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5일 남태령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주축이 돼 조직한 '남태령 책모임' 구성원들이 1일 오후 불광역 인근 작업실에서 책모임을 하고 있다.
정초하
다섯 달째 책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지난 3월 25일 2차 남태령 집회를 계기로 서로를 처음 만났다. 희구씨가 남태령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별씨를 알아보고 말을 건넨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엑스(X)'에서 집회 소식을 접한 뒤 급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남태령으로 가던 희구씨는 단박에 별씨가 "남태령으로 향한다"는 걸 알아봤다.
"당시 지하철 같은 칸에 별님이 앉아계셨는데 세월호·이태원 참사 리본을 가방에 달고 계셨죠. 그걸 보고 틀림없이 '저 사람 남태령에 간다'고 생각하고 말을 걸었어요." - 희구씨
"희구님의 첫마디가 '남태령 가시나요?'도 아니고 확신한 듯 '남태령 가시죠?'였어요(웃음)." - 별씨
그 자리에서 친해진 두 사람은 집회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지하철역 인근 편의점과 생활용품점 다이소를 "털었"다. '비상행동' 자원활동가인 희구씨가 이를 능숙하게 주도했다. 마스크, 휴지, 비건용 젤리들을 "전문가처럼 집어담는" 희구씨의 모습에 별씨는 그 자리에서 "반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남태령 현장에는 더 많은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씨가 이전에 동료던 부깽씨를 알아보고 희구씨에게 소개했고, 짧은 시간에 친해진 세 사람의 시끄러운 대화 소리가 옆자리 현서씨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파워 ENFJ"인 희구씨는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이름이 쓰인 깃발을 들고 있던 현서씨에게도 "씨네필(영화 애호가)"을 자처하며 말을 걸었다. 곧 현서씨도 이들과 친해져 별씨에 "함께 자유 발언대에 올라가자"고 청할 정도가 됐다. 이후 승미씨도 밤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에 가져온 돗자리 한켠을 내어주며 가까워졌다. 개별적으로 광장에 나온 이들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동지"가 된 이들은 남태령에서 밤을 지새운 다음날(3월 26일) 지하철 4호선 첫차를 타고 귀가하는 길에 단체대화방을 팠다. 이후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날까지 매일 얼굴을 마주했다.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탄핵 인용 촉구 집회에서 마주친 탓이었다. 별씨는 "부깽님의 깃발 아래가 집합소였다"며 "거의 매일 집회 날에 함께하고 그러면서 밥도 같이 먹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4월 4일 탄핵 인용일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날부터 텐트에서 밤새 농성했던 이들은 곧 "얼싸안고 울면서" 기쁨을 나눴다. 선고 직후 서촌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회포를 푸는 과정에서 후주씨와 이샤씨도 합류했고, 지금의 남태령 책모임 단체대화방이 완성됐다.
남태령 첫 만남이 책모임이 되기까지

▲ '남태령 책모임' 소속 지승미씨가 지난 3월 26일 남태령역에서 찍은 사진.
남태령 책모임 제공
책모임의 탄생은 남태령에서의 경험이 촉매가 됐다. 희구씨는 "남태령 집회 때 혐오 세력 어르신들로부터 빨갱이라고 욕을 먹었는데 왜 나를 그렇게 지칭하는지 의문이었다"며 "<자본론>도 안 읽어보고 빨갱이 소리를 듣는 게 억울해 이를 토로했더니 부깽님께서 '금서'들을 리스트업해서 보내줬다"고 웃었다.
탄핵 선고 뒤에도 노동절 집회, 퀴어퍼레이드, 고공농성 종료 집회에서 마주했던 이들은, 지난 8월 9일 별씨의집에서 첫 책모임을 가졌다.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을 첫 책으로 택했다.
승미씨는 책모임에 가입한 이유를 묻자 "원래 여성, 성소수자, 이동권 의제로 활동해왔는데 광장에서 '말벌 동지(꿀벌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해 적극 연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들을 만나고 (사고의) 확장을 위해 자본주의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특히 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체가 삶의 불안을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책을 읽으며 자본주의 바깥의 커먼즈(공유 자원 공동체)라는 현실감 있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다양한 직업군과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하다보니 서로에게 배우는 점도 많다. 동령씨는 "공적 자금에 의해 지탱되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20여 년간 제작해왔는데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이윤 논리에 의해 축소되는 기조"라며 "미술계에 종사하는 이샤님과 농업계에 종사하는 후주님의 이야기로부터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수탈 구조가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희구씨는 "드라마 기획PD로 일을 하고 있는데 <미지의 서울> 같은 사람들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작품들이 흥행하는 걸 보며 불안의 기원이 무엇일지 궁금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나도 '갓생(귀감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을 살지 않으면 쓸모 없는 사람일까봐 불안을 느끼는데, 이것이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잉여를 생산하는 임노동자로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학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개인이 느끼는 실존적 문제를 구조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별씨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을 배우러 온 것에 가깝다"며 "1차 남태령이 페미니즘과 민주주의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는데 그 현장에 있던 이들의 네트워크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험하기 위해 책모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던 "동지"라는 말, 이제는...

▲ 지난 3월 25일 남태령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주축이 돼 조직한 '남태령 책모임' 구성원들이 1일 오후 불광역 인근 작업실에서 책모임을 하고 있다. 책모임 구성원인 지승미씨가 경청하며 메모를 하고 있다.
정초하
이들에게 서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특별한 존재다. 희구씨는 "친구라고 하기엔 가볍고 선생님이라 하기에는 끈끈하다"며 "동지에 가깝다. 비상계엄 이전에는 생소했는데 이제야 동지라는 언어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승미씨는 서로를 "아기를 키울 때 감싸안는 포대기"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된 뒤에도 후속 입법이 안 되고 N번방 이후 처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등 혼자 싸울 때는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힘빠지는 일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이곳에서 만큼은 힘을 얻고 나를 채운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내란 저지 후 1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들에게 여전히 아쉽다. 승미씨는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없고, 어떤 성소수자는 성별 정정조차 제대로 못하고, 장애인은 출근조차 못하는 세상"이라며 "납득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윤석열은 여성혐오 공약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며 "내란 세력이 힘을 얻게끔 동조한 시스템이나 혐오 문화들도 청산의 대상인데 눈에 보이는 내란 세력의 청산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한 목소리로 "광장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광장의 정신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별씨는 "남태령 집회 이후에 말벌 동지들이 몰려갔던 장애인 이동권 집회, 한국옵티컬 고공농성장 등을 작은 남태령이라고 불렀듯,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모르는 작은 남태령들이 어딘가에서 현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꿈꾸는 광장 이후의 대한민국은 "남태령 세대가 주축이 되는 나라"다. 별씨는 "대한민국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와 제 동지들, 그날 남태령에 섰던 사람들의 세계는 분명히 바뀌었다"며 "현장의 우리가 연대해 구체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사회가 이에 응답해 차벽이 열렸던 경험을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운동을 하던 87세대가 지난 30년을 이끌어왔다면 (내란 후) 광장에서 우리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30년을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려면 이들이 중심이 되고 제도권 정치에 진출하는 사회가 돼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내란 저지 1년, 광장의 인연 ①]
광장에서 돋보이던 그 피켓, '#계엄뒤질래 방'에서 탄생했습니다 https://omn.kr/2g9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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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가며 다이소 털던 우리, 이제 함께 책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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