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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2.06 14:39수정 2025.12.06 14:3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일, 홈쇼핑에서 시계 광고가 나오던 날이었다. 남편이 TV를 보다가 무심한 듯 말했다.
"나도 명품 시계 한 번 차봤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 한 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낸 사람인데, 그 정도 선물은 괜찮지 않을까. 남편은 우리 집 사정이 좋지 않아 새벽 알바, 주말 알바까지 뛰며 바쁘게 지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또 말했다.
"나 49년 인생 살면서 명품 시계 차본 적이 없어."
그 말이 유난히 슬프게 들렸다. 남편은 결혼 전 자동차 판금 일을 했다. 쇠를 자르고 붙이고, 용접 불꽃이 튀는 작업. 그래서 남편의 손은 늘 거칠고 검었다.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상처들. 남편은 그 손을 부끄러워했다. 내가 보기엔 세상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온 흔적이었지만, 그는 늘 손을 숨기기 바빴다.
손에 새겨진 삶의 흔적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안아보려고 손을 내밀자 친정엄마가 말했다.
"손 좀 씻고 와서 안아. 깨끗한 손으로 안아야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손이 얼마나 열심히 일한 손인지,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품 시계를 찬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름과 쇳가루, 용접 불꽃 속에서 시계란 금방 망가지는 물건일 뿐이었다. 결혼식 때도 시계 예물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은 정장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인데, 평생 작업복만 입고 살아왔다. 시어머니가 "선물"이라고 건네던 것도 늘 다른 사람이 입다 남은 옷들이었다. 언제나 '작업복으로 입으라'는 말과 함께였다. 제대로 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남편의 말이, 내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지금 남편은 더 이상 자동차 공업소에서 일하지 않는다. 손도 예전보다는 훨씬 깨끗해졌다. 여전히 거칠지만, 이제는 시계를 망가뜨릴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홈쇼핑 자동 주문 버튼을 눌렀다.
얼마 전, 남편의 첫 명품 시계가 집에 도착했다.
나에게 준 선물, 나를 위로하다
문득 떠올랐다. 오래전, 방송작가 시절의 나. 나는 방송생활 10년 동안 휴가 한 번 없이 일만 하며 살았다. 후배가 말했다.
"선배는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일을 정말 사랑하시나 봐요."
말하고 싶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못 가는 거지.'
프리랜서의 삶은 일을 남에게 맡기는 일조차 걱정이고, 또 맡아줄 사람을 구하는 것조차 일이었다. 그래서 여행은 늘 '언젠가'였고, 사실은 못 갔던 것이다. 그렇게 쉼 없이 일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선물을 해주고 싶다.'
방송생활 10년이 지나던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그 여행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기념으로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명품 가방을 하나 구입했다.
과한 사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10년 동안 정말 잘 살아냈다고, 고생했다고."
그렇게 주었던 선물은 지금도 내 곁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2025년 한 해 잘 견뎌온 나에게 주는 조그마한 위로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건 어떨까?
이효진
2025년,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
이제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그때의 선물이 '10년치 보상'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소박하게, 작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 2025년 한 해 잘 견뎌온 나에게 주는 조그만 위로로.
다이어리를 펼쳐 지나온 날짜들을 천천히 훑어본다.
'그래, 이 정도면 참 잘 버텼다.'
그 마음으로 작은 선물을 고른다. 그리고 이렇게 지나가는 2025년을 곱고 단단하게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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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제주MBC, 아리랑국제방송, 제주 TBN교통방송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현재는 아동문학 작가이자 글쓰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며, 유튜브 채널 '작가의식탁TV'를 통해 초·중등생의 글쓰기와 학습 성장을 돕는 교육 콘텐츠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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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손의 남편, 그에게 선물한 생애 첫 명품 시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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