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수리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조현천씨
권성훈
2019년, 이 상황에서는 가족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판단에 청년 시절 배운 자동차 정비 기술을 살려 오토바이 수리점 취업에 도전했다. 마흔한 살의 나이에 부천 일대 십여 곳의 수리점을 두들겼지만 모두 "나이가 많다"라며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허락된 곳의 월급은 기술 전수라는 이유로 최저 시급에 못미치는 180만 원. 주 6일 하루 십수 시간 근무로 피로했지만, 퇴근 후에는 배달대행을 부업으로 자정까지 일했다.
"2년 반을 그렇게 살았어요. 생활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3개월마다 30만 원씩 월급이 올라 2년 반 만에 330만 원까지 받았다. 청년들의 기피 직종에서 묵묵히 기술을 익힌 덕분이었다. 그렇게 2024년 9월, 마침내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10평짜리 수리점에서 시작해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지점까지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오토바이 수리점도 경쟁이 치열해 시장 개척이 쉽지 않지만, 조 사장은 자신 있다고 한다.
"전문성과 노력, 그리고 친절함이 있으면 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힘들지 않아요."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그때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폐업하기 직전, 조 사장은 사구체신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의 연관성을 언급했다. 당시 그는 스테로이드 100대 분량을 수십 번 맞으며 버텼다고 한다. 12년간 사장 생활을 하다가 월급 180만 원의 오토바이 수리점 막내 직원이 됐을 때는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사람 만나는 게 싫었어요. 전화 와서 근황 물어보면 그냥 '그럭저럭 지낸다'라고만 했죠. 많이 위축됐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수변공원을 산책하고, 주말엔 가족과 외식을 즐긴다. 직원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평일에도 시간을 낼 수 있다. 건강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삶이에요. 항상 피곤하고 쫓기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여유가 있어요."
다시 꿈을 꾸다

▲오토바이 수리점 사장이 되다. 신규 개점한 오토바이 수리점에 서 있는 조현천 사장
권성훈
조 사장의 5년 후 목표는 명확하다. 지점을 더 열고,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시절에는 꿈꿀 수 없었던 미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잘 되고 있으니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거죠."
그의 나이 46세, 15년간 세 번의 지옥을 건너며 배운 것은 '자기 일'의 가치였다. 프랜차이즈의 화려한 간판 뒤에 숨겨진 착취 구조, 사장도 노동자도 아닌 의무만 있고 권리는 배제하는 시스템. 조현천 사장은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겪었고 마침내 빠져나왔다.
조 사장은 프랜차이즈 시절을 회상하며 가장 아쉬운 점으로 국가의 "방치"를 꼽았다.
"거의 노동자처럼 본사의 감시와 감독을 받으면서 일했는데, 국가는 '너희는 개인 사업자'라며 보호해 주지 않았어요. 어디 기댈 곳이 없었죠. 지금 프랜차이즈를 하고 계신 분들, 본사를 믿지 마세요."
어쩌면 그는 꽤 긴 시간을 잘못된 길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러함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면 결국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 조 사장은 자신의 새로운 매장 앞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이번에는 누구의 간섭도, 착취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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