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날갯짓의 '마음119' 프로그램 2023년 4월 10일, '마음119' 프로그램 참여자의 백드롭 페인팅 작업물
펭귄의 날갯짓
-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모두를 위한 주간 쉼터 '친구네 집'을 운영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또 추석과 같은 명절에 '명절대피소'도 마련하셨고요. 이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는데요. 이와 같은 공간을 마련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선 : "명절에는 모두가 다 쉬고 싶잖아요. 고립을 경험하거나 정신 질환이 있는 분들 중에서 한창 일할 나이에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신 분들이 10명 중 8명은 되는 것 같아요. 돈이 있어야 명절에 여행도 갈 수 있는데, 돈이 없으니 문화생활 접근이 어렵고 갈 곳도 없는 거죠. 그런데 명절 내내 가족과 붙어있자니 불편하기도 하고, 아예 가족과 연이 끊긴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 '명절대피소'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같이 명절 음식도 만들었고, 영화도 봤고, 키링도 제작했습니다."
광호 : "보통 정신질환 당사자들을 지원하는 기관들이 주말이랑 명절에 쉬거든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오갈 곳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그래서 명절에 대피할 곳을 마련하고, 그 시기에 맞춰 문을 열어보자는 계획을 세웠고요. 이런 맥락에서 '친구네 집'은 지금도 토요일에 열고 월요일에 쉬고 있습니다."
-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가 정신질환자들에게 접근성이 높고, 당사자들의 현실이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까요?
지선 : "저는 접근성이 낮다고 생각해요. 일단 장애 등록 접근이 어려워요. 조현 증상 같은 경우 장애 등록이 다른 질환에 비해서는 쉽지만, ADHD나 우울, 강박 등은 장애 등록 자체가 접근성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복지 제도를 활용하려면 복지 관련 용어나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정보 접근성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정책과 제도의 용어는 굉장히 어렵고, 알아야 신청하는데 모르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죠.
예를 들어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구별로 있는데, 센터는 인력도 예산도 한정되어 있으니 대기 시간이 발생해요. 그런데 정신질환이 대기 시간에 딱 맞춰서 발현되지 않잖아요. 의사가 내 눈앞에 있을 때만 다리가 부러질 수 있고, 맹장도 터질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요. 인력과 예산 문제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국가가 복지에 돈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정신 건강 요원이나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등은 대부분 여초잖아요. 여성화된 직업이나 돌봄 직업은 사회적인 지위, 저평가가 된 노동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급여도 낮아요. 이렇게 얽혀있는 모든 문제들이 풀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와 이용자의 구도가 아닌, 노동자가 안정된 환경에서 적정한 임금을 받아야 더 안정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노동권 문제도 같이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호 : "우리나라 정신건강과 관련한 복지 제도는 대부분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깔때기와 같은 역할을 해요. 센터를 통해 내려온다는 뜻인데요. 모든 사업이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일단 가거든요. 자살 사건이든, 고립 당사자든 일단 정신건강복지센터로 보내는 식이에요. 그러면 사업비는 올라가는데 인건비는 안 올라가요. 사업은 늘어나는데 수용하는 인력은 그대로인 거예요. 당연히 일이 가중될 수밖에 없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우가 좋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고요.
제가 등록된 보건소의 담당자가 두 번 정도 바뀌었는데, 담당자의 연령대가 점점 어려져요. 계속 저연차로 바뀌는 거죠. 연차가 낮아지면서 경험도 적은 분이 오시게 되고,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시 자신의 어려움을 반복해서 말해야 해요.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여기 안 가야지', '복지 서비스 이용 절대 안 해야지'가 되는 거죠. 그리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지 않으면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센터에서 당사자에게 먼저 연락할 수 없어요. 센터가 선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자해나 타해가 일어나서 응급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개입이 어려워요.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가족에게 책임이 많은 것도 문제인데요. 1인 가구이거나 부모님이 멀리서 사시는 경우, 동거인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동성 간 커플인 경우, 보호자의 역할을 법적으로 할 수가 없는 거죠. 앞으로 한국의 복지제도는 어떻게 당사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지역사회에서 관계를 더 잘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최근 몇 년 전부터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이슈들이 제기되면서 은둔과 고립은 벗어나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 '펭날'의 입장이나 활동 방식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지선 : "저희는 정신질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거나, 자신들의 공간에서 나오고 싶을 경우에 그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회복밥상', '명절대피소'를 운영하는 것이고요. 저희는 본인 스스로 세상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 욕구가 있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호 : "공식적으로 논의해 본 적은 없는데, 저희가 '자활' 관점도 아녀요. '대상에게 지원이 필요한가'가 중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고립을 선택했다고 하면 개입을 할 필요성이 없을 수도 있는데요. 본인은 자발적이라고 하지만 다른 비자발적 요소들이 있고, 그걸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다면 저희가 지원해야 할 필요성도 있겠죠.
모호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본인이 탈고립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외부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저희가 지원을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모두 다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고요. 외부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고, 찾아오셨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로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병원에서 가서 약 처방을 받고, 우울한 감정이 사라지고, 잠을 잘 자게 되는 것만을 '회복'이라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펭날'이 생각하기에 당사자들이 '회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회복'이라는 용어에 대한 의견을 주셔도 좋습니다.
지선 : "꼭 '회복'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고,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병과 함께 살아감에 익숙해지는 것이죠. 처음에 저를 소개할 때 '경력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회복이라는 단어를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 보면서 사용해요. 현재 병이 있는 상태가 아닌, 병이 없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단어로요. '회복'하는 감각은 현재의 경험이 아닌 거고요.
그러나 제게 '회복'은 모두가 '경력직'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요. 정신 질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머리카락을 마구 뽑거나, 강박이 심해지거나, 돈을 절제하지 않고 쓰기 시작하는 상태를 감지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거거든요. 경력이 쌓이면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나 자신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익숙해지는 것, '경력직'이 되어간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는지 생각합니다."

▲예비 활동가들 교육 2023년 11월 19일, 고립·은둔 청년 조력 세미나 강의를 듣고 있는 예비 활동가들
펭귄의 날갯짓
광호 : "저도 초반에 정신질환을 진단받았을 때, 우울·강박·공황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야 내가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이건 사실 실현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증상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고, 지금은 증상과 같이 살아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회복'은 증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만들 수 있는지,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듯싶습니다.
또 '회복'은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놓는 행위 같기도 해요. 제가 지금도 고속버스나 택시만 타면 경미한 공황 증상이 오는데요. 이럴 때, 목적지까지 가는데 어떤 교통수단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가는 도중 특정 지점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야겠다는 등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두면, 제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그렇게까지 제한적이지 않는 것 같아요. 증상이 있음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본인이 습득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회복'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사회에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광호 :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 빠르잖아요. 정신질환자들이 바로 그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질환이 있거나 고립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드러낼수록 편견이 사라질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시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니까요. 그걸 '펭날'이 하고 있을 테니, 각자 시간이 필요하면 쉬고 계셔라, 그동안은 우리가 목소리를 내고 있겠다. 걱정하지 마셔라! 정도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 '펭날'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활동가 두 분의 운동을 이어나가는 동력이 무엇인지도요.
지선 : "운동의 동력은 '재미'인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내가 가진 욕구를 프로그램으로 기획할 수 있는 '펭날' 활동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예전에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여성 정신질환자가 겪는 특수한 경험들을 확인한 적이 있어요. 여성들이 성폭력 등 관계 맺기에 있어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범죄 타켓팅이 쉽게 된다거나 하는 고민들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고요. 또 성소수자들이 겪는 다중 혐오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성소수자 연애 시장에서도 정신질환자를 혐오하고, 소위 정신이 '건강한' 사람을 찾는 현상이 있어요. 이와 관련해 소수자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정신질환 혐오와 여성의 정신질환 특수성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날지 않는 펭귄들의 연말파티 개최 2023년 12월 28일, '날지 않는 펭귄들의 연말파티' 참여자들의 모습
펭귄의 날갯짓
광호 : "먼저 '펭날'의 목표는 단체가 소멸되는 것이 목표예요. 저희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기로 남아있어요. 활동 초반에 '펭날'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는데요. 비전문가인 정신질환 당사자가 어떻게 다른 당사자들을 잘 지원할 수 있겠냐,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약간의 오기가 생긴 거죠. 동시에 지금은 약간의 책임감이 생긴 느낌도 들어요. '펭날'이 정신질환 분야의 활동 단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체 활동이 자리를 잘 잡으면 저는 완전히 떠날 생각도 간혹 하고요."
지선 : "제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제가 광호 님 때문에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어딜 가요."
- 마지막으로 복지동향 구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지선 : "저희가 정말 돈이 없어요…. 돈이 있는데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돈이 없어요. '펭날'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광호 : "복지동향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복지 관련 이슈에 관심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글을 꼼꼼하게 잘 읽으실 것 같아서, 정신질환이나 복지 이슈에 관심이 '없는' 주변 사람 2명에게 복지동향을 건네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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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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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대신 연대로, 고립·정신질환 청년들과 함께 날갯짓하는 '펭귄의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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