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책 표지
여름언덕
읽지 않은 책 얘기, 두렵고 민망하다면
"첫 번째 두려움은 독서의 의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머지않아 사라질 테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게 사실이다. 특히 일정 수의 모범적 텍스트들이 그런 신성시의 대상이 되는데, 그런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금기이며 이를 어기면 눈총을 받게 된다.
두 번째 두려움은 정독해야 할 의무로 불릴 수 있는데, 이는 첫 번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읽지 않는 것도 눈총을 받지만, 후딱 읽어치우거나 대충 읽어버리는 것, 특히 그렇게 읽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눈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사람들로서는 프루스트의 작품을 정독하지 않고 대충 읽어보기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강의자들 대부분이 그런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 12, 13p
저자는 독서와 비독서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연다. 요컨대 세상엔 독서와 독서가 아닌 것이 있지 않다. 비독서에도 나름의 방식과 체계가 있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비독서란 모두 네 가지로 ▲책을 전혀 읽는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로 구분된다. 저자는 네 경우를 하나씩 살피며 이 모두가 독서에 이르지 못한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때로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조차도 이중 어느 한 경우에 해당되는 상태로 난감한 자리에 섰음을 말한다. 오스카 와일드와 폴 발레리, 심지어 '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학자며 작가들'까지 모두 그렇다는 것.
읽지 않고도 책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 낄 수 있다. 심지어는 적극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조차 가능할 수 있다. 독서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읽지 않은 것을 읽었다고 거짓부렁 하는 편보다 낫다. 그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 근간이 되는 것은 비독서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판단으로부터 비롯된다. 책을 완독하는 것이 모든 경우에 이로운 일이 아닐 뿐더러, 책벌레라 여겨지는 이들조차 세상의 모든 책 가운데 지극히 일부만을 읽을 뿐이고, 읽지 않고도 다른 이의 의견을 듣거나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일만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그 근거가 된다. 심지어 모든 독서는 마침내 망각되어 비독서로 귀결되기에 궁극적으로는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조차 흐려진다는 주장이 더해진다.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안다. 불행하게도 교양을 쌓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나,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31p
저자의 주장 중 특히 흥미로운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 책의 맥락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란 이야기다. 문학과 비문학을 가리지 않고 그 책이 선 자리를 파악하는 일이 어설프게 읽고 맥락을 잘못 진단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은 여러모로 논쟁적이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명저 훑어보기'가 큰 유행을 끄는 요즈음 세상에서 과연 독서보다 독서한 이의 정리를 전해 듣는 편이 더 유익한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저자가 소개한 폴 발레리의 마르셀 프루스트와 관련한 글이 눈길을 끈다.
앞에선 찬사를, 뒤에선 극악한 평을 받고는 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하여 여러 명망가가 공식 석상에서 좋은 이야기를 내놓고는 했다. 폴 발레리도 그중 하나로, 저자에 따르면 그는 거의 알지 못하는 프루스트를 '천연덕스럽게'도 상찬하는 글을 거짓 없이 지어야 했던 터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가운데 한 권 정도 겨우 아는 처지요, 이 소설가의 예술 역시 나로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이긴 하지만, 그러나 나는 다행히 시간을 내어 읽어볼 수 있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약간의 내용만으로도 우리 문학이 최근 뛰어난 문인을 한 명 잃었다는 사실을 안다. (중략)
더욱이 나로서는, 설령 내가 그의 방대한 저작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드와 레옹 도데처럼 서로 전혀 다른 정신의 소유자들이 그의 중요성에 관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혹을 떨쳐버리기에는 충분하다. 그런 드문 만남은 지극히 확실할 때만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모두 날씨가 좋다고 외치면 날씨가 좋은 것이다." -39, 40p
거짓 없이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또 알지 못하는 저자에 대하여 얼마든지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낼 수 있다. 저자는 수많은 유명인, 작가, 작품들의 예시를 들어가며 점점 더 일반 독자가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적용례에 접근한다. 모든 독서는 설사 같은 책을 매개로 한다 해도 다른 이의 독서와 다르다는 사실, 읽는 이의 지성과 감성이 다르고 책과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르며, 또 읽은 시기의 경과 탓으로 남은 기억이 다르기에 다르다는 주장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로부터 책이 전하는 몇 가지, 이 책의 가치를 위하여 차마 적을 수 없는, 기술과 마음가짐을 학습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나간다. 목차를 통해 공개된 바,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펼치며 ▲책을 꾸며내라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얼마간 효험을 발할 수법들일 수 있겠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어지는 건
물론 책을 읽다 보면 피에르 바야르가 진정으로 하려는 말이 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라는 것은 아니란 걸 짐작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책으로부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수련한 뒤 영원히 책을 읽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저자가 원하거나 의도하는 바가 아닌 것이다.
책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고, 이 과정으로부터 도리어 적어도 책이 언급한 책에 대해 흥미를 느끼도록 도모하는 것이 감춰진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질 정도다. 요컨대 이 책은 그대로 하나의 유머일 수 있겠다. 고매하고 장황하면서도 지적인 프랑스 먹물식 유머 말이다.
또 한 가지, 책은 읽는 이에게도 나름의 유익함을 발한다. 각자에게 독서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한다는 점에서다. 마침내 망각을 거쳐 비독서에 이르게 될 독서가 아닌가. 그럼에도 읽는 행위란 무엇인가.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내게 독서는 밤하늘에 별을 쏘아 올리는 일이다. 어느 독서는 북극성이고 남십자성이 되어 삶의 지표이며 길잡이가 된다. 물론 존재하는 모든 건 사멸하게 마련이고, 그 빛조차 마침내 흐려질 것을 안다. 그렇다 해서 어디 쓸모없는 돌덩이를 내 귀한 별들에 댈 수 있을까.
독서가 필연적으로 비독서로 귀결된다는 주장은 맞는 얘길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모든 것의 귀착은 죽음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빛을 내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독서는 독서로 남는다. 그 동안엔 좋은 독서와 겉만 핥는 독서, 독서를 참칭하는 무수한 흉내내기가 결코 같을 수 없다.
고의적 '어그로'든 아니든 간에 궤변으로 가득한 책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유쾌한 저자가 책장 뒷면에서 웃는 얼굴로 반론을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워가면 배워갈수록 읽는 일을 기꺼워하게 되지 않았느냐고 반론하는 그의 모습이 선하다. 그건 그대로 괜찮은 독서가 아니었냐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은이), 김병욱 (옮긴이),
가디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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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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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 교수의 '비독서 방법론'이 진짜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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