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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2.02 12:04수정 2025.12.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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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하얘진다'라는 의미를 절절히 깨달은 아침. 사람이 당황하면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쿠팡으로부터 개인정보 노출 사실을 전달 받은 지난달 30일 오전 9시만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통신사 해킹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우선 쿠팡 주문 내역과 은행 계좌를 살펴보니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카드 정보와 결제 정보 및 비밀번호는 노출이 없었다는 말을 온전히 믿고 싶었다. 주소 노출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렇다고 주소를 변경할 수도 없지 않은가. 쿠팡 계정을 완전히 해지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해지한다 해도 별다른 대체 방법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오후 들어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쿠팡 관련 글을 읽다 보니 점점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족 중 하나가 타인의 로그인 기록이 있다고 해 더더욱 두려움이 커졌다. 다행히 주문 내역은 없었다. 가족들도 놀라서 당장 비밀번호를 바꾸고 통관 번호도 바꾼다. 나도 관세청에 들어가 조회해보니 나는 아예 통관 번호가 없었다.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

▲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 1위 업체인 쿠팡에서 3천만건이 넘는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쿠팡은 현재까지 고객 계정 약 3천370만개가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월요일,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보는데 바탕 화면에 뜬 은행 알림에서 빠져나간 금액이 얼핏 보였다.
'설마, 설마?'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보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요즘 쿠팡에서 산 물건의 가격이 그 정도로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빠져나간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온몸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말로만 듣던 일을 드디어 나도 당하는구나. 수천만 원대 금액은 아니지만 나에겐 수십만 원도 거금인데 이를 어째야 하나.'
많지는 않지만 예금 잔액과 적금 계좌까지 곧이어 빠져나갈 것만 같아 정신없이 A카드사로 전화를 걸었다. 배고픔도 잊었다. 연결을 위해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나 같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카드사는 포기하고 이어서 A은행 고객센터로 걸어 보니 다행히 바로 연결되었다. 직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쿠팡 관련 일 같다고 설명하며 당장 계좌 정지를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먼저 카드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정지를 풀려면 은행에 직접 가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고 친절히 안내했지만, 마음이 급한 나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요구했고 성실한 직원은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나를 설득시켰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그분은 혹시 후불 교통카드에서 빠져나간 돈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아, 교통카드? 근데 10만 원이 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미국에 사는 동생이 잠시 귀국했을 때 그 카드를 사용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바삐 돌아다녔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내 이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카드사로 걸어 확인하니 교통카드가 맞았다. 50번 가까이 사용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쿠팡 주문 금액도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가장 중요한 해외 결제 금지 신청도 했다.
문득 이 카드가 아닌 B카드가 쿠팡 사용 시 주 카드라는 것이 떠올랐다. B카드가 한도 초과했을 때만 어쩔 수 없이 A카드를 사용했기에 다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B카드도 바로 연결되었다. 여기서도 이상징후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카드 역시 해외결제 금지 신청까지 마쳤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은 쿠팡과 통화하는 것이다. 이미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한시라도 빨리 끝맺음을 해야만 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견뎌야할까

▲ 쿠팡 로켓배송 차량
연합뉴스
쿠팡은 왠지 바로 받을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로 쉽게 연결되었다. 상담원의 목소리는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 상담원은 무슨 죄란 말인가. 주변에 쿠팡 탈퇴한 사람들이 많았다. 탈퇴가 아닌 비밀번호 찾기 문의를 하니 오히려 놀라는 반응이었다. 다시 한번 비밀번호나 카드 정보는 노출이 안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 계정과 주문내역 및 결제처리에 아무 이상없음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으니 완전 맥이 빠졌다. 비밀번호까지 변경하고 나니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해 서너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카드회사 두 군데와 은행 한 군데 그리고 쿠팡까지 통화한 날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군데 그것도 초긴장 상태로 전화를 돌린 적은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다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니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식탁에 내려놓고 한참을 아무것도 못한 채 죽은 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쳐서 바로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소시민들은 언제까지 이런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견뎌야 할까. 소액 거래라도 마음 놓고 할 수 있을까. 밥도 못 먹고 다른 일도 못하고 몇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을 한 건가 싶었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하며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한 건지, 아니면 그래도 유비무환이니 잘한 일인지 선뜻 가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누군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고마웠다.
'잘했어. 이런 경우는 과유불급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해. 돈이 걸린 문제야. 정당하게 돈 버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몇 만 원도 큰 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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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은 그저 소소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어요. 대부분 컴퓨터로 글을 쓰지만 메모는 노트에 하기에 늘 컴퓨터 책상 위에는 노트와 펜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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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개인정보 노출 통보 다음 날, 온몸을 떨리게 한 은행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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