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묻는 보드판. 대학생들은 기본소득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즐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답했다.
조성윤
공동체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 개개인에게 공동체와 미래를 꿈꿀 여유가 있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사회에서는 현재 자기 자신의 처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과실을 나누는 사회에서는 공동체와 미래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그런 사회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가 밟히지 않는지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내가 가진 모습이 죄가 되지 않는다. 이는 정기적이고 무조건적이며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현금, 즉 기본소득으로 만들 수 있다.
기본소득은 불안정을 해결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현금이기에, 창업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한 청년도 매달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는다. 당장 돈벌이가 없어도 매달 몇십만 원이 주어진다면, 경쟁에서 밀려도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밀리면 끝이다'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너와 나는 각자가 아니라 '우리'에게로 눈길을 줄 수 있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코르피와 팔메는 저소득층만을 골라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가 오히려 재분배 효과가 덜하다는 '재분배의 역설'을 주장했다. 가난한 사람만을 골라 지원하면 재분배 효과가 높을 것 같지만,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낮아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조세 저항의 문제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와 낙인의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개인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만든다.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의 미래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너와 나는 무관심 대신 관심을, 냉소 대신 연대를, 두려움 대신 존엄을 택하며 '우리'가 된다.
사회의 과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쳇바퀴 속에서 계속 달리고 있다. 너와 나는 기본소득이라는 표지판 앞,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숨을 헐떡이며 쳇바퀴 위를 달리는 개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과실을 나누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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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각자도생에서 각자도살로... 대학 캠퍼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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