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통을 기록할 수 있는가: 말레이시아 첫 섭식장애 유병률과 데이터의 정치학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학 ②] 말레이시아 정신건강 NPO '릴레이트'의 추아 숙닝

등록 2025.12.04 09:35수정 2025.1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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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W2026 특집]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섭식장애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미적 기준의 영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감정, 신체, 관계, 사회 구조, 의료 체계, 기술 환경이 서로 깊게 얽힌 정치적·물질적·제도적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논의는 오랫동안 개인 책임, 가족 문제, 혹은 의학적 진단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는 이러한 협소한 틀을 넘어, 세계 각지의 연구자·활동가·정책 전문가·당사자 연구자들이 경험과 지식으로 구축해온 더 넓은 정치적 지평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현장에서 일하지만 섭식장애를 이해하고 돌봄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법, 젠더, 노동, 디지털 기술, 불평등, 거버넌스, 당사자 경험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해 전하며, 한국의 독자 - 특히 당사자, 활동가, 정책 입안자, 연구자 - 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기획·글: 박지니 (작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활동가)[기자말]
귀국, 디아스포라, 이름 없는 고통

2013년 무렵, 캐나다 퀘벡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추아 숙닝(Chua Sook Ning)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캐나다에서 학부·석사·박사까지 자율성(Self-Determination Theory, SDT), 동기, 정치적 참여를 주제로 치열하게 연구해 온 젊은 학자에게, 귀국은 '금의환향'이 아니라 조용히 균열이 진행 중인 집으로 제 발로 다시 들어서는 경험에 가까웠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그는 곧 극심한 우울 상태에 빠졌다. 임상심리학자로서 누구보다 정확히 우울증의 진단 기준과 증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정작 자신이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징후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나중에 그는 테드토크(TED Talks)에서 고백한다.

감정은 끝없이 가라앉고, 자기비난은 멈출 줄을 몰랐지만, 그는 그 모두가 업무 스트레스나 귀국 후 적응 문제일 거라 뭉뚱그렸다. 가족이 걱정해도 아무 일 아니라고 넘어갔고, "나는 충분히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압박이 "이렇게 엄살부리고 있는 내 자신이 문제"라는 더 깊은 자기비난으로 이어졌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지역 보건의를 찾아가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의사는 "용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한 시간 동안 설교한 뒤 은행나무 추출제를 처방했다. 임상심리학자였지만 곧바로 반박할 의욕을 낼 수 없었다고 추아는 말한다.

"의사도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을까?"하는 절망이 밀려왔고, 그는 더욱 침묵 속으로 미끄러졌다. 이 경험은 말레이시아 일차의료 체계에서 우울증 환자의 30~50%가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그가 자신의 우울증을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문득 스스로 우울 자가척도를 풀어본 뒤였다. 회복까지는 6개월, 그 여파를 정리하는 데는 몇 년이 더 걸렸다. 그는 당시 전문적 도움을 구하지 못한 이유를 "기록으로 남을까 봐, 낙인 때문에, 사회적 위험이 두려워서"라고 고백했다.


그가 귀국 후 가장 먼저 직시한 것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정신건강(mental health)'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문제로 취급된다는 사실이었다. 의료자원 부족과 낙인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럼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 분위기였다. 추아는 회고했다.

"말레이시아에는 정신과 전문의가 다 해야 300명 남짓, 임상심리학자는 150명 정도였어요. 같은 시기 성인 인구의 10% 이상이 우울증 위험군으로 추정되었으니, 최소 수백만 명의 국민이 실제로 치료 접근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이런 수치들이 사회에 어떤 위기의식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내가 이 지역의 복잡한 구조를 어렴풋이, 우회적으로나머 접할 수 있었던 것은 20여 년 전, LiveJournal에서 알게 된 싱가포르 친구를 통해서였다. 일본 미니멀리즘 디자이너들을 좋아하던 그는, 내가 동남아시아 사회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던 때에 싱가포르에 대해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


"싱가포르는 도시가 하나뿐인 나라야."
"여기선 평생 눈 내리는 걸 볼 수 없어."
"나는 영어와 중국어를 둘 다 쓰지만 요즘 젊은 세대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에는 중국어를 못 하는 사람이 많아서 심란해."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굳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매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역시 단순히 "싱가포르 사람"으로만 자신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국가적 시민권보다 민족적·언어적 뿌리의 유지와 변화에 민감한 관심을 두고 있는 듯했다. 이 지역에서 정체성은 혈통이나 문화적 자긍심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 조건과 자원의 분배 구조 속에서 길러지는 촘촘한 감각임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에게 싱가포르는 때때로 자신들의 사회를 비추어보는 하나의 '거울 이미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같은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구조와 역사적 경로를 걸어온 두 사회는, 그만큼 다른 리듬과 긴장을 품고 있다. 그 차이를 감각하며 살아가는 경험은, 디아스포라에게 특유의 조심스러운 감각과 섬세한 정체성 조율을 요구한다.

지난 5월 말레이시아 '정신건강 인식주간'의 주제는 "커뮤니티"였다. "올해 말레이시아 '정신건강 인식주간(Mental Health Awareness Week)'의 주제는 '커뮤니티'입니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 작은 안부를 묻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 ―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한 사람의 마음을 지탱합니다. 이번 주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줄 수 있기를. 당신의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지난 5월 말레이시아 '정신건강 인식주간'의 주제는 "커뮤니티"였다. "올해 말레이시아 '정신건강 인식주간(Mental Health Awareness Week)'의 주제는 '커뮤니티'입니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 작은 안부를 묻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 ―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한 사람의 마음을 지탱합니다. 이번 주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줄 수 있기를. 당신의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Relate Malaysia

말레이시아의 사회 구조는 다층적이다. 다수인 말레이계(약 70%)가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경제에서는 중국계·인도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정신건강은 정책·의료·교육 그 어느 영역에서도 우선순위를 갖지 못한다.

추아의 작업은 말레이시아 화교 디아스포라라는 그의 위치성과 깊이 관련된다. 영국 식민통치는 중국·인도계 노동력을 도시 상업지와 플랜테이션 산업에, 말레이계는 농촌 행정과 토지 기반 경제에 배치하며 민족별 분업 구조를 의도적으로 고착화했다.

독립 이후에도 이 구조는 정치적 질서로 이어졌고, 1965년 싱가포르 분리 과정에서 누적된 갈등이 폭발하면서 민족 간 불신은 국가 체제의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계(Bumiputera) 우대정책(NEP)을 강화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는 역사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실제로는 공공대학 입학, 장학금, 공무원 채용과 승진 등 국가의 주요 제도 전반에서 새로운 형태의 배제와 조건부 시민권을 만들어냈다.

공립대학은 특히 이러한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입학 쿼터와 장학금 배정의 불균형으로 인해 많은 비(非)말레이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사립대학으로 진학했고, 심리학·임상심리학처럼 공공투자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분야는 사립대학 - 귀국 후 추아 숙닝이 잠시 적을 두기도 했던 헬프대학교(HELP University), 호주 모나쉬대학교 말레이시아 캠퍼스 등 - 이 주요 교육기관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의 임상심리학자는 절대 수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는 사립대학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심리학계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런 조건을 감안하면, 추아 숙닝이 고등교육을 모두 외국에서 받았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국내에서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수련할 경로가 제한적이고, 연구 기회 역시 비좁은 상황에서, 해외는 단지 '더 좋은 교육'을 위한 선택지가 아니라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모국의 제도적 제약은 그를 자연스럽게 해외로 이끌었고, 캐나다·싱가포르·미국으로 이어진 그의 학문적 경로 역시 이 구조적 제약 속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추아의 연구 동료 프레데릭 필리프(Frederick Philippe)와의 대화 2024년 5월, 릴레이트 말레이시아의 팟캐스트 'Being Human'에는 추아 숙닝의 긴밀한 연구 동료였던 퀘벡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UQAM)의 프레데릭 필리프 교수가 초대됐다. 두 사람은 기억이 어떻게 현실 인식과 정신건강을 형성하는지, SDT에서 말하는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기본적 심리욕구가 기억의 안정성과 정서적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등 SDT의 핵심 개념들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추아의 연구 동료 프레데릭 필리프(Frederick Philippe)와의 대화 2024년 5월, 릴레이트 말레이시아의 팟캐스트 'Being Human'에는 추아 숙닝의 긴밀한 연구 동료였던 퀘벡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UQAM)의 프레데릭 필리프 교수가 초대됐다. 두 사람은 기억이 어떻게 현실 인식과 정신건강을 형성하는지, SDT에서 말하는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기본적 심리욕구가 기억의 안정성과 정서적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등 SDT의 핵심 개념들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Relate Malaysia

슬픔 없이, 우리가 우리 삶을 결정할 수 있다면 SDT(자기결정성이론)의 정치심리학

심리학자로서 추아 숙닝의 학문적 기반에는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이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SDT는 주로 '내적 동기'나 '교육심리'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SDT는 오랫동안 학습자의 동기 형성, 교사의 자율성 지지, 자기조절 능력 등을 설명하는 데 널리 활용되어 왔다. 즉, SDT는 처음부터 이러한 질문들 - "왜 어떤 학생은 스스로 배우는가?", "교사는 어떤 방식으로 자율성을 지지해야 학습이 촉진되는가?" - 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추아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리처드 케스트너(Richard Koestner) 역시 이런 정통적인 SDT 계보에 깊게 뿌리를 둔 학자다. 케스트너가 이끄는 맥길대 'Human Motivation Lab'은 인간의 동기·정서·행동 변화의 기저에 있는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의 역할을 탐구해 왔다.

추아의 박사학위논문 역시 이 계보에 충실하다. 그의 논문을 이루는 세 가지 핵심 명제
▲정서 기능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환경의 자율성 지지 정도에 좌우된다
▲통제적 관계는 수치심과 억압을 낳는다
▲정서조절은 사회적 조건 없이 설명할 수 없다
는 케스트너 라인의 '정통 SDT 언어'다. 즉, 박사논문만 놓고 보면 추아는 철저히 임상·정서·동기 연구자였다.

그러나 추아의 연구가 독특해지는 지점은 바로 그다음이다. SDT 안에는 오래전부터 또 하나의 흐름이 존재해 왔다. 바로 SDT를 사회·정치 환경의 분석 언어로 확장해 온 계보다. 이 흐름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캐나다 퀘벡 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UQAM)의 프레데릭 필립(Frédérick Philippe, UQAM)이다. 필립은 SDT의 핵심 개념인 자율성·관계성·유능감을

▲ 시민이 제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 억압적 환경에서 어떤 정서가 강화되는가
▲ 구조적 불평등이 개인의 감정·판단·행동을 어떻게 조직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확장해 온 대표적인 정치심리학자다.

추아는 박사과정 동안 필립과 함께 여러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SDT의 이 '제3의 확장 축' — 정치적 구조가 개인의 정서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 에 깊게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연구가 2015년 프레데릭 필립과 공동 저술한 〈자율적 아버지는 체제 지지적 아이를 만든다>(Chua, S. N., & Philippe, F. L. (2015). Autonomy supportive fathers beget system-supporting children: The role of autonomy support on protesting behavior.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86, 348–353.)이다. 이 연구는 관계이론(Relational Model Theory)과 SDT를 결합해, 아버지의 자율성 지지가 아이의 '권위 해석' 능력과 정치적 행동을 결정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아버지가 공감적이고 자율성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수록, 아이는 이후에 올 권위(정부·제도·지도자)를 더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덜 반항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 연구는 말레이시아와 캐나다 양국에서 동일한 패턴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또 다른 공동연구인 〈부모의 자율성 지지와 정치적 참여〉(Chua, S.N. & Philippe, F. (2013, June). Autonomy support and political engagement. Paper presented at the 5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elf-determination Theory.)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여기서 필립과 추아는 "국가의 정치적 자유 수준"을 변수로 도입한다.
그 결과는 매우 명확했다.

정치적 자유가 높은 국가(캐나다)에서는
→ 부모의 자율성 지지가 환경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강화
→ 체제 유지적 정서·행동 증가

정치적 제약이 큰 국가(말레이시아·인도)에서는
→ 동일한 자율성 지지가 오히려 구조적 모순 감지 능력을 강화
→ 변화 요구·참여·저항 증가

즉, 자율성 지지는 그 나라의 정치 환경에 따라 체제 유지적일 수도, 체제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다.
추아가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그의 이후 행보를 보면 정확히 드러난다.

추아에게 자율성은 '성격적 자질'이 아니라 '정치가 배분하는 자원'이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사람들이 가진 침묵과 위축이 개인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자율성을 어떻게 허락하고 박탈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았다. 그가 만든 정신건강 NPO의 이름 '릴레이트(Relate)'도 SDT의 한 주축 개념인 '관계성(Relatedness)'에서 왔을 것이다. 고통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구조 속에서 다시 말해져야 한다는 철학을 담은 선택으로서 말이다.

2017년 말레이시아를 들끓게 한 #ImNotAshamed 캠페인 정신질환을 금기로 여겨온 사회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나는 부끄럽지 않다"고 선언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NHMS가 발표한 '성인 29.2% 정신건강 문제'라는 숫자가 정치적 부정과 조롱에 직면하던 바로 그 시점,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언어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공적 장면에 등장시켰다. 이 캠페인은 말레이시아에서 정신건강이 처음으로 개인의 실패가 아닌 사회적 현실로 발화된 사건이었고, 이후 Relate Malaysia와 Minda 같은 단체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새로운 지형을 열어준 균열의 순간이었다.
▲2017년 말레이시아를 들끓게 한 #ImNotAshamed 캠페인 정신질환을 금기로 여겨온 사회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나는 부끄럽지 않다"고 선언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NHMS가 발표한 '성인 29.2% 정신건강 문제'라는 숫자가 정치적 부정과 조롱에 직면하던 바로 그 시점,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언어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공적 장면에 등장시켰다. 이 캠페인은 말레이시아에서 정신건강이 처음으로 개인의 실패가 아닌 사회적 현실로 발화된 사건이었고, 이후 Relate Malaysia와 Minda 같은 단체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새로운 지형을 열어준 균열의 순간이었다. Relate Malaysia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고통을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나

추아 숙닝이 캐나다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말레이시아로 돌아왔을 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의료 인프라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의 정신건강 체계는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민족별 위계 구조, 독립 이후의 부미푸트라(Bumiputera) 우대정책, 공공의료·고등교육·전문직 배치 전반에 걸친 비대칭적 자원 배분, 그리고 종교·언어·법제도의 조합이 만들어낸 사회적 침묵의 구조 위에 서 있었다.

이 구조에서는 정신건강 관련 기본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되지 않았고, 진단 기준도 정책 체계에 정착하지 못했다. 심리학 교육은 사립대 중심으로 형성되어 비용 부담이 높았고, 그 결과 시민 다수의 접근성이 제한됐다.

공공병원의 응급 정신과 서비스와 자살 예방 체계는 국가 수준에서 부재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추아가 "정신건강이라는 말 자체가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회고한 것은 전혀 비유도 과장도 아니었다.

2015–2016년 보건부 국민건강이환조사(NHMS)는 말레이시아 정신건강 정책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점이었다. 조사 결과는 전국 성인의 29.2%, 즉 세 명 중 한 명꼴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수치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정책적 대응보다 정치적 반발을 먼저 촉발했다.

발표 며칠 뒤, 테렝가누 주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NHMS 결과를 곧바로 부정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스트레스가 어떻게 병입니까? 칼부림이라도 해야 'gila(미치광이)'라고 하는 거죠."

이 발언은 단순한 오해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질환을 '위험한 광기(gila)'로 좁게 규정해 온 오랜 사회적 관념, 자살과 정신질환을 종교적 금기 안에 묶어두는 해석 체계, 그리고 정신건강을 정책 의제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해 온 국가적 태도가 한 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추아 숙닝은 곧바로 이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했다. 릴레이트 말레이시아는 2015년 즈음에 비공식적으로 출범해, 이제 고작 네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인 현재의 잠수함토끼콜렉티브처럼 추아 1인을 중심으로 조용히 움직이다 2017년 한층 공식적인 NPO로 성장했는데, 2016년 10월 19일 추아가 작성한 반박문은 지금도 릴레이트 말레이시아 홈페이지(https://relate.com.my/)의 시사 게시판 맨 끝 페이지의 끝에서 두 번째 글로 남아있다.

추아 숙닝의 공개 반박문 (2016.10.19)
— NHMS 스캔들 직후, 테렝가누 주지사 발언에 대한 응답 전문
최근 테렝가누 주지사 아흐마드 라지프 압드 라흐만은 "테렝가누 주민 4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국민건강이환조사(National Health and Morbidity Survey, NHMS) 보고서를 부정했다. 그는 정신질환을 "광기(gila)"로 이해하며, 해당 통계는 단지 스트레스나 걱정과 같은 문제를 사람들이 얼마나 갖고 있느냐를 의미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정신질환을 "정신착란"과 동일시하며, 최근의 흉기난동 사건을 정신질환 사례의 예시로 제시하기도 했다.

주지사가 말한 것 중 한 가지는 사실이다: NHMS의 통계는 "정신착란"에 관한 통계가 아니다. 또 말레이시아인의 4분의 1이 "광기"에 빠진 것도 아니다. 정신질환은 "광기"를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상담학 석사학위를 보유한 주지사의 이번 발언은 정신질환에 대한 말레이시아 사회의 흔한 오해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신질환 진단이 질환의 중증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정신질환은 심리적 성질을 가진 질환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매우 심각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예: 우울감 때문에 한 달 동안 침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함, 환각·망상 경험). 반대로 증상이 비교적 가벼울 수도 있다(예: 주요우울삽화의 진단 기준을 충족하지만 경미한 정도).
이는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악성 종양처럼 매우 심각한 신체질환을 앓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단순 감기처럼 경미한 질환을 경험한다. 이 모든 신체질환은 질병 분류를 위한 국제 기준인 ICD-10(International Code of Diseases)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신질환이든 신체질환이든 '질환'은 질환이라는 사실이다.

정신질환 진단은 질환의 원인을 지시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사람은 학사경고를 받거나 가까운 사람을 잃는 등 부정적 삶의 사건 이후 우울삽화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정신질환은 사고 방식, 유전적 취약성, 가족환경 등 여러 요인과, 삶의 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정신질환은 부정적 사건을 계기로 발현된다.

정신질환 진단은 광기나 폭력적 행동 위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개인이 저지르는 폭력 범죄는 전체 폭력 범죄의 3–5%에 불과하다. 이 3–5% 가운데에서도 실제로 정신질환 증상 때문에 범행이 발생한 사례는 약 7%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질환 진단은 반드시 약물치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많은 정신질환이 심리치료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치료된다. 물론 일부 정신질환은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약물과 심리치료의 병행이 권장된다.

NHMS에서 "심각한 정신질환만을 평가하는 측정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지사의 지적은 사실이다. NHMS에서 이번에 정신건강 문제의 유병률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GHQ-12(General Health Questionnaire-12)이며, 이 도구는 구체적인 질환 유형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GHQ-12는 비정신병성(non-psychotic) 정신질환 스크리닝 도구로서 민감도가 70–8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GHQ-12 기준점을 넘는 응답자 중 70–80%는 실제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을 수 있다(Makowska et al., 2002; Reuter & Harter, 2001). 말레이시아 대학생 표본에서도 비슷한 민감도가 보고된 바 있다(Yusoff, Rahim & Yaacob, 2009).

GHQ-12는 일반 인구와 임상 인구 모두에서 널리 사용되는 도구이며, 정신건강의 전반적 수준을 측정하는 데 유효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검사의 하나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Hankins, 2008). 실제로 GHQ-12는 영국의 연례 건강조사(NHS Health Survey for England), 네덜란드 전국 일반의료조사(Hoeymans et al., 2004), WHO의 15개국 정신질환 비교연구(Goldberg et al., 1997)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주지사가 GHQ-12가 심각한 정신질환과 경증 정신질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적절하다. 이는 곧 말레이시아에 정신질환 유형별 유병률 데이터가 부재하며, 정부가 정신질환 유병률 연구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지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신건강 문제의 유병률은 1996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는 점이다. 1996년 10.6%였던 유병률은 2006년 11.2%, 그리고 2015년에는 29%까지 급증했다. 정신건강 문제의 증가 추세는 분명하며, 문제의 유형과 상관없이 말레이시아인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정신건강 악화를 부정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신화를 반복하는 것은 점점 더 많은 말레이시아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참고문헌]

Goldberg, D. P., Gater, R., Sartorius, N., Ustun, T., Piccinelli, M., Gureje, O., & Rutter, C. (1997). The validity of two versions of the GHQ in the WHO study of mental illness in general health care. Psychological medicine,27(01), 191-197.
Hankins, M. (2008). The factor structure of the twelve item General Health Questionnaire (GHQ-12): the result of negative phrasing?. Clinical Practice and Epidemiology in Mental Health, 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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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NHMS가 정신건강 문제의 규모를 국가 수준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면, 2017년은 그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본격 부상한 해였다. 그해 초, 말레이시아 주요 언론은 정신건강 관련 사건을 연이어 다뤘다.

12세 학생의 투신 시도, 건물 외벽에서 구조된 교사, 대학생들의 번아웃과 자살 시도, 자살 충동 환자를 돌려보낸 공공병원, 상당수 지역에서 사실상 부재한 응급 정신과 서비스 등이 보도됐다. 이러한 사건들은 정신건강 문제가 개별적 비극을 넘어, 대응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구조적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2017년 2월 추아 숙닝은 #ImNotAshamed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얼굴과 경험을 공개적으로 게시하며, 주변에서 실제로 들었던 말들 - "악령(jinn)에 씌었다", "게으르다", "코란을 읽어라" - 을 함께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일상 언어와 종교적 설명 속에 얼마나 깊게 스며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었다.

이 캠페인은 단순한 SNS 참여를 넘어, 정신건강 문제가 공적 공간에서 제기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익명성 뒤에서 혹은 사적 관계 속에서만 오가던 경험들이, 처음으로 이름과 얼굴을 드러낸 시민들의 발화로 등장한 것이다. NHMS 이후 열렸던 좁은 논의의 틈은, 이 캠페인을 통해 온라인이라는 경로를 따라 보다 넓은 사회적 토론의 장으로 확장되었다.

같은 해 7월, 말레이시아가 세계자살예방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uicide Prevention, IASP) 29차 총회를 개최하면서 또 다른 구조적 모순이 드러났다. 국제 학회가 열리는 국가였지만, 정작 말레이시아는 자살 관련 기본 통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자살 시도는 여전히 형법 309조에 따라 범죄로 규정돼 있었다. 세계적 논의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국내 제도는 국제 기준과 크게 어긋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정부는 '고통'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경제적 손실'에는 반응한다. 2018-2019년에 걸쳐, 추아 숙닝과 릴레이트 말레이시아 팀은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초로 정신건강 경제비용 분석에 착수했다. 분석 대상은 개인 단위로 참여한 직장인들. 밝혀진 것은, 말레이시아가 매년 정신건강 문제로 잃는 비용이 144억 6,000만 링깃, 한화로 약 4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수치는 결국 2023년 말레이시아 정부의 보건백서에 공식 인용된다.
▲정부는 '고통'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경제적 손실'에는 반응한다. 2018-2019년에 걸쳐, 추아 숙닝과 릴레이트 말레이시아 팀은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초로 정신건강 경제비용 분석에 착수했다. 분석 대상은 개인 단위로 참여한 직장인들. 밝혀진 것은, 말레이시아가 매년 정신건강 문제로 잃는 비용이 144억 6,000만 링깃, 한화로 약 4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수치는 결국 2023년 말레이시아 정부의 보건백서에 공식 인용된다. Relate Malaysia

2018–2019년: 정신건강 경제비용 분석 — 고통을 정책 언어로 번역하다

말레이시아로 돌아온 뒤, 추아 숙닝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정신건강 문제가 정책 영역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NHMS 조사 결과조차 정치적 반발로 흐지부지되고, 정신건강 관련 통계·예산·제도는 모두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질문은 하나로 수렴되었다. 정책을 움직이는 언어는 무엇일까?

정신질환은 개인의 문제로 간주되지만, 생산성 손실과 경제적 비용은 국가가 반드시 다루는 문제라는 점에서 단서를 찾았다. 이 판단은 "고통을 정책 언어로 번역하려면 어떤 지표가 필요한가"라는 새로운 연구적 방향으로 이어졌다.

▲ 우울증과 불안이 실제로 경제에 미치는 비용은 얼마인가?
▲ 결근(absenteeism), 프리젠티즘(presenteeism, 출근은 하지만 건강 문제로 생산성이 크게 저하되는 상태), 이직, 재교육, 의료비용 등 여러 요소를 모두 합치면 어떤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는가?
▲ 그리고 정신건강 인프라의 부재는 노동력 손실, 기업의 운영 비용 증가, 장기적 경제 성장률 둔화 같은 구조적 결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추아와 릴레이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 첫 전국 기반 직장인 정신건강 경제비용 분석에 착수한다. 그러나 연구의 추진 방식은 일반적인 국가 연구나 대학 연구와는 크게 달랐다.

정부 연구비는 없었고, 대학의 IRB 승인도 받지 않았으며, 기업의 공식적인 참여 역시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연구는 진행되었다. 추아는 기존의 제도적 경로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완전히 다른 조사 모델을 설계했다.

▲ 기업 '기관'이 아닌, 직장 내 현실을 알고 있는 '개인'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다.
▲ HR 부서와 공식 면담을 하는 대신, 개인 자격의 익명 응답으로 자료를 수집한다.
▲ 기업의 방어적 태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신건강"이 아닌 "경제적 손실" 언어로 접근한다.
▲ 학자나 언론기관이 아니라 NPO의 비권력적 위치를 활용해 진술의 문턱을 낮춘다.

말레이시아 기업 환경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조사가 일반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직접 목격해온 HR 담당자들은 비공식·개인적 형식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자료 축적은 말레이시아에서 이전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규모의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데이터가 정리되었을 때 나타난 결론은 단순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144억 6000만 링깃. 한화로 약 4조 원.
이는 말레이시아가 정신건강 문제로 매년 잃는 비용이며, GDP의 약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신질환이 "개인적 위기"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경제 손실이라는 점이 처음으로 수치화된 것이다.

2019년 8월, 릴레이트 말레이시아는 이 분석을 정리한 보고서 'The Business Case for Mental Health in Malaysia'를 발표한다. 발표 직후부터 논의의 무게가 달라졌다. 4조 원 규모의 손실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단순히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건강 문제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던 기존의 정치적 태도 역시 이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이 보고서의 수치는 2023년 말레이시아 보건백서에 공식 인용되며 정책 문서로 편입된다. 이는 말레이시아에서 정신건강이 처음으로 경제적 손실을 기반으로 한 정책 문제로 자리 잡은 순간이었다.

Stanford-Washington-Harvard 섭식장애 연구 네트워크 Stanford, Washington, Harvard는 미국에서 섭식장애 연구의 가장 중요한 세 축을 이룬다. 스탠퍼드는 임상현장과 신경과학 기반의 치료개발, 워싱턴대는 대학 단위의 대규모 스크리닝·중재 플랫폼 구축, 하버드 STRIPED는 정책·예방·규제 분야에서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 세 기관의 작업은 치료-조기개입-공중보건을 잇는 글로벌 지식 인프라를 구성하며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왔다. 추아 숙닝은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드문 글로벌 사우스 연구자로, STRIPED 방문연구자로 활동하며 말레이시아의 현실과 국제 연구·정책 담론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작업은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도 섭식장애를 '측정 가능하고 논의 가능한 문제'로 만드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Stanford-Washington-Harvard 섭식장애 연구 네트워크 Stanford, Washington, Harvard는 미국에서 섭식장애 연구의 가장 중요한 세 축을 이룬다. 스탠퍼드는 임상현장과 신경과학 기반의 치료개발, 워싱턴대는 대학 단위의 대규모 스크리닝·중재 플랫폼 구축, 하버드 STRIPED는 정책·예방·규제 분야에서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 세 기관의 작업은 치료-조기개입-공중보건을 잇는 글로벌 지식 인프라를 구성하며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왔다. 추아 숙닝은 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드문 글로벌 사우스 연구자로, STRIPED 방문연구자로 활동하며 말레이시아의 현실과 국제 연구·정책 담론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작업은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도 섭식장애를 '측정 가능하고 논의 가능한 문제'로 만드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Stanford, Harvard

섭식장애가 통계에 존재하지 않던 나라에서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자체적으로 섭식장애 역학 조사를 수행하기 위한 기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조사(NHMS)에는 섭식장애 항목이 없었고, 병원 진단코드는 공란에 가까웠으며,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시스템은 아예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이 조건에서는 병원 기반 역학 연구 자체가 구조적으로 성립할 수 없었다.

이 공백은 추아 숙닝을 자연스럽게 말레이시아 밖으로 이끌었다. 그는 연구의 최소 요건 -조사도구, 기술, 패널, 진단 알고리즘 - 을 확보할 수 있는 외부 생태계를 먼저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연결된 축은 세 가지였다.

▲ Washington–Stanford University Eating Disorders Public Health Group
SWED(Stanford-Washington University Eating Disorder)와 DSM-5 기반 알고리즘 진단체계를 개발해온 연구 그룹이다. 병원 기반 진단 데이터가 부족한 국가에서도 온라인 기반 스크리닝만으로 유병률을 추정할 수 있는 방법론을 구축해왔고, 추아는 이 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연구 설계의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다.

▲ 싱가포르의 대규모 온라인 패널 인프라
싱가포르는 94,000명 규모의 온라인 패널, 인종·성별·연령 기반 비례 할당표집, 엄격한 품질 관리가 결합된 안정적 조사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반이었다. 추아는 이 인프라를 활용해, 병원 진단 데이터 없이도 인구 수준에서 섭식장애 위험군을 계층별로 추정할 수 있는 초기 모델을 구축했다. 싱가포르에 섭식장애 연구를 위한 '주도 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같은 데이터 인프라 덕분에 아시아 지역에서 첫 온라인 기반 섭식장애 역학 모델이 현실화될 수 있었다.

▲ Harvard STRIPED(Strategic Training Initiative for the Prevention of Eating Disorders)
Harvard STRIPED는 섭식장애를 임상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법·정책의 차원에서 다루는 국제 기관이다. 추아는 STRIPED와의 협업을 통해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정책 및 법제 언어로 번역하는 프레임을 획득했고, 이후 유병률 연구·예방전략·정책 제안을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들은 역학 연구, 온라인 스크리닝 기술, 공중보건 정책, 법제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병원 기반 진단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섭식장애 환자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이 질문은 추아가 연구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말레이시아의 구조적 한계와 정확히 맞물렸다.

Stanford–Washington 그룹은 이미 미국 연구에서 병원 기반 진단만으로는 섭식장애 인구의 80~90%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SWED와 DSM-5 기반 알고리즘 진단 체계를 개발해 왔다.

그들이 제시한 핵심 원칙은 명확했다.
(1) 병원 기반 역학만으로는 실제 유병률을 산출할 수 없다.
(2) 따라서 온라인 기반 스크리닝 + 알고리즘 기반 분류가 필요하다.

이 접근법은 병원 밖의 인구까지 포함하는, 말 그대로 인구 수준(population-level)의 역학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추아는 이 모델이 말레이시아에서 전국 규모 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경로임을 빠르게 이해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SWED는 아직 아시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었다. 즉,
▲ 미국 연구팀은 아시아권 검증 데이터가 필요했고,
▲ 추아는 병원 없이 진단할 수 있는 도구와 알고리즘이 필요했다.

마침 그 시기, 그는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NTU) 산하 국립교육원(NIE)의 '심리학·아동·인간발달(PCHD) 학과'에서 시니어 리서치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었고, 이 조건이 워싱턴–스탠퍼드 그룹의 기술적 필요와 정확히 맞물리면서 협력의 문이 열렸다.

싱가포르 연구 — 말레이시아 연구를 위한 '외부 실험실'

2021년 <국제섭식장애학회지>에 추아 숙닝, 섭식장애 디지털 스크리닝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인 워싱턴대 엘린 피츠시몬스-크래프트(Ellen Fitzsimmons-Craft), 하버드 STRIPED의 브린 오스틴(Bryn Austin) 등이 공동 발표한 싱가포르 섭식장애 유병률 조사는 싱가포르 성인 827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사상 첫 진단 기반 대규모 섭식장애 조사로, 온라인 스크리닝(SWED·EDE-Q 등)과 DSM-5 진단 알고리즘을 조합해 병원 방문 없이 임상적 진단을 분류한 연구였다.

연구팀은 온라인 패널을 활용해 싱가포르 전체 인구 구성을 반영한 성인 표본을 모집하고, 다음과 같은 진단·선별 체계를 적용했다:
▲ SWED(Stanford–Washington Eating Disorder Screen)
▲ EDE-Q short form(섭식장애 핵심 증상 평가)
▲ SCOFF(섭식장애 단기 선별도구)
▲ DSM-5 진단 알고리즘(DSM-5의 각 진단 기준을 온라인 응답에 적용해 임상 진단을 일관적으로 도출시키는 규칙 체계)

그리하여 드러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전체의 6.2%가 DSM-5 기준 섭식장애 진단군에 해당
(2) 진단군의 37%는 비전형적 거식증(Atypical Anorexia) 등 기타 특정 섭식 장애(OSFED)에 해당
(3) 19.5%는 고위험군(ED-risk)
(4) 진단군의 단 1.6%만 치료를 받고 있었음
(5) 남성과 여성의 유병률은 거의 동일

이 결과는
▲"섭식장애는 서구 여성의 병"이라는 가설을 무너뜨린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데이터이자
▲ 온라인 기반 진단·역학 모델이 실제로 아시아 다민족 환경에서도 작동한다는 기술적 검증
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연구는 말레이시아처럼 병원 기반 자료가 거의 없는 국가에서도 병원 밖 진단 → 유병률 추정 → 정책 데이터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 첫 연구였고, 추아가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전국 단위 섭식장애 조사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서 구축된 기술적·방법론적 토대 덕분이었다.

글로벌 섭식장애 데이터 혁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는 섭식장애 실태를 파악할 대표성 있는 데이터가 없다. 이번 CoRe-ED 'Next Big Research Idea'에서 우승한 NEDIC-Harvard STRIPED-Relate Malaysia 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데이터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안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① 문화·지역 맥락에 맞춘 측정 도구 개발, ② 연구 여건이 취약한 국가 연구자들을 위한 물적 지원, ③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ED 데이터 대시보드 구축을 목표로 한다. Relate Malaysia의 참여는 글로벌 사우스 연구자가 국제 지식 생산의 중심에 서는 드문 사례이며, 말레이시아의 경험을 세계적 연구·정책 담론과 연결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글로벌 섭식장애 데이터 혁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는 섭식장애 실태를 파악할 대표성 있는 데이터가 없다. 이번 CoRe-ED 'Next Big Research Idea'에서 우승한 NEDIC-Harvard STRIPED-Relate Malaysia 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데이터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안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① 문화·지역 맥락에 맞춘 측정 도구 개발, ② 연구 여건이 취약한 국가 연구자들을 위한 물적 지원, ③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ED 데이터 대시보드 구축을 목표로 한다. Relate Malaysia의 참여는 글로벌 사우스 연구자가 국제 지식 생산의 중심에 서는 드문 사례이며, 말레이시아의 경험을 세계적 연구·정책 담론과 연결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Relate Malaysia

말레이시아 섭식장애 전국조사(2020):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 병'

말레이시아 전국조사는 싱가포르 연구에서 구축한 온라인 기반 진단 모델을 토대로, 말레이시아 인구 구조에 맞춘 독립적인 조사로 다시 설계된 연구였다. 즉, 싱가포르에서 기술을 시험했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그것을 처음으로 국가 규모에 적용한 셈이다.

2020년 추아 숙닝은 말레이시아 성인·청소년을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구성하고, 온라인 스크리닝 도구(SWED, EDE-Q short form, SCOFF 등)와 DSM-5 알고리즘을 말레이시아 인구통계 구조(연령×성별×민족)에 맞게 재조정해 진단을 분류했다. 이 작업은 기존 병원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인구 기반 진단'을 가능케 했다.

이 연구는 2022년 <국제섭식장애학회지>에 발표되었으며, 말레이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전국 단위 섭식장애 유병률을 제시했다.

▲ 여성의 32%, 남성의 24%가 섭식장애 위험군(ED-risk group)
▲ 청소년·젊은 성인의 약 14%가 DSM-5 임상적 섭식장애 범주에 해당
▲ 모든 주요 민족 집단에서 폭식·보상행동이 보고됨
▲ 진단군의 극소수만 치료 경험이 있음

이 조사는 단순히 "유병률이 높다"는 사실 이상을 드러냈다. 국가 조사, 병원 통계, 정책 체계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던 섭식장애가 처음으로 '측정 가능한 현상'으로 국가 통계에 등장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추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때때로 데이터가 사람을 대신합니다."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오래도록 이름조차 붙지 못했던 고통이 처음으로 숫자라는 언어를 통해 공적 세계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고통을 측정하는 사람, 그리고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

추아 숙닝은 자신을 사회운동가로 부르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기술적 전문가(technical expert)"라고 말하며, 연구·정책·공중보건을 연결하는 기술적 경로를 설계하는 일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이는 개인적 취향이라기보다, 말레이시아에서 정책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요구되는 언어의 정치성을 인식한 선택에 가깝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당사자 경험(lived experience)'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전문성의 결여로 오해된다. 정책 영역에서는 "정서적 거리"가 요구되고, 전문직 내부에서는 감정의 노출이 곧 취약함으로 읽힌다. 그는 이 긴장을 담담히 인정한다.

"전문가로서의 위치와 정신질환 경험 당사자로서의 개인적 경험을 함께 드러내는 것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아직도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이 금기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아시아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정서 규범, 가족의 체면, 전문직 위계를 반영한다. 그 속에서 추아는 '경험의 공개'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전략적이어야 하며, 자율성과 안전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성의 형식: '문제를 푸는 기술'로서의 심리학

추아 숙닝의 인터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그가 심리학을 진단과 치료를 넘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구조(problem-solving architecture)"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는 연구자이자 임상가로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데이터·임상 실천을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는 기존 체계가 실질적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확장하려면 기술적 접근(technical approach)이 핵심"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관점은 단순한 실용주의가 아니라, 어떤 언어가 국제기구·정부·학술기관에서 신뢰를 얻는지,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어디에서 실패하는지를 지켜본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에 가깝다. 추아는 정책의 성패가 "초안(document)이 아니라 집행(execution)과 자원 배분(resource allocation)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정신건강 문제는 제도적 의지보다 실행 가능한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가 STRIPED에서 배운 세 가지 원칙과도 연결된다.
① 창의적 사고 — 기존 모델을 단순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② 광범위한 협업 — 학계·정책·공중보건을 가로지르는 연결을 만들고 ③ 단일 전략만으로는 공중보건 문제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 접근이다.

추아에게 전문성은 자격이나 직책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기술적으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능력에 더 가깝다.

아시아에서의 섭식장애: 서구 진단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 영역

추아 숙닝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지점은 단순하다. 아시아의 섭식장애는 서구 진단 체계가 전제하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외모 규범과 음식문화가 서구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 정서 표현을 자제하도록 요구하는 규범이 강하며
▲ 가족·학교·종교 공간에서 문제가 노출될 여지가 매우 좁고
▲많은 사례에서 당사자는 우울·불안을 먼저 호소하고, 섭식 문제는 그 뒤에 숨겨진다는 점
에서다.

이는 그가 수행해온 인구수준 조사와 구조적 분석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서구의 진단 매뉴얼(예: DSM-5)이 가정하는 대표 증상 — 체중 집착의 명시적 표현, 과도한 체형 평가 발화, 반복적 보상행동의 보고 — 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가족 중심 구조 때문에 가족기반 치료(FBT) 등 서구식 치료 모델이 문화적 적합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문제는 "진단이 틀렸다"가 아니라, 진단이 전제하는 '증상 표현 방식' 자체가 아시아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다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추아는 '정답을 그대로 옮겨오는 작업'이 아니라, 문화·가족·사회 구조를 고려해 전략을 조정하는 변증적 접근(dialectical approach)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질문: '누가 언어를 만들 것인가'

추아 숙닝은 인터뷰에서 정신건강 분야가 겪는 가장 근본적 문제를 언급했다. 정책, 임상, 연구, 당사자 경험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의 세계에 거의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는 이 단절이 특히 구조적이다. 전문성의 정의는 협소하고, 특정 형식의 지식만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문성과 당사자 경험이 함께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두 흐름을 통합한 조직이 더 지속가능합니다."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이 말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이상주의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그가 지난 십여 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실제로 부딪친 제도적 현실에서 나온 진단이라는 점에서다.

정신건강을 말할 수 없던 사회에서, '말할 수 있는 방식'을 새로 설계하는 일. 그가 해온 작업은 결국 그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남는 질문은 말레이시아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갖게 되었을 때,
그 언어를 어떤 제도와 어떤 사회로 확장할 것인가?"

추아 숙닝의 지난 10년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질문은 그의 연구를 넘어선다. 섭식장애라는 형태의 고통에 대해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한 한국을 포함, 아시아 전반의 공중보건과 정신건강 체계가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 반드시 응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섭식장애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섭식장애인식주간 #릴레이트말레이시아 #추아숙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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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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