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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2.07 19:08수정 2025.12.07 19:0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년 언제나 11월을 넘기지 않고 김장을 하는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 것처럼 11월에 김장을 마치고 12월을 산뜻하게 맞이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다. 그래야만 마음이 홀가분하고 겨울 맞이를 하는 것처럼 기분이 새롭다.
남편은 작년까지 하지 않던 말을 한다. "나이 80이 넘었는데 이제는 김치 그만 담그고 사 먹지?" 남편 하는 말에 나는 놀랐다.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당신이 이제는 김장할 때마다 곁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하기 싫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곧 있으면 남편 나이도 90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모든 것이 귀찮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나도 남편 나이가 되면 그럴 수 있겠지 싶어 이해를 한다. 세월 비켜 가는 장사 없다고 언제나 사람 사는 모습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요즘 남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울적해질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배추 40kg, 혼자 김장

▲주문한 배추 절여 씻어 온 배추
이숙자
올해는 지난해보다 절반 정도인 절임 배추 40kg를 마트에서 주문했다. 이젠 김장은 조금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더 절실했다. 나도 이제는 무리하고 싶지 않았고 지난해 묵은 김치가 지금도 조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김장이 힘들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 말을 듣고 아쉽다. 김치 담그는 일은 물론 힘겹다. 그렇지만 김치를 담그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 나누고 수육을 삶아 막걸리 한 잔 하던 훈훈한 문화가 자꾸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아쉽다. 나는 김치 담그는 일도 놀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사부작 사부작 즐긴다는 생각을 해서 마음이 편하다. 김장을 같이 하던 세대도 줄어든다. 이제는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준비해야 한다.
왜, 예전에는 김치 담그는 일을 노동으로만 생각하고 힘들다고 했을까. 산다는 건 생각하기 나름인 듯, 그러나 나이 들고 세월이 가면서 생각이 바뀐다. 내가 건강이 허락되어 김장 김치를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고 내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가 먹고 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인가.
남편은 김장에 도통 관심 없다는 듯 소파에 앉았다 누웠다 TV만 보고 있다. 올 가을부터 달라진 모습이다. 내가 부르면 마지못해 와 모자란 양념을 넣어 주고 다시 소파에 눕는다. 작년까지는 안 그랬는데 어쩔 것인가. 하기 싫은 걸 강요할 수는 없다. 나는 혼자서 천천히 파를 다듬고 이것저것 양념 준비를 한 다음 주문한 배추를 기다린다.
배추도 알맞은 시간에 도착을 해 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배추를 소쿠리에 담아 물 빼기를 1시간 정도 한다. 다른 해는 동생이 도와주었는데 올해는 나 혼자서 김치소를 넣고 김치를 담갔다. 담고 나니 김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어 섭섭했다. 딸네 두 집, 우리까지 먹으려면 턱 없이 모자란 양이다.
김치 양념이 남아 다음 날 마트에 가서 배추 한 망 세 포기를 사다가 절이고 담갔으나 양념은 또 남고, 모자란 감치 통을 채우려 했지만 채우지 못했다. 모임때 맨날 같이 차 타고 다니는 지인 선생님이 김장을 안 하신다는 말을 듣고 꼭 드리고 싶었는데 드릴 김치가 없다.
원하는 걸 해냈으니 나는 부자

▲담가 놓은 김장 김치 담가 놓은 김장 김치
이숙자
다음 날, 거실에서 남편이 주무시는 틈을 타 몰래 배추 세 포기를 또 사 왔다. 오후 시간, 마트를 걸어가는데 바람이 칼바람이다. "아이고 추워, 내가 못 말린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할까. 적으면 적은 대로 먹고 말지,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집안에서 하는 일은 괜찮은데 배추 사러 가는 길이 추워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배추를 밤중에 절여 새벽에 일어나 씻어 물 빼고 아침 먹고 설거지 후 김치를 담가 모자란 김치 통을 채웠다. 지인 선생님 주고 싶은 만큼 작은 통에도 김치를 담아 놨다. 우리 먹을 김치도 만들어 놓고 이제는 완벽하게 김치 냉장고를 다 채웠다. 3일 걸린 김장, 완성이다.
김치는 엄마의 사랑이다. 어쩌면 고향의 맛일지도 모른다. 귀찮다고 김치를 담지 않으면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 이제 겨울 준비는 끝났다. 추운 겨울 아삭 한 무 김치와 시원한 동치미, 톡 쏘는 여수 돌산 갓김치, 다 담가 놓았다.
눈 내리는 겨울날, 배추김치 머리만 싹둑 잘라 긴 가닥을 물 만 밥에 손가락으로 쭉 찢어 놓아 먹는 맛이라니 이 보다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밥과 김치만 먹고도 우리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김장 김치를 담가 김치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마음이 가득해진다. 이제 딸들이 가져다 먹기만 기다릴 것이다.
나는 오늘 부자가 된 기분이다. 부자란 돈이 많은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걸 이뤘을 때 부자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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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다 된 남편은 소파에만... 3일 걸려 혼자 김장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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