낯설고, 반대로 남한 사람들에게 북향민의 직설적인 말투는 공격적이거나 무례하게 비치기도 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혁명적 과업을 완수해야 했던 북한 사회의 일상의 투쟁과 혁명적 언어 습관이,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설득해야 하는 남한의 언어 문화와 충돌하는 것이다. 북한 언어가 존중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질적인 체제의 언어의 속성이 다르다는 말이다.


북에서 온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밥도 혁명적으로 먹고, 잠도 혁명적으로 자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일상이 곧 혁명인 곳에서 왔다. 혁명 중에 있는 북한에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사적 감정'의 언어가 설 자리는 없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언어 결정론적 관점에서 볼 때, 혁명의 언어만을 주입받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감정이 억제된 '이퀄리브리엄'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가 유년 시절 겪었던, 그 끔찍한 공개처형 앞에서의 무덤덤함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언어적 기제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퀄리브리엄, 통제된 사회의 조작된 감정

"타탕! 타탕! 타탕!"

세 번의 총성이 울렸다. 발사된 총탄은 총 아홉 발. '목표물'이 매달린 말뚝 5미터 앞에 군인 세 명이 차렷 자세로 섰다. 그리고 "쏴!" 사격 신호와 함께 동시에 목표물의 무릎과 가슴,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나는 겨우 일곱 살, 소학교 1학년이었다.

광대가 춤추는 구경 거리를 관람하듯 수백 명이 모인 현장에서 우리는 키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목표물의 맨 앞에 서서 '직관'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에 동원된 행사였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앞자리에서 관람한 '공개 처형' 장면이었다.

공개 처형은 죄수의 죄명을 소상하게 읊어대는 순서와 함께 당과 수령의 교시를 하달하는 연설로 시작됐다. 죄명은 수령님 교시가 적힌 비석에 박혀있는 김일성 초상화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정확히는 초상화 테두리에 장식된 구리로 만든 월계수 장식을 뜯어서 팔아먹은 죄였다. 그리고 행해진 처형과 시체 정리까지 불과 1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군인들은 곧바로 준비해 둔 가마니로 시체를 둘둘 말아 트럭에 싣고 떠났다.

현장에 그대로 박혀있는 말뚝에는 피가 튀겨있었고 바닥의 흙은 어느새 흥건한 피로 젖어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말뚝 가까이로 우르르 몰려가 핏자국을 보며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혀끝을 찼다. 그러고는 이내 별일 없었다는 듯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 집으로 향했다. 나도 1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책가방과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급하게 밥을 삼킨 후 창문에 매달려 그 곳을 다시 내다보았다. 말뚝이 박힌 장소는 우리 집 창문에서도 멀리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날 나는 아무 감정도 동요도 없었다. 단지 기억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공개 처형 장면이다. 3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끔찍한 장면이다. 백번이고 죽어 마땅한 죄수라 할지언정 말뚝에 매단 채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개 처형을 하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서운 인민재판이었다. 마치 중세시대 마녀를 화형시키거나 단두대에 세워 공개 처형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런 어릴 적 경험이 트라우마(trauma)가 돼서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그 자체로 이미 잠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라 하겠다. 북에서 온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한 번씩은 공개 처형을 목격했다. 공개 처형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동원되는 것은 물론 다들 그 날짜 그 장소에 구경까지 가려고 했으니.

북한은 형법에 사형 제도를 두고 있으며 수시로 공개 처형을 집행하고 있다. 북한의 공개 처형은 인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키아벨리식의 공포 정치이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가장 효과적인 통치 방식을 '공포에 기초한 지배'라고 설명했다. 인민들을 쉽게 지배하는 데에는 공포가 최고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공포 정치를 매우 유용하게 통치론에 적용했다. 공개 처형은 이런 공포 정치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제하도록, 더 나아가 감정이 무뎌지도록 세뇌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공개 처형을 보고도 무감각했던 이유는 이런 조작된 감정 때문이었다.

빈번한 폭력은 우리 안의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폭력에 대한 감정을 무감각한 상태로, 억제된 상태로 적응시킨다. 받아들일 수 없는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욕망)을 조절하거나 왜곡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는 심리적 기제인 것이다.

이런 방어기제를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명분을 주는 사회적 기제는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부정적 의미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세뇌'이다. 공개 처형을 관람시키는 북한의 행태가 바로 부정적 의미에서의 교육, 즉 '세뇌 교육'이다. 공개 처형 장면을 직관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와서 밥 먹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혁명과업을 방해하는 자는 "죽어도 싸다"는 명분을 국가가 심어준다. 그리고 거기에 그 어떤 감정도 동요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교육에 익숙해진 전형적인 세뇌당한 아이였다. 어디 나뿐인가. 북한 사회 전체가 그렇다. 북한은 조작된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이퀄리브리엄>이 있다. 3차 대전 이후의 미래 세계 '리브리아'를 배경으로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박멸하는 것이 이 세계의 법과 의무다. 무장한 군인들이 사방에서 감시한다. 리브리아에서는 누구든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랑,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을 억제하는 약물 '프로지움'을 주기적으로 투약해야 한다.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즉 감정이 억제된 상태,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 평정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공개 처형을 보고도 감정의 기복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북한 사회는 아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뗄 때부터 세뇌 교육을 한다. 마치 리브리아의 프로지움 약물처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 사회가 '리브리아'처럼 감정이 완전히 억제된 사회라는 말은 아니다.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폭력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옥스퍼드대 조지은 교수팀의 연구와 나의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명확한 결론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사회는 물리적인 '공포'와 언어적인 '혁명'이라는 두 가지 기제를 통해 인민들을 완벽한 '이퀄리브리엄'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감정의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혁명의 언어가 채워지고, 공포에 무감각해진 자리에는 체제에 대한 맹목적 복종만이 남는다.

분단 80년을 내다보고 있다. 물리적 단절은 언어의 단절을 의미한다. 남과 북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언어 감정으로 각자 소통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 주민들이 불법으로 한류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상냥한 남쪽의 말투가 좋아서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심도 생긴다. 북에서 온 여성들은 투박한 말투의 북쪽 출신 남자보다 남한 남자를 연인으로, 배우자로 선호한다.

언어는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북한의 언어와 남한의 언어도 각자 사회의 발전상을 담고 있다. 소통 없이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같이 일할 수도 없고 미래도 만들 수 없다. 언어의 차이는 소통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남북한이 소통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이퀄리브리엄 #남북언어 #조경일 #공개처형 #남북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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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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