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 도입, 그냥 멋으로 하는 일이 아니려면

등록 2025.12.01 18:12수정 2025.12.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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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내걸린 법원기. 2025.4.24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내걸린 법원기. 2025.4.24 권우성

법률가들이 처벌받은 사례는 매우 희귀하다. 제2차세계대전후 독일에서 펼쳐진 미군의 법률가 소송,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처벌, 아르헨티나 강제실종 법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최근 증거 조작을 통해 유죄 판결을 유도하려 한 검사들의 비행이 드러남으로써 법조인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법왜곡 행위는 함무라비 법전에 판사의 재판 변조 범죄로 등장한다. 가까이는 독일의 법왜곡죄가 널리 주목받고 있다. 필자의 인식은 독일 형법학자 귄터 슈펜델의 독보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 독일 법원은 법왜곡죄로 나치 법조인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하급심 법원들이 유죄 판결을 선고하기도 하였으나 연방대법원은 이들을 한결같이 무죄로 방면하였다.

독일 법원이 장착한 무기는 '당시 유효한 법이 지금에 와서 불법이 될 수 없다'는 법물신주의적 면책론과 '자신의 확신에 따라 판단했다면 무리한 법적용도 무죄'라는 사이비 확신범 이론, 이 두 가지였다. 법물신주의는 나치법 대로 일을 처리한 소극적인 나치 판사에게, 사이비 확신범 이론은 나치법을 초과하는 광적인 나치 판사에게 면책 논거로 작동하였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군사법원판사 칼 작, 해직판사 한스 폰 도나니, 카나리스 제독 등은 군형법상 반역죄로 친위대의 즉결재판소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 8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1955년 아우구스부르크 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재판장 오토 토오벡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하여 4년 징역형을 선고하였는데, 1956년 연방대법원은 당시 법대로 한 행위를 지금의 기준으로 비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한스-요아힘 레제는 정치범 도살장인 인민재판소의 소장 롤란트 프라이슬러(<쇼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심판사였던 프라이슬러는 전쟁 말기에 폭격으로 이미 죽었다)의 배석판사로 최소한 231건의 사형판결에 서명하였다. 1967년 베를린 지방법원이 레제에게 3건의 살인방조와 4건의 살인미수방조로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였으나 연방대법원은 1968년 레제가 법관의 독립 아래서 자신의 확신에 따라 서명하였다면 살인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치 시대에 아리아인과 성관계를 맺은 유대인을 처벌하는 인종강상죄(人種綱常罪 Rassenschande)가 있었는데 이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6건 정도이다. 자유연애를 벌하는 인종강상죄 자체도 황당무계하지만, 이 죄의 법정형이 징역형이었으므로 사형선고는 애시당초 판사의 몫이 아니었다. 1943년 독일인 애인과 성관계를 가졌던 헝가리 국적의 유대인 엔지니어 홀랜더는 특별재판소에서 인종강상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이렇게 법을 적용한 광적인 판사가 제2차세계대전 후 카셀 지방법원에 기소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카셀 지방법원은 법정형이 징역형인 범죄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은 오판이지만 나치적 확신에 기해 그와 같이 판결했다면 법왜곡의 고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법률가들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확신이 범죄의 고의나 책임을 조각한다는 확신범 이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 확신은 경우에 따라 다소간 형을 감경해주는 사유가 될 뿐이라는 점. 이러한 기만적인 논리로 독일 법원은 나치 법조인을 위해 또 다시 법왜곡을 자행하였다.

진영 논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법왜곡죄 적용


한편 독일 법원은 통일 이후 1995년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구동독 판사들을 법왜곡죄로 처벌하였다. 그 사이에 1974년 범죄 요건에서 논란이 많았던 '고의로'라는 문구가 삭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유죄 판결은 삭제의 결과가 아니었다. 실제로 삭제하기 이전인 1960년 독일 법원은 소련 점령 지역인 마그데부르크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을 간첩죄와 보이코트 선동죄로 징역형을 선고한 후 서독으로 이주한 구동독 판사를 법왜곡죄로 처벌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당시 법원은 "형법 제336조(구형법상 법왜곡죄)의 책임 제한은 오로지 인적 및 물적으로 독립된 법관에게만 인정된다. ⋯ 온갖 외적 형식에 있어서만 법원 판결과 공통성을 지닐 뿐, 실제로 행정적 말살 처분에 지나지 않는 관헌적 조치에 협력하는 법관에게는 형법 제336조의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체제차별적인 시각을 견지하였다.

나치 법관은 독립된 법관으로서 특권을 향유해야 하지만, 동독 법관은 행정적 말살조치의 시행자이므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 법원은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진영 논리에 입각해서 법왜곡죄를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중적인 왜곡을 통해 법왜곡죄가 차별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법왜곡죄는 독일법조사의 확고한 추문이 되었다. 그후 법왜곡죄가 적용된 한두 건의 사족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법왜곡을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인식이 주된 관심사이다. 최근 국내에서 독일의 법왜곡죄를 벤치마킹하여 검사와 판사의 사법농단을 제어하자는 주장에서 법안도 발의되어 있다. 사법감시업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라면 개혁적인 정치인을 상대로 한 형사소송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계급재판, 대기업, 재벌기업 민사소송에서도 법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상징주의적 입법운동을 넘어서 사법적 권력남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남용의 본질을 투시해야 한다.

법왜곡죄를 도입해야만 법조인을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자칫 잘못하면 법률불소급 원칙 운운하면서 법조인들의 사법농단을 면책시키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우선 우려한다. 법왜곡죄가 없더라도 사법권력의 남용은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 법왜곡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도 야기한다. 어쨌든 처벌대상을 명시하는 장점이 있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나치시대부터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법왜곡죄가 존재했는데도 거의 기능부전상태였다는 사정을 직시해야 한다.

우선 법왜곡은 권력집단의 정치적 의지가 작동하는 영역이다. 서경식 선생이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 나오는 '캄비세스 왕의 재판'은 법왜곡으로 박피형을 당한 판사 시삼네스의 서늘한 일화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이 가능한 배경은 시삼네스 판사가 캄비세스 왕과 무관하게 혼자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그르쳤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왕과 판사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결탁한 정치적 재판이었다면 판사는 법왜곡죄로 처벌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왕의 정치적 의지에 부화뇌동했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최고권력자의 정치적 의지, 검사와 판사의 협잡에 의해 버무러진 정치적 재판에 대해서 관련자들을 처벌할 용자가 당대에 존재하겠는가? 검사의 권력남용을 기소할 검사가 없고, 악의적인 판결을 선고한 판사를 처벌할 판사가 없다는 사실이 권력남용의 배경이고 원인이다. 그래서 동일한 정치적·사회적 유착관계가 없는 제3자, 즉 연합국과 같은 점령군 또는 구체제를 원수 보는 듯한 새로운 유형의 법조인만이 정치적으로 부패한 법조인을 처벌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필자는 법왜곡죄의 도입이 민주당의 개혁적인 법률가들이 그냥 멋으로 해보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언이 존재한다. 자기 사건이란 자기와 이해관계가 동일한 사람들의 사건이라고 해석해야 법왜곡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공정한 제3자의 법정이 꾸려지지 않는다면 법왜곡죄는 장식품에 그친다. 법조인을 재판할 국제기구를 설치하든지, 법조인을 재판하는 특별법정 혹은 시민법정이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앞의 방식은 국제협약의 문제로서 너무나 먼 일이고, 후자의 길은 가능해 보인다.

개혁된 공수처, 검사, 판사가 이 일을 정직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기소 여부를 결정할 시민기소관 제도를 도입하고, 자동적으로 국민참여재판에 회부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차 형사재판을 배심재판으로 구조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반역죄에 대해서는 의회가 직접 재판하도록 하는 근거를 헌법에 두고 있다. 어떤 범죄들이 법조인들의 유착과 결탁으로 지속적으로 은폐·엄폐되는 현실에서 새로운 유형의 기소와 재판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는 오래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민주화 이후 공짜로 얻은 권력으로 바닥없이 추락한 영역을 시민사법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몇 해 전에 쓴 <법조인소송(일감법학, 2019)>의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원문 https://www.dbpia.co.kr/pdf/cpViewer?nodeId=NODE09404855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독일법왜곡죄 #법왜곡죄 #이재승 #인권연대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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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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