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로 가는 도중에 라이브 방송을 하며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tv
생중계 화면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 무도한 계엄을 막아낼 방법은 국민들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국회로 모여주십시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해야 되는데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의원들을 체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국회로 와주십시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국민 여러분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저희도 목숨을 바쳐 이 나라 민주주의 꼭 지켜내겠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신 국민 여러분께서 나서주셔야 합니다. 저도 지금 국회로 가는 길입니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할 수 있도록 이 나라 민주주의를 강건하게 지켜낼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보태주십시오."
나는 "국민 여러분, 지금 국회로 와주십시오"를 계속 반복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배반했다"면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국회를 지켜주셔야 한다"라고 거듭 호소했다.
"국민 여러분, 지금 국회로 와주십시오. 국회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군대가 이 나라를 통치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검찰에 의한 이 폭력적 지배도 부족해서 총칼을 든 무장 군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국군 장병 여러분, 여러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민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배반했습니다."
나는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무효이며 "지금 이 순간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국민들에게 선언했다. 그리고 국군 장병들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여러분이 복종해야 할 주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국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닙니다. 장병 여러분,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총칼, 여러분의 권력은 모두 국민에게서 온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군 장병 여러분이 복종해야 할 주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미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종해야 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명령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명령입니다. 국민 여러분, 신속하게 국회로 와주십시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국회를 지켜주십시오. 저도 지금 국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절박한 시간"이었고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다. 이 내란을 당대표인 나와 우리 민주당과 국민들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제 곧 탱크와 장갑차, 총칼을 든 군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될 상황이었다.
운전을 하던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운명도 풍전등화임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잡혀갈지도 모르는,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남편을 태워다주고 있으니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이때 아내의 휴대폰으로 우리 부부의 안부를 묻고자 가족과 지인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러나 내가 유튜브 생방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크게 울 수도 없어 그냥 훌쩍일 뿐이었다.
"절박한 시간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적이고 위헌적이고 반국민적인 계엄 선포, 이 나라의 진정한 주권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체인 국민들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2년 6개월 이 짧은 시간에 이 나라가 얼마나 많이 망가졌습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곧 탱크와 장갑차, 총칼을 든 군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됩니다. 사법제도도 다 중단되고 군인들이 단심으로 심판하는 비상계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회복될 수 없도록 무너질 것입니다. 국제 신인도가 떨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철수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망가지고 안 그래도 나빠진 민생이 끝을 모르고 추락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주십시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여러분이 함께 나서서 지켜주십시오."
"군인 대신 영장을 든 검사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검찰 지배 국가에서 군인 지배 국가로 전환할 모양입니다.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여의도 국회로 가주십시오. 저도 국회로 갑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어떻게 만들어온 대한민국입니까? 어떻게 만들어온 민주주의입니까? 어떻게 만든 세계 10위의 선진국입니까?"
이렇게 긴급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저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꿈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호소했다. 많은 국민들도 나처럼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을 것 같았다.
"힘을 합쳐주십시오. 저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집 안으로 무장 군인들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급하게 차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도 아직 현실감이 없습니다. 꿈과 같습니다. 21세기 선진 강국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라니, 국민 여러분은 상상이 되십니까?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주십시오."
풍전등화 속에서 이뤄진 이 긴급 라이브 방송의 동시 시청자는 20만 명을 넘었다. 이 방송을 보고 '나도 국회로 가서 민주주의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국민들이 곳곳에서 여의도로 향했다. 결국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국민은 응답했다. 국민은 위대했다.
담을 넘다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경찰 병력이 여의도 국회를 에워싸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유성호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경찰 병력이 여의도 국회를 에워싸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유성호
12월 3일 밤 집에서 출발한 지 15분쯤 후인 10시 55분경 여의도 샛강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 국회 3문 근처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경찰 병력이 이미 문을 막고 있었다. 정문은 진즉 봉쇄되었을 터였다.
어디를 통해 들어가야 하나? 정식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담을 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을 보니 경찰이 아직 배치되지 않은 담이 보였다. 3문에서 정문으로 좌회전하는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 빨간 신호등 앞에서 대기했다. 여의2교 근처였다. 순간적으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아내에게 한마디 말도 못 하고 헤어졌다. 상황도 긴박했지만, 아내와 나는 이심전심으로 또 하나의 위기를 그렇게 겪어내고 있었다. 어디 한두 번 겪어본 위기였던가. 아내도 굉장히 불안했을 것이다. 사지로 남편을 태워다주는 것이 어쩌면 미안하기도 했겠지만 수많은 수사, 압수수색, 테러를 당하면서 여기까지 왔기에 또 하나의 위기 앞에서 더 보탤 말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차에서 내린 뒤 횡단보도를 건너 국회 담 쪽으로 갔다. 국회 정문으로 가면 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의원회관 뒤쪽 담벼락을 천천히 걸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행인인 척했다. 주변에 경찰이 보이지 않는 구간을 발견했다. 이때다 싶어 담을 넘었다.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내가 어떻게 넘어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긴장한 탓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화 같기도 하고 꿈속 같기도 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천만다행인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 병력이 국회 주변의 모든 담을 철통같이 막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차에서 내려 담을 넘어 국회 안으로 들어갈 때 내 목소리는 나가지 않더라도 라이브 방송은 계속 켜두었다. 내가 불시에 잡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아, 이재명이 잡혀갔구나'라고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아무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잡혀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를 차에서 내려준 뒤 아내는 몹시 걱정이 되었나 보다. 나중에 들어보니 유턴을 해서 남편이 담을 넘었을 만한 곳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고 한다. 경찰이 그쪽으로도 배치되는 중이었다.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담을 무사히 넘어갔을까. 경찰에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간 것은 아닐까. 아내는 차를 멈추고 경찰이 배치되고 있는 담 쪽으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그 사진을 확인해보니 11시 6분이었다.
아내는 전에도 휴일이거나 내 공무시간이 아닐 때 자주 나를 태워 운전을 했다. 성남시장 때부터 나는 늘 업무가 많고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운전에 집중할 수 없으니 아내가 대신 운전대를 잡을 때가 많았다. 아내는 그렇게 닦은 운전 실력을 그날 발휘했다. 나는 그렇게 아내와 헤어진 후 일주일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다. 내란 진압에 경황이 없다 보니 전화나 문자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국회 담은 넘었지만 본회의장으로 무사히 진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담을 넘자마자 의원회관에서 도로 쪽을 향해 형성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군인과 경찰 눈에 띄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두운 밤이라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국회 담을 넘은 것을 내 유튜브 방송으로 확인한 이해식 민주당 의원(당대표 비서실장)과 김태선 민주당 의원(당대표 수행실장)이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숲으로 왔다. 조금 뒤에는 한준호 민주당 의원도 달려왔다. 한 의원이 "지금 당대표실로 가면 잡힌다"면서 일단 자기 방으로 가자고 했다. 숲에서 나와 일행과 함께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원회관이라고 안전했을까 싶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한준호 의원실에서 잠깐 숨을 돌리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잡힐 경우 다음 민주당 지휘부는 누가 맡아야 하는가. 누가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미리 '대표 권한대행' 순서를 정해놓아야 했다. 20번까지 순번을 짰다. 당대표 수행실장인 김태선 의원에게 권한대행 순서를 빨리 의원들이 모여 있는 텔레그램 방에 발표하라고 했다.
비상 지휘부의 순서를 정해놓고 나서 의원회관 밖으로 나왔다. 의원회관도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한준호 의원의 차를 타고 국회도서관 쪽으로 이동했다. 차에서 내려 다시 숲으로 갔다. 이번엔 국회도서관에서 순복음교회 방향 쪽으로 형성된 숲이었다. 국회 앞 대로와 약 20여 미터 떨어진 곳인데, 숲 근처엔 대형 시계탑이 있다. 이해식, 김태선, 한준호 의원 등과 함께 그 시계탑의 움푹 파인 곳에 몸을 숨겼다.
그곳에서 국회의사당 안에 들어가 있는 민주당 의원들의 숫자를 원내대표단으로부터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면서 국회 정문 밖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민들이 어느 정도 모였는지 궁금했다. 믿을 건 오로지 시민들뿐이었기 때문이다.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권우성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주변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에게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권우성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는데 어둠 속이라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내밀면 자칫 발각될 수도 있으니 그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밖의 상황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시민들의 구호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철회하라."
"독재타도."
"윤석열을 체포하라."
나는 그때의 그 구호들을 선명하게 들을 수 없었지만 시민들의 외침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시민들이 국회로 속속 모여든 것이다.
'아, 희망이 있구나.'
그제야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었다.
가자, 본회의장으로
무엇보다 국회 의결을 통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계엄군을 몸으로 막으면서 벌어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황이 긴박했다. 일분일초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었다.
국회 본회의 소집 권한을 가진 사람은 세 명이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두 명에게 권한이 있는데, 부의장 중 한 명은 국민의힘 소속이니 사실상 두 명이라고 봐야 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모두 저들의 체포 대상이었다. 헌법 제77조 제5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시민이 벌어준 시간, 우리가 응답해야 했다.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 헬기들이 떠 있다.
연합뉴스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장 진입 시각과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헬기 소리가 들렸다. 계엄군이 국회 장악을 위해 헬기를 타고 국회 경내에 진입한 것이다. 시민들이 육로로 진입하는 계엄군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지만, 공중으로 진입하는 계엄군까지 막아낼 순 없었다.
계엄군이 국회 경내로 진입했다는 것은 본청으로 들어가는 길이 봉쇄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내가 잡힐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무력으로 시민을 짓밟았던 공수부대와 헬기, 그리고 무려 40년 넘게 이어진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것 같았다. 광주의 아픔과 피로 일궈낸 민주화의 성과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감히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을까? 피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냉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야 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계엄군들이 본청을 에워싸면서 진입할 방법이 없어졌다. 국회의원회관에서 본회의장으로 연결되는 지하통로가 있었지만, 아직 안전한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우선 국회도서관 옆에 있는 숲과 시계탑에 일행들과 몸을 숨기고 동태를 파악했다.
본회의장에 도착한 민주당 의원들의 숫자가 150명에 가깝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감사하면서도, 체포를 피할 수 있는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해 애가 타들어갔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왔다. "민주당 의원만으로 151명을 넘겼다"라는 보고를 받았다. 동시에 지하통로를 통해 본회의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숲에서 나와 한준호 의원의 차를 타고 의원회관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앞 상황을 살피는 팀과 뒤편을 마크하는 경호팀을 대동하고 세 갈래로 뛰면서 지하통로로 진입했다. 그 지하통로로 본회의장이 있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위험한 순간이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앞서 나간 팀이 먼저 가서 뒤에 이상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에 맞춰 뒤의 팀이 따라가면서 경로를 개척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 시간, 그 길은 정말 길고 어둡고 숨이 가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이날 국회에 집결한 민주당 의원은 165명. 비상계엄 선포 1시간 30분 만이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의원들을 빼고는 한 명도 예외 없이 전부 국회로 달려왔다. "가면 죽을까 봐 망설여졌다"던 어느 의원의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결연함이 공존했다. 이제 의결만이 남았다.
<
[12·3 비상계엄 1년 ②] 이 대통령이 직접 쓴 12·3 그날, 나를 울린 그 청년 그 응원봉>(https://omn.kr/2g8yn)으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9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공유하기
이 대통령이 직접 쓴 12·3 그날, 피가 마르는 국회 진입 작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