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3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 수십명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외국 관광객인 이들은 7시 30분 영업시작을 앞두고 길게 줄을 서 대기하기도 했다.
권우성
- 유족 측에 폭언한 임원에 대해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당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흔히 기자들이 '컨택 포인트'라고 하는데,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컨택 포인트로 지정한 사람이 유족 측 노무사에게 폭언에 가까운 말을 했던 임원이다. 해당 임원을 통해 나온 말을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하니 누구와 소통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또 다른 노무 대리인도 '산재 아니다', '과로 아니다'라며 고인의 장시간 근로를 부정하고 회피했다. 모욕적이고 충격적인 발언들도 많았지만 차마 기사엔 내보내지 못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최근 입장문부터 시작해 장시간 근로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컨택 포인트(Contact Point) : 기업이 대중과 소통하는 모든 접점
*고위급 임원은 고인 사망 2주 뒤 유족 측에 "과로사로 무리하게 (산재를) 신청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저와 직원들이 과로사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밝히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이 임원은 "(고인이) 과로사했다는 거짓에 현혹돼 직원들이 거짓 협조는 하진 않을 예정이니 양심껏 모범 있게 행동하시길 바란다. 굉장히 부도덕해 보인다"며 폭언에 가까운 말도 했다(출처 : 매일노동뉴스).
계약은 엉망, 기록은 조작‥청년을 소모품으로 만든 노동구조
- 고인의 근로계약서에서 가장 심각했던 부분은?
연장수당, 근로시간, 급여 등 기본적인 요소들이 서로 맞지 않았다. 약정한 근로시간과 실제 급여 체계가 전혀 일치하지 않았고, 몇 달 단위의 '초단기 쪼개기 계약'을 1년 넘게 반복했다. 노무사들조차 "어떻게 이 따위 계약서를 만드냐"고 할 정도였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정상적 계약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 근로시간을 은폐·축소하려는 정황은 여전한가?
그렇다.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감독 나온다니까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사 LBM) 본사에서 스케줄표 주 52시간 이하로 다시 조정하라고 한다"는 제보가 왔다. 지나간 근무기록까지 수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거다. LBM은
"긴급하게 착수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조사에 성실하게 임하며 더 나은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유족과 합의를 뒤집는 입장문을 내고 근로감독조사에 적발될 수 있는 부분은 직원을 시켜 없앴다. 과연 혁신 의지가 진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11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모두가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 것"이라며 전사적 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 초단기 쪼개기 계약에 대한 LBM 입장은?
노동자 탓을 한다. F&B(식음료) 업계는 진입 장벽이 낮아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계속 일할 수 없단다. 오래 갈 직원을 선별하려다 보니 쪼개기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LBM 채용 공고를 보면 조그맣게 '계약직'이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마치 정규직 채용 같다. 복지도 제공되는 것 같고 급여도 최저임금보다는 조금 높고 힙한 브랜드다. 그런 부분에 끌려 직원들이 지원한다.
막상 근무하면 노동강도가 높아 금방 그만두게 된다. 당연히 회사는 높은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근무 태만과 윤리 의식 부족으로만 몰아간다. 오히려 회사가 쪼개기 계약으로 노동자를 높은 노동강도로 몰아넣어 지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을 뽑아 쓰는 휴지처럼 쓰고 젊고 신선한 얼굴로 계속 갈아치우기 위한 방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불완전한 제도가 만든 비극, 마주한 업계의 두려움
- 청년 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사용자에게 근무시간 기록 및 보관을 의무화하고 노동자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시 지속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관행도 제한해야 한다. 현행 제도(기간제법)에선 2년 이내 10번의 계약을 체결하든 매달 쪼개기 계약을 하든 문제가 없다. 최소 계약 기간이나 갱신 횟수 제한으로 최소한의 고용 보장을 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포괄임금제다. 판례로 만들어진 임금 지급 방식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과 공짜노동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에 하루 빨리 제동을 걸어야 한다.
- 취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직원들과 접촉이 쉽지 않았다. 보도가 좀 나온 뒤에야 몇몇이 용기를 내긴 했지만 "신변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 "업계가 너무 좁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제과제빵업계뿐만 아니라 SNS상에서 유명한 디저트 브랜드 등 F&B(식음료) 업계가 좁다 보니, 계속 경력을 쌓고 싶어 하는 직원들은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질의응답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정소희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 다른 언론사의 후속보도가 많았다.
파장이 클 거라 예상해 더 꼼꼼히 준비했다. 이번 사건은 참혹했다. 젊은 청년이 말도 안 되는 초장시간 노동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 청년이 일하던 브랜드는 최근 언론의 호평을 많이 받던 곳이었다.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노동 문제는 큰 관심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올해도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SPC, 쿠팡 등 대기업을 비롯한 일터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데 어느 순간 무감해진 건가 싶기도 하다. 이번 보도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산재 문제나 노동 문제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단기 성장의 그늘과 유족의 고통, 보도의 의미와 기자의 고민
- 앞으로의 취재계획은?
엑시트(투자자금 회수)를 목표로 단기간에 성장한 기업들에 공통적으로 런던베이글뮤지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더라. 그런 사례를 취재 중이다. 직원들은 회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보하게 됐다고 했다. 회사를 키운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청년 노동자들이 높은 노동강도와 부조리한 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회사가 잘못을 쇄신하고 최소한을 지키며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도 런던베이글뮤지엄처럼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기업이 폭삭 망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이번 보도 이후 프랑스, 일본 등 외신에서도 '한국에서 젊은 청년이 80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했다'고 보도했더라. 최소한 이렇게 부끄러운 기업은 아니었으면 하는 거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하는 LBM은 약 2,000억 원 규모로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에 매각되었다. 이를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엑시트라고 설명한다.
- 이번 보도의 의미는?
많이 울고 화내며 썼다. 유족에 대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대응이 충격적이라 매순간 화를 많이 냈다.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직원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일하게 한 책임도 크지만, 유족에게 준 상처가 너무 크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모든 임원과 책임자들이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유족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매순간 너무 큰 고통을 견뎌야 했다. 고통 속에도 용기 내어 언론 앞에 섰다. 만약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성의 있게 유족을 대했다면 유족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다시 한번 얘기하지 않아도 됐을 거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유족들을 투사로 만든 거다.
- 좋은 보도란 무엇인가?
상을 받게 되면서 좋은 보도와 더불어 좋은 기자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너무 잘 울어서 "기자가 왜 이렇게 잘 우냐"는 타박도 들어봤고, "취재원에게 너무 끌려 다니는 거 아니냐"는 염려도 들었다. 그래도 '세상을 좀 더 이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취재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좁게는 고인과 유족의 명예, 이들이 받아야 할 사과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책임 있는 대응을 되찾고 싶었다. 나아가서는 더 이상 과로로 죽는 청년 없이 좀 더 이로운 방향으로 사회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꼼꼼히 취재했는데 독자들도 함께 분노하고 공감해주더라. 좋은 보도까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자란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기자 아닐까.

▲ 매일노동뉴스 ‘런던베이글뮤지엄 과로사 의혹 연속보도’가 2025년 1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 아래 회원상호 간의 단결 및 상호협력을 통해 언론민주화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구현에 앞장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공유하기
힙한 브랜드서 일어난 26세 청년의 죽음 "울고 화내며 썼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