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2.01 16:40수정 2025.12.0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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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면 창밖으로 작은 주말 농장이 스쳐 지나간다. 비닐, 갈색 흙, 초록 줄기가 뒤섞인 그 공간을 향해 몸을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종일 일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굳이 또 다른 노동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지만 그런 풍경이 어느 날부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물기 빠진 흙을 일구는 사람들의 손동작을 보며 '나도 딱 저 만큼만이라도 길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젖소 삼십 마리가 넘는 목장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사시사철 논밭과 축사를 오가며 숨 쉴 틈 없이 일하던 분들이다. 어린 나는 그 모든 것이 단순한 생계 때문이라 생각했다. 먹여 살려야 하니까, 멈출 수 없으니까. 그 이상의 의미를 헤아릴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갓 마흔이 된 지금, 매일 같이 일만 하면서 '사는 게 이렇게까지 버거울 수 있구나' 깨닫게 되자, 부모의 노동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그건 생존만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하려는 방식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 주말농장을 하며 배운 것들.
markuswinkler on Unsplash
올해 나는 두 이랑의 주말 농장을 분양 받아 11월 말까지 농사를 지어봤다. 고구마와 배추를 심었다. 해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비가 오면 배수가 잘되는지 확인해야 했고, 뜨거운 날엔 흙이 말라버리지 않도록 주말마다 들러 물을 줘야 했다. 잡초는 단 며칠만 지나도 새로 올라왔고, 벌레가 생기지 않았는지 잎을 뒤집어가며 살폈다. 새들이 파 먹지 않도록 울타리를 재정비하기도 했다. 도시의 일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데, 땅 앞에 서 있으면 짐작보다 마음이 훨씬 잔잔해졌다. 아무리 엉켜 있던 생각도 흙을 만지는 동안엔 잠잠해지는 경험을 했다.
수확의 계절이 왔지만, 결과물은 초보 농사꾼의 손길을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배추는 속을 채우지 못한 채 홀쭉했고, 어떤 것은 벌레들이 난도질한 듯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고구마는 크기가 주먹만 했다. 품질로만 본다면 아마 누구에게도 내놓지 못할 작물들이었지만, 땅에서 막 캐 올린 그 때 만큼은 낯설도록 벅차는 감정이 일었다. '이 정도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쪽에서는 끝내 뿌듯함이 올라왔다. 내가 흙 앞에서 한 행동들이 아주 미세한 결실을 맺었음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위로였다.
이런 풍경은 동시에 부모의 삶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배추가 속을 차게 하는 일의 난이도조차 몰랐다. 고구마가 크기 하나 결정하는 데도 날씨, 토양, 잡초, 벌레, 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야 알았다. 나의 부모님은 이런 과정을 평생 반복해 온 사람들이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논 옆에 과일 묘목들을 심고, 봄이 오면 고랑을 더 반듯하게 매만지고, 여름이면 풀을 베어내며 "이게 다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선명해졌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땅은 정직했다. 정성 들인 만큼 돌려주고, 미룬 만큼 그대로 남겨뒀다. 도시에서의 일은 언제나 결과가 비례하지 않지만, 흙 앞에서는 책임과 결과가 조금 더 투명하게 연결되었다. 그래서인지 주말 농장은 내게 도피처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조정하는 장소'가 됐다. 서툴지만, 그래도 손을 대면 변하는 세계. 실패가 티 나게 드러나서 오히려 마음을 다잡게 하는 자리.
나는 아직 부족한 농사꾼이고, 아마 앞으로도 완벽한 수확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엄마가 그토록 논밭을 손에서 놓지 않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작은 땅에서 시작된 이 농사가, 나에게도 그런 의미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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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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